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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4호 (2019.4.1발행) - 여왕과 마부의 맺지 못할 사랑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9-04-28 18:07     조회 : 31    
여왕과 마부의 맺지 못할 사랑

안드레명상 146호는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만든 빅토리아 여왕의 위대한 생애를 다루었다.
한편 이번 147호에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여년이 지나 비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마부와의 극비 사랑 이야기를 게제한다. 빅토리아 여왕은64년간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 영광의 여왕이었다. 그러나 42세때 남편이 장티푸스로 사망하면서 갑자기 독신의 여왕이 된다.
한창 나이인 42세 과부 여왕은 극심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랑의 추문으로 빠져든다.그러나 당시 영국 왕실의 적극적인 대응 노력으로 여왕의 애정 행각 소문은 서서히 꼬리를 감추어졌다. 그런데 여왕이 세상을 떠난 지 100여년이 지나면서 한 TV영화사가 여왕과 마부의 맺지 못할 인연이란 소재로 영화제작을 하게 된다.
즉『미세스 브라운』이란 제목의 이 TV영화가 1998년 12월 27일 첫 방영을 하던날 이 영화의 제작자인 더글러스 레이 감독이 방영에 앞서 매우 중요한 내용을 공개한다. 즉 레이 감독이 한창 영화 제작을 하던 때 캐나다에서 보내 온 한 여인의 편지를 받아 보고 놀라게 된다.
이 여인은 빅토리아 여왕의 전용 사냥터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던 존 브라운 마부의 직계 후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여인이 보내 온 편지 내용의 대충 줄거리는 자신이 몇 달전 스코틀랜드의 왕실 소유 발모람성 근처에 사는 언니집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즉 언니집 다락방 트렁크에서 100여년전 빅토리아 여왕과 존 브라운이 주고 받은 연애편지와 각종 선물 특히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았다고 한다. 이 귀중한 자료를 본 여인은 마침 직계 조상인 존 브라운과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한다는 영국의 레이 감독에게 그야말로 초특급 정보를 알려준 셈이다.
레이 감독은 캐나다 여인의 제보로 그의 언니가 보관중인 유품들을 전문가들로부터 진본임을 확인 받았으며, 이 사실은 즉시 영국의『더 타임스』지에 의해 1998년 12월 28일 영국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특히 영화 제작자 레이 감독은 이들이 주고 받은 로맨스의 일부 뜨거운 내용의 편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998년 당시만해도 현 엘리자베드 2세 여왕의 모후가 생존해 있기 때문에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왕실 측에서는 여왕과 사냥터 지기는 일시적 색다른 관계를 맺었을 뿐『부적절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옹호했다. 한편 빅토리아 여왕은 무남독녀로 태어나 1837년 6월 20일 큰아버지 윌리암 4세가 재위 7년만에 71세로 타계하자 18세의 나이로 여왕에 등극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통치 64년간 영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어 전세계를 지배했다.
그가 한창 국력을 팽창해가던 1861년 당시 40대 초반의 남편 엘버터공이 장티푸스로 갑자기 사망하자 여왕은 깊은 충격에 정신을 못차린다.
특히 극심한 우울증으로 여왕으로서 모든 공무가 중단되었다.
가까스로 몸을 추수린 여왕은 왕실의 권유로 어느날 영국 왕실 전용 사냥터에 휴식을 나갔다.
심신의 안정을 찾기 위해 사냥터를 찾아간 첫날 여왕에게 여왕 전용 백마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백마를 몰고온 사냥터 지기 즉 마부의 모습을 본 빅토리아 여왕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 진다. 매우 건장한 체구에 특히 붉은 수염의 미남형 얼굴이 단숨에 여왕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여왕은 마음 속으로 “어떻게 저런 멋진 남성이 사냥터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나이도 여왕보다 연하였음을 알게된 여왕은 이 경비원을 향한 사랑의 충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존 브라운 사냥터 지기는 즉시 영국 여왕의 전용 마부로 특채된다. 남편을 잃고 극심한 우울증과 외로움에 몸부림쳤던 여왕에게 마부 존 브라운은 여왕에게 그야말로 사랑의 원자탄 이었다. 여왕은 사냥터에 근무하는 존 브라운과 더 가깝게 지내기 위해 버킹엄 궁으로 불러와 전용 마부 직책 외에 집사란 직책을 주었다.
집사가 되면서 존 브라운은 자연히 여왕 침실 가까운 곳에 거처가 정해지면서 서서히 소문이 퍼졌다. 특히 가관인 것은 단 두사람만 있을 때 존 브라운은 그 지엄한 여왕을 애칭으로 아가씨라고 불렀다. 이를 보고 놀란 왕실 시종 무관장이 브라운에게 엄한 경고를 주었는데, 경고 다음날 시종 무관장은 멀리 영국의 식민지 인도로 좌천 되었다. 그때부터 왕실 주위의 사람들은 존브라운에게 깍뜻한 인사를 했다.
한편 빅토리아 여왕과 존 브라운의 사랑의 로맨스는 그후 20여년간 지속되다가 1882년 존 브라운은 56세 나이로 사망했다. 이때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 사별 때 보다 더큰 충격에 휩싸였다.
브라운이 쓰던 방을 망령과 함께 보낸다며 그대로 보존했다. 한편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렀는데 5년전 디즈레일리 영국 수상의 장례식보다 더 장엄하게 치러주었다.
한편 빅토리아 여왕과 마부의 맺지 못할 안타까운 사랑의 역사를 읽다보면 우리 민족의 여왕 추문은 영국보다 9백여년 앞서고 있다.
바로 신라의 51대 진성 여왕이다. 즉 서기 887년 당시 신라의 여왕은 절대 결혼을 못하게 국법으로 정했다. 임금의 누이 동생으로 등극 왕좌에 오른 진성 여왕은 구중궁궐에 보름달이 뜰 때마다 이성의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다.
만백성의 존경을 받는 지엄한 여왕의 지위 때문에 인간의 고유 권한? 성을 거세당한 셈이라고 할까? 타오르는 이성의 충동을 참지 못한 진성 여왕은 결국 유모의 남편 바로 자신의 숙부인 위홍(魏弘)과 사랑에 빠졌다.
여왕은 깊은밤 사복을 입고 직접 위홍의 집을 찾아 다니며 사랑의 불꽃을 피웠다.
그러나 위홍이 갑자기 죽자 깊은 허탈감에 욕정을 참지 못한 여왕은 이번에는 건장한 미(美)소년을 왕궁으로 불러 들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진성 여왕의 욕정의 추문은 왕실과 대신들에게 퍼져 나갔으며, 국사(國事)는 정사(情事)에 밀려 결국 신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

사랑을 위해 왕관(王冠)을 버린 영국의 국왕

빅토리아 여왕이 64년간 영국을 통치하는 동안 각종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의 막강한 국력은 전 세계를 지배했다. 1901년 여왕은 81세로 사망하면서 왕위는 조지 5세가 이어받았고 조지 5세가 사망하자 장남인 에드워드 7세가 왕이 된다.
빅토리아 여왕에게는 손자가 되는데 이 에드워드 7세가 영국 왕실 역사에 빅토리아 여왕보다 더 기막힌 로멘스의 기록을 남긴다. 에드워드 8세로 등극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왕이 제일 먼저 한일이 궁안에 있던 마부 존 브라운의 방을 폐쇄시키고 그 자리에 당구장을 만들었다.
또한 여왕과 브라운이 주고 받은 연애편지, 사진, 각종 유물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는 바로 세계를 지배했던 대영 제국의 상징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에 단 하나의 오점도 남기지 않겠다는 에드워드 8세의 강력한 의지였다.
한편 에드워드 8세가 대관식을 치른지 10개월이 되던날 즉 1936년 12월 10일 오후 3시 30분 영국 하원에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볼드윈 영국 총리가 고급스런 엷은 책자를 들고 단상 앞에 섰다. 총리의 얼굴은 초긴장 상태였고 책자를 잡은 손을 떨고 있었다.
총리는 “지금부터 국왕 폐하의 칙어를 낭독합니다.” 하원 의원들은 도대체 국왕의 칙어가 무슨 내용인지 모두가 궁금한 표정으로 볼드윈 총리를 주시했다. “의원 여러분 참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짐은 영국의 왕위를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원 의원들은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아니 태평성대하게 영국을 통치해 나갈 국왕이 무슨 잘못을 햇길래 왕관을 버린단 말인가?” 이 소식은 즉시 영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특히 총각으로 왕이된 에드워드 8세 국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사모했던 영국의 여성들은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 아쉬움에 술렁거리는 국민들을 진정 시키기 위해 에드워드 8세 국왕은 바로 다음날 즉 총리가 하원에서 칙어를 낭독한 하루만에 라디오 방송을 했다. 이는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급선무였다.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여인의 내조와 뒷받침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중책과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판단, 왕위를 버리고 사랑의 품을 선택했습 니다.… 육성 방송이 끝나면서 왕실은 에드워드 8세 국왕을 즉시 윈저공으로 격하시켰다.
그런데 도대체 국왕이 그토록 사랑했던 주인공은 어떤 여인인지? 국민들의 궁금증은 자꾸만 증폭되었다. 총각 왕으로서 정상적인 왕비책봉을 하면 될일인데 왜 왕의 자리까지 버리겠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영국 왕실의 반대 때문이다.
왕실은 총각 국왕의 왕비책봉을 위해 영국 최고 귀족들의 명문 가정에 규수를 물색중에 있었다. 그러나 국왕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애인이 있다는 것을 왕실이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문제는 왕비가 될 여성의 이력을 보고 왕실은 그야말로 기절초풍했다.
결혼을 두번이나 한 미국의 유부녀인 패션디자이너 워리스 심퍼슨 부인이다. 심퍼슨 부인은 자신이 곧 왕비가 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현재 남편과 급히 이혼을 했다.
두번 결혼에 두번 이혼을 한 셈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 국왕은 그까짓 두번 이혼은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왕실의반대도 무시했다 또한 두사람의 사랑도 날로 뜨거워 갔다. 그러나 어느날 에드워드 8세 국왕은 심사숙고한 끝에 비장한 결단을 내린다.
즉 심퍼슨 부인이 절대 왕비가 될 수 없다는 영국 왕실과 성공회의 냉엄한 현실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심퍼슨 부인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중대 선언을 한다. “짐은 당신과 절대 헤어질 수는 없소 차라리 왕관을 버리고 당신을 선택하겠오,,… 진정한 사랑을 위해 왕관(王冠)을 버린 영국 국왕의 이 뉴스는 삽시간에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세상에 이런 왕도 있는가? 이들의 결혼을 해외 언론들은 “세기의 결혼”이라고 연일 특집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만일 에드워드 8세 왕이 오늘날 같으면 그는 왕실 반대에 아랑곳 없이 심퍼슨 부인을 정식 왕비로 맞이 했을 것이다.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현재(2019년) 엘리자베드 2세 여왕의 아들 찰스 황태자다.
그는 다이애나 황태자비 와 이혼 한후 국민들의 나쁜 여론을 무시하고 파밀라 바우에스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당시 이 결혼을 대표적으로 반대한 사람은 영국 성공회의 수장이요, 영국인의 영적 지도자인 조지 캐리 대 주교였다. 즉 영국의 국왕은 영국 교회 바로 성공회의 최고의 통치자가 된다는 전통을 강조했다. 그래서 이혼이나 재혼을 한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찰스 황태자의 재혼을 문제삼았다.
한편 과거 영국 왕실의 왕비 책봉의 역사를 보면 피비린내로 얼룩져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이미 안드레명상 145호에 자세히 게제되었던 헨리 8세 국왕이다.
본처와 이혼하고 형수와의 결혼 그 형수와 이혼하고 또 약혼자가 있던 안볼린과 재혼 등 무려 6명의 왕비를 두었으며, 이중 3명의 왕비가 참수 사형을 당했다.
이와 같은 국왕의 부도덕한 결혼과 이혼을 무효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던 당시 토머스 모어 대주교도 결국 대역죄로 런던탑 단두대에서 참수를 당했다.
이상과 같은 영국 왕실의 왕비 책봉을 둘러싼 비극의 역사와 그 왕비들의 불행한 삶을 잘 알고 있는 에드워드 8세 국왕은 결국 왕관을 버리고 대신 숭고한 사랑의 행복을 선택했다.

사랑과 존경의 엘리자베드 2세 여왕

왕위에 오른지 불과 10개월만에 왕관을 벗은 윈저공의 뒤를 이어 윈저공의 동생 조지 6세가 등극한다. 조지 6세가 바로 현재의 엘리자베트 2세 여왕의 아버지다. 조지 6세는 5남 1녀중 둘째 왕자로 태어나 왕위는 생각도 안했는데 형님 윈저공의 왕위 포기로 하루아침에 국왕으로 등극한다.
그러나 조지 6세는 등극 16년만인 1952년 2월 7일 취침중 갑자기 사망한다. 따라서 슬하에 두명의 공주 중에 장녀 엘리자베드 공주가 왕위를 계승한다. 당시 25세의 엘리자베드는 아프리카 케냐를 여행중 부음을 듣고 급거 귀국한다.
이날 런던 공항에는 처칠 수상을 비롯한 고위층 명사들이 도열한 가운데 정중한 영접을 받았다.
상복 차림의 엘리자베드 공주는 자신이 곧 영국의 왕이 된다는 사실에 극도로 긴장된 표정이었다.
1953년 6월 2일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엘리자베드 2세 칭호로 대관식을 마친 젊은 여왕은 즉위하자마자 영국 국민들의 흠모와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다. 그것은 오직 국가의 안위와 왕실과 그리고 가정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1947년 필립공과 결혼한 엘리자베드 2세 여왕은 찰스 황태자를 비롯한 3남 1녀를 두었는데, 이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불미스런 스캔들이 그치지 않았다. 결국 3남 1녀 모두가 이혼했고, 특히 여왕의 동생 마거릿 공주는 왕실 전용 사진사와 결혼했으나, 이혼하고 여러명의 연인들과 염문에 휩싸였다. 특히 엘리자베드 2세 여왕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이 장남 찰스와 며느리 다이애나의 파경이다. 온갖 구설수에 시달린 찰스는 어느날 TV에서 애인 카밀라 파커 볼스와의 통정(通情) 사실을 고백했다. 이를 본 찰스의 부인 다이애나가
자신도 TV에 나와 승마 교관인 제임스 휴이트와의 불륜을 고백했다.
TV를 보던 영국 국민들은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 엘리자베드 2세 여왕은 설마했던 스캔들이 TV에서 이들의 불륜 고백 장면을 본인이 직접 보고 경악과 충격을 받았다.
여왕은 두말없이 즉시 이들이 하루빨리 이혼할 것을 통보했다. 이혼한 며느리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30일 애인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왕실 가족들의 이러한 각종 사고와 스캔들로 인해 여왕의 머리에도 서리가 많이 내렸다.
한편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영국 총리와 면담을 통해 국정을 보고 받고 있으며, 또한 각국 대사의 신임장 제정, 그리고 정부의 각종 보고서와 공식문서도 서명하고 있다.
이는 1714년 영국 의회가 입법한 “국왕은 군림할 수는 있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대 원칙의 전통을 조화롭게 실천하고 있다.
끝으로 1999년 4월 10일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엘리자베드 2세 여왕은 금년(2019년) 93세 고령에도 국왕으로서 책무와 품위를 잘 지키고 있다.
특히 여왕은 굳건하고 의무감이 강한 기독교적 여성으로서 뛰어난 인물이기 때문에 오늘날 영국 국민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고 해외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끝-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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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제27호 발행일 2012.4.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4.19 1122
26 제26호 발행일 2012.2.1 -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KBS로고스 12.03.03 1039
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670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257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209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2328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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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2165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602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751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705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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