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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0호 (2020. 1. 1뱔행) 겨레의 선한목자 주기철 목사의…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20-02-15 12:29     조회 : 82    
겨레의 선한목자 주기철 목사의 순교 (두번째)

고 주기철 목사에게 강한 민족의식과 신앙의 길을 인도해 준 곳은 한국기독교 교육의 요람지인 평북 정주의 오산(五山)학교다. 주목사가 16세에 오산학교에 입학했을 때 오산학교에는 기독교계 최고의 학자로 알려진 유영모 선생이 재직하고 있었다.
또한 자유 분망한 지식의 선구자 춘원 이광수, 그리고 도산 안창호의 국가 백년대계교육의 중요성이란 연설에 감복하여 오산학교를 설립한 남강 이승훈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민족주의자였던 고당 조만식 등, 그야말로 당대의 대 선각자들로 구성된 최고의 은사들이 오산학교에 포진하고 있었다.
이 훌륭한 스승 밑에서 열심히 공부한 주기철은 이때만 해도 앞으로 목사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으며 오직 신앙생활과 학업에만 충실했다.
그가 후일 오산학교 졸업 후 평양 장로교 신학대학을 거쳐 부산 초량교회 목사가 되기까지 그 과정은 이미 앞서 발행된 안드레 명상 149호에 자세히 소개 되었다.
초량교회 시무 6년, 마산 문창교회 시무 6년을 거치면서 주기철 목사의 설교는 한국 기독교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주기철 목사가 절대적 신앙으로 받들었던 칼빈주의 신앙, 즉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다.” 라는 경건의 영혼이 그의 머리에 항상 잠재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목회의 일기도 남기지 않았다.
한편, 주기철 목사의 부흥회 설교가 드디어 일본경찰의 감시에 들어갔다. 즉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국민들에게 유형무형으로 전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1935년 9월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서 거행된 한국 선교 50주년 부흥사경회에서 행한 저 유명한 설교 “일사각오(一死覺悟)”에 뒤이어, 금강산 목사수양회에서 “예언자의 권위” 설교는 일본총독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특히 일본천황을 지칭한 이날의 예언 설교는 일본경찰의 강제 제지로 설교가 중단되었다.
이때부터 주기철 목사는 일본이 가장 싫어하는, 즉 눈에 가시 같은 목사로 일거수 일투족 감시사찰의 일급 대상 인물이 되었다.
한편, 1936년 7월 평양 산정현 교회 제직회는 주기철 목사를 담임목사로 초빙하기 위해 조만식 장로를 주기철 목사에게 보낸다.
당시 평양 산정현 교회는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평양에서도 기독교의 중심 교회였다.
과거 주기철 목사가 오산학교 재학시절 고당 조만식은 이 학교 교장으로 근무했던 사제지간이었다.
“일제의 탄압에서 평양과 산정현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꼭 주기철 목사가 우리교회에 부임해야 합니다.” 고당 조만식 장로의 간청을 쾌히 승낙한 주기철 목사는 1936년 7월 다시는 오지 못할 고향땅 문창교회를 사임하고 순교의 땅 평양 산정현 교회에 부임한다.
주목사 첫날의 설교는 일본의 신사참배 정책에 대비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우상에도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정절을 지키자고 강조했다. 그리고 낡은 교회건물을 헐고 빨리 교회를 신축하자고 했다.
한편, 일본은 신사참배 강권을 위해서 먼저 학생들부터 신사참배 실시를 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사립학교를 지원하던 미국의 선교단체들이 즉각 반발하여 학교폐교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서울의 연희전문을 비롯해서 정신여학교, 보성, 경신, 대구의 신명, 계성학교가 문을 닫았다.
특히, 신사참배와 동방요배 정책은 국내 기독교를 양분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도달했다. 즉 일부 기독교인과 목사들이 일본의 신사참배 정책에 적극 동조함으로써 그들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목회를 할 수 있었다.

신사참배 찬성 회유를 위한 첫 번째 구속

1938년 2월 8일 산정현 교회신축 새 성전 헌당예배를 며칠 앞두고 일본경찰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주목사를 연행 구속시킨다. 이것은 신사참배 반대에 항상 앞장서는 주목사의 입을 막기 위한 소위 주목사 길들이기 첫 번째 구속이었다.
두 번째 구속은 예수교 장로회 총회를 앞둔 시점에서 다시 구속된다. 주목사가 구속되어 있던 기간에 조선의 교계는 일본의 신사참배 가결을 선포했다.
즉 한국기독교역사 치욕의 장으로 기록된 1938년 9월 9일 제 27회 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목사, 장로, 선교사 등, 총 223명이 참석했다.
이날 총회는 일본경찰 97명의 감시 속에 참석자 전원 일치로 신사 참배가결을 선포했다.
울분을 참지 못한 몇 명의 선교사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고 고함을 치다가 일본경찰들에게 끌려 나갔다. 만일 이날 총회장에 주기철 목사가 있었다면 이날의 신사참배 가결이 되었을까? 일본경찰의 면밀주도한 계획, 즉 총회기간 중 주목사를 형무소에 구속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날의 예수교 장로회 신사참배 가결 소식은 전국 교인들을 경악케 했다.
특히 주기철 목사의 부인 오정모 사모가 남편에게 비장한 결단을 촉구하는 한 장면이 있다.
즉 주기철 목사가 구속 후 첫 번째 가석방되던 날 “어머니와 아이들 걱정을 하지마시고 목사님은 감옥에서 순교해야 합니다. 목사님이 꼭 순교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고, 또 조선교회가 올바르게 일어설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의 고난의 순교 로정(路程)에는 위대한 신앙의 동역자 오정모 사모가 있었기에 주묵사의 순교가 가능했다고 한다.
한편, 주기철 목사는 농우회 사건으로 경북 의성경찰서에 수감 중, 1939년 2월 일시적으로 가석방 되었다. 죄수복을 입은 채 산정현교회 강단에 선 주묵사를 보기 위해 소문을 듣고 달려온 교인들로 교회당은 초만원이 되었다.
역시 소문을 듣고 달려온 평양 3개 경철서 형사들이 교회안과 밖에 포진하고 있었다.
이날 주목사가 직접 찬송을 인도했는데,
“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며........”
전 교인들의 우렁찬 찬송은 교회당을 진동시켰고, 형사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찬송이 끝나자 주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그 유명한 “다섯 종목의 나의기도”란 설교였다.
이 설교는 옥중에 있을 때, 늘 하던 다섯 가지 기도 내용으로 설교를 했다. 이날의 설교가 주목사의 마지막 유언의 설교로서 기독교계에 기념비적 설교로 전해지고 있다.
『소나무는 죽기전애 찍어야 그 솔잎이 시푸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덜어져야 향기롭습니다. 나도 어린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의 역적으로 잡혀가 죽으면 그 자식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늘의 이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 하오리까?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들에게 짐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내 어머님은 나를 금지옥엽으로 길러 주셨는데 춘풍추우(春風秋雨)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면 어머님 생각하며 눈물 뿌려 기도하였습니다.  .......』
설교도중 감격을 참지 못한 주목사는 소리 없이 울기도 했고, 성도들의 눈물은 성경을 적시고 있었다. 설교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주목사는 손을 높이 들고 다시 찬송을 부르자고 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스면 큰 권능 얻겠네......”
1939년 9월 주기철 목사는 농우회 사건으로 세 번째 구속되었다. 한편 주목사의 감옥 생활 때 주목사의 얼굴을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 있었다.
후일 “죽으면 죽으리다”의 글을 쓴 안인숙 이었다. 그는 “주목사의 얼굴은 바로 성자와 같았다. 일본경찰의 심한 고문에 시달린 그의 형상은 마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하게 했다.  ....... ”

주기철 목사 네 번째 구속과 목사직 파면

1940년 4월 주목사가 네 번째 구속 중에 평양노회는 일본경찰의 압력에 의해 주목사의 목사직 파면을 결의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시무했던 교회도 폐쇄 당한다.
1940년 일본 제국주의 발악은 이제 극도에 달했다. 국민들의 이름조차 소위 일본식의 창씨개명을 단행하면서 마지막 민족의 숨구멍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켜 버린다.
한편, 일본경찰은 주기철 목사의 세 번 구속 중 세 번이나 가석방의 혜택을 주었다.
그 이유는 가석방 기간 중에 세상의 평안과 특히, 가족재회를 이용하여 주목사를  회유 시키겠다는 목적이었다. 즉 주목사가 “나 이제부터 신사참배 번대하지 않겠소.” 이 말 한마디면 일본 경찰은 주목사에게 편안한 목회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유인 술책이었다.
그러나 주목사는 일본경찰의 끈질긴 회유와 술책을 일언지하에 거절함으로서 네 번째 구속되었다. 1940년 네 번째 구속 때는 장장 4년간의 감옥살이에서 그의 건강은 이미 회복불능 상태로 들어갔다. 자신의 죽음이 서서히 가까워 옴을 느낀 주기철 목사는 극비밀리에 한국인 간수를 통해 자신의 유언서를 부인 오정모 사모에게 보냈다.
“아마 여드레 후에는 내가 소천 할 것 같습니다. 막내아들 광조에게 생명보험 든 2백원으로 공부를 시키시오. 그리고 어머님 봉양 잘 하시고.....”
4월 21일 부인 오정모 사모는 주목사에게 마지막 면회를 갔다. 간수의 등에 업혀 나오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미 육신은 다 말라 버렸으나 영광의 면류관은 더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또한 심한 고문으로 몸은 온갖 상처로 얼룩졌고 손톱, 발톱은 다 빠져버렸으며 수 십 번의 기절로 인해 육체는 그야말로 산송장이 되었다고 했다.
한편, 평양형무소 소장은 주목사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이날 마지막 면회를 주선하고 병보석으로 강제 퇴소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부인 오정모 사모는 주목사의 손을 꼭 잡고 북받쳐 오르는 만단설음을 참으며 “당신은 꼭 승리해야 합니다. 결코 살아서는 이 감옥에서 못 나옵니다. 꼭 순교하실 줄 믿습니다.“ .....
오정모 사모의 천갈레 만갈레 찢어지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비장한 이 말을 들은 주목사는 잠시 먼 하늘을 보다가,  “그렇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나는 이제 곧 주님 앞으로 갑니다. 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부탁합니다. 하나님나라에 가면 우리 산정현 교회와 조선의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소. 내 죽음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내 시신은 고향 웅천으로 보내지 말고 평양 돌박산 기독교 묘지에 묻어 주시오.
마지막 부탁이 있소. 따뜻한 숭늉 한 사발 먹고 싶은데,.....“
한편, 이들의 면회 장면을 지켜보던 평양형무소 소장은 오정모 사모에게 다시한번  주기철 목사의 병원입원을 간곡히 부탁한다. 그러나 오정모 사모는 매몰차게,
 “절대로 안 모시고 나갑니다. 우리 목사님은 이미 이 감옥에서 순교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면회가 끝날 때 주목사는 몇 번이나 뒤쪽을 돌아보았다. 즉, 살아생전에는 마지막이 될 이날 면회에 혹시나 보고 싶은 노모와 어린 자식들이 나왔는지? 그러나 실낱같은 기대감이 허사가 되자 주목사의 얼굴에는 슬픔과 애통함이 역력히 보였다고 했다.
마지막 면회를 했던 그날 밤, 즉 해방을 1년 앞둔 1944년 4월 21일, 주님이 고난당한 금요일 밤 9시 겨레의 선한 목자 주기철 목사는 “내 영혼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라는 마지막 기도소리와 함께 48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주기철 목사 기념관과 동상 건립을 못하는 이유

해방이 된 다음해 1946년 산정현교회 당회는 주기철 목사 순교기념관과 동상을 교회 정원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오정모 사모는 급히 교회로 달려가 당회의 결정을 취소할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즉 당회의 결정은 주목사가 생전에 가장 싫어했던 바로 그 자신이 우상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반대한다고 했다.
그래서 후일 오정모 사모는 자신의 임종직전 아들 주광조(극동방송 부사장 역임)에게 앞으로 세월이 흐른 후에라도 어떤 단체에서든지 아버지의 기념관이나 동상은 절대 세우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지금도 국내 여러 신학대학에서 주기철 목사 기념관 건립을 하겠다는 의사를 알려오지만 주광조 장로는 정중히 거절 한다고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주광조 장로는 2002년 1월 9일 필자와의 대담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그렇다 기독교는 절대 우상을 금지한다. 구약성경 십계명 제 2조에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경고를 분명하게 기록했다.
고 안병욱 교수는 “현대인의 우상”이란 글에서 우상은 무지(無智)의 밭에서 편견(偏見)의 비료로 성장하는 허구(虛構)의 나무다. 이 나무에는 미신의 꽃이 피고, 맹종(盲從)의 열매가 맺고 다소의 권위의 냄새가 풍긴다. 인간은 우상건설, 우상숭배, 우상파괴를 되풀이 한다.“ 고 경고했다.
한편, 필자는 당시 주광조 장로와의 대담에서(2002년 1월 9일) 중요한 질문을 했다.
당시 북한의 김일성이 주기철 목사의 항일투쟁에 대한 포상과 토지를 주었다는 말이 전해져왔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주광조 장로는 정색을 하면서 “장로님 잘못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 1946년 당시 북한 공산 정권에서 김일성 장군 명의로 주기철 목사님 항일투쟁을 보상한다면서 일본집(적산거옥) 2층집 한 채와 강서군 소재 2만 6천평의 토지문서, 그리고 현금이 가득 담긴 박스 한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것을 되돌려 주시면서
“우리 주목사님은 항일투사가 아닙니다. 다만 성경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오직 마귀를 배격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져가십시오.” ........
주광조 장로는 당시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중 1학년), 이날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이들이 돈 박스를 들고 대문을 나서자 말자 주광조는 어머니께 사정없이 울며불며 대 들었다고 했다. “내 공부는 누가 시켜 줍니까? 그 돈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에도 가야 하는데 왜 그 돈을 돌려줍니까? 그러나 나는 그때 어머니의 굳굳한 의지를 꺽을 수 없었습니다.
후일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시던 어느 날 나를 꿇어앉게 하시더니 성경 시편37장 25절과 26절을 마치 모기소리 같은 음성으로 읽어 주셨습니다.“
『착한 사람이 버림받거나  그 후손이 구걸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꾸어주며 살고 그 자손은 행복을 받으리라.』(현대인의 성경)

한편, 우리 정부는 1968년 3월 1일 고 주기철 목사에게 건국 공로상을 수여했고 국립묘지에 주목사의 가묘를 만들어 주었다.
끝으로 주기철 목사의 순교에는 구레네 시몬과 같은 오정모 사모의 뼈를 깍는 고통이 있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오정모 사모를 매우 독한 여자라고 평을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이름 오정모 사모가 주기철 목사 순교와 함께 바늘에 실 가듯이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항상 등장하고 있다.

1947년 1월 27일 오정모 사모는 유방암으로 투병 중 새벽기도예배를 보다가 쓰러져 주기도문을 외우며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평양 돌박산 남편 묘 옆에 나란히 영면했는데 그날 멀리 서기산 자락에는 난데없이 아름다운 무지개가 영롱하게 떠올랐다고 한다.

                                              글  :  김  수  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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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38호 (2014.4.1발행) - 성경의 진리를 실천했던 손양원 목사 6… KBS로고스 14.04.02 1296
37 제37호 (2014.2.1발행) - 두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양아들로 맞이… KBS로고스 14.02.06 1795
36 제36호 (2013.10.1발행) - 여순 반란 사건으로 순교한 손양원 목… KBS로고스 13.11.29 1245
35 제35호 (2013.10.1발행) -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KBS로고스 13.10.08 1279
34 제34호 발행일 2013.8.1 - 고 손양원 목사가 걸어간 순교자의 길… KBS로고스 13.08.07 1136
33 제33호 발행일 2013.5.30 -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었던 … KBS로고스 13.05.31 1894
32 제32호 발행일 2013.3.30 - “폭포를 뛰어 넘는 물고기의 용기처… KBS로고스 13.04.02 1166
31 제31호 발행일 2013.1.25 - 14살의 장애인 소녀가 가정부로 출발… KBS로고스 13.01.28 1427
30 제30호 발행일 2012.11.12 - 전 백악관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 KBS로고스 12.11.16 1588
29 제29호 발행일 2012.9.1 - 맹인 고아 강영우 박사가 미국 대통령… KBS로고스 12.09.06 1758
28 제28호 발행일 2012.7.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7.07 1305
27 제27호 발행일 2012.4.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4.19 1329
26 제26호 발행일 2012.2.1 -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KBS로고스 12.03.03 1237
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914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480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418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2538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350
20 제20호 발행일 2010.12.1 -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기독교인으… KBS로고스 10.12.30 2041
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2411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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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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