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회원가입사이트맵

  KBS로고스  
     KBS로고스 



2
19
134
53,124
KBS로고스
    > KBS로고스
  제61호 (2018.6.1발행) - 나폴레옹 제국(帝國)의 흥망성쇠 네번…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8-06-16 09:59     조회 : 35    
나폴레옹 제국(帝國)의 흥망성쇠 네번째 이야기

러시아와 영국, 터키 등 당시 일부 독립 국가들을 제외한 전 유럽 대륙을 평정한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유럽의 2대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한때 이루지 못한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항상 무겁게 한, 바로 황제 세습이었다. 즉 황제로서 대를 이어갈 아들이 없었다. 이미 지난호 142호에서 자세히 기록했지만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황제로부터 자신의 여동생과의 혼인을 약속 받았다.
이 약속을 굳게 믿은 나폴레옹은 부인 조세핀과 이혼을 했다. 그러나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 황제는 나폴레옹 황제에게 자신의 여동생과의 혼약을 파기해 버렸다.
분통이 터진 나폴레옹 황제는 결국 마음에도 없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녀 마리아루이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다행히 황제의 대를 이어갈 아들을 얻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한동안 러시아 황제의 여동생에 대한 연민을 쉽게 잊을 수가 없었고, 드디어 러시아 황제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러나 만일 나폴레옹과 당시 러시아 황제 여동생의 결혼이 이루어 졌다면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은 없었을 것이고, 더 크게는 나폴레옹 제국의 번성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복의 결단은 대륙봉쇄의 미흡과 1811년 프랑스의 심각한 경제 위기를 전쟁으로 돌파하려는 정복자로서의 야욕 때문이었다.
드디어 1812년 봄 나폴레옹은 프랑스군 30만명에 독일, 스위스,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차출된 30만명, 총 6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 원정에 나선다.

특히 위성국에서 차출된 장병들은 나폴레옹에 대한 충성심도 없고, 전의(戰意)도 상실된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그래서 폴란드를 횡단할 때부터 탈영병이 생겨났고, 6월 러시아 땅에 들어설 때는 60만명에 달했던 장병이 47만으로 줄었다. 그리고 8월 중순이 되자 다시 15만5천명으로 줄었다. 한편 계속 후퇴만 하던 러시아군 12만명은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 사령관 쿠듀초프가 오른쪽 눈을 상실하고 6만명의 장병이 전사했으며, 나폴레옹 군대도 3만명이 전사한다.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던 러시아 군은 후퇴 작전의 일환으로 모스크바 시가지에 건물마다 불을 놓고 초토화 작전을 전개했다. 이 작전으로 인해 나폴레옹은 모스크바 원정의 모든 전쟁물자 특히 식량을 현지에서 조달하겠다는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1812년 9월 17일까지 모스크바 시가지가 계속 불타는 가운데 나폴레옹은 크레믈린 궁전에 입성했다. 당시 모스크바 시민 40만 중에서 1만5천명만 남아 있었다.
나폴레옹은 장병들을 향해 “1812년의 모스크바 원정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제 러시아 황제가 화평을 제의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폴레옹의 크나큰 오판이었다.
겨울이 오기를 기다린 러시아 쿠드조프 장군은 정규군 10만과 게릴라를 동원, 최후의 일전을 벌린다. 전투와 함께 모스크바에 극심한 겨울 한파가 몰아 닥치자 이 추위를 견디다 못한 나폴레옹은 부득이 모스크바 철수를 결정한다.
이 때를 기다린 러시아 쿠드조프 장군은 퇴각하는 나폴레옹 군에게 계속 기습 작전을 전개했다.12월 15일 나폴레옹 군이 니에멘강을 건너 폴란드까지 후퇴했을 때 병력은 겨우 5천명만 남았다. 출발 때 60만의 병력은 탈영과, 전사, 질병 등으로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반면 러시아 군도 이 추격 작전에서 3만명이 전사했다. 한편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에 특히 모스크바 전투에서 전개된 전쟁 스토리를 후세에 가장 많이 알린 것이 러시아의 철학자 톨스토이의 소설<전쟁과 평화>였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개전 초기 조국이 나폴레옹에게 맥없이 무너지기까지 국가 기강의 해이와 러시아 귀족들의 호화생활을 지적했다.
또한 전쟁에 휩쓸린 시민과 귀족들, 황제들의 처신, 청년들의 사랑, 병사와 장교들의 사상문제 등 전쟁과 죽음에서 전개되는 각종 상황 등을 대 서사시(大敍事詩)로 기록했다.
톨스토이의 3대 명작인 안나카레리나, 부활, 전쟁과 평화, 이중에서도 톨스토이 문학의 진수요 불멸의 걸작이 바로<전쟁과 평화>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헤밍웨이는 우리 인간이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고 지적했다.

사라져 가는 나폴레옹 제국

나폴레옹의 패전 소식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주었다. 공화파의 말레장군이 ‘황제사망’이라는 헛소문으로 쿠데타를 기도하다 총살 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12월 18일 급거 파리에 귀환 다시 20만 병역을 동원하여 1813년 5월 계속 추격해오는 러시아와 폴란드, 프로이젠 동맹군을 격파한다. 그러나 10월 16일 라이프찌히 전투에서는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의 동맹군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하고 다시 파리로 퇴각한다. 이듬해 1814년에는 전쟁의 무대가 프랑스 국내로 옮겨진다. 즉 라인 방면에서 영국, 오스트리아, 스페인, 러시아, 프로이젠 등 동맹군 23만명이 프랑스군 5만명을 압박해 왔다.
이때 나폴레옹이 부인 마리아루이자에게 보낸 편지가 적군의 첩보에 넘어가는 바람에 나폴레옹의 작전 계획이 탄로난다. 이 첩보로 동맹군은 샛길로 빠져나가 바로 파리에 진격한다.
당시 파리 방어의 책임은 스페인 왕으로 있다가 쫓겨온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가 맡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주색과 향락에 빠져서 파리 방어 불과 2일만에 파리는 함락 당한다.
1814년 4월 2일 프랑스 원로원은 나폴레옹 황제의 폐위를 선언하고 6일에는 루이 16세의 아우 루이 18세의 즉위를 결의한다.
한편 나폴레옹은 자신의 심복 부하 장군들과 정치인 심지어 황비(皇妃)와 형제 자매들까지 자신을 배반한 것을 확인한 후 중대 결정을 내린다.
즉 1814년 4월 4일 황비 마리아 루이자가 낳아준 황태자 나폴레옹 2세에게 황제의 자리를 양위(讓位) 한다는 조건을 걸고 퇴위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8일후 4월 12일밤 나폴레옹 황제는 결국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다.
4월 20일 나폴레옹은 풍탱블로 궁전앞 퇴위식에서 도열한 장군들과 근위병들에게 눈물의 고별사를 읽는다. “친애하는 병사 여러분 그동안 저와 함께 생사를 함께한 여러분과 이제는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병사들의 흐느끼는 울음 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나왔다. 이때 나폴레옹은 전쟁터마다 항상 그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던 군기(軍旗)를 붙잡고 마지막 작별의 키스를 한다. 영국의 신문들은 이날 고별식을 끝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장대했던 서사시는 이제 끝났다고 보도했다.
1814년 4월 20일 나폴레옹은 동맹군의 압송으로 이탈리아 서해안과 자신의 고향인 코로시카 사이에 있는 유형지 엘바섬으로 추방당했다.
당시 엘바섬은 3개 마을에 인구는 3천명 정도였으며, 동맹국은 나폴레옹에게 이 섬의 지배권과 세비와 약간의 호위병까지 주었다.
전직 황제 직분에 대해 최소한의 예우를 해준 셈이다. 1814년 5월 3일 약 15일간의 항해 끝에 엘바섬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날마다 망망 대해만 바라보는 고독한 몸이었다.
권태와 단조로운 섬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삶에 의욕과 용기를 준 것은 그의 어머니 레티지아와 누이 폴리느, 그리고 부인 마리아루이자의 방문이었다. 그외에 7년전 바르샤바 점령때 나폴레옹의 애인이었던 마리발레브스카 부인도 찾아왔다. 그런데 절세의 미모였던 마리발레브스카 부인은 나폴레옹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까지 데리고 왔다.
이때 나폴레옹의 부인 마리아루이자는 이 아이를 데리고 친정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갔으며, 그후 다른 젊은 남자와 결혼했다. 한편 나폴레옹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비운의 황후 조세핀은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되는 것을 보고 몇 개월만에 자살해 버렸다.

파리에 다시 나타난 나폴레옹과 백일천하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되자 과거 망명 귀족들이 루이 18세를 앞세워 귀국한다.
이들은 왕정복고에 박차를 가하면서 프랑스는 극심한 과도기에 들어간다. 아울러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면서 국민들의 불평 불만이 거리를 뒤덮었다.
부르조아도, 민중도, 농민도, 지식인도 모두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 통치 시대를 그리워했다.
이러한 사태를 알게된 나폴레옹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인구 3천명의 엘바섬에서 선발한 청년들과 기존 부하 장병들을 합쳐 1천명의 병사들을 규합했다. 그리고 엘바섬을 탈출하기 위해 7척의 배를 구입했다. 그가 황제 시절 그의 어머니 레티지아는 황제의 어머니로서 큰 금액의 연금을 받을 때마다 무조건 반을 떼내어 저축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어머니 레티지아가 황제에서 쫓겨난 아들을 찾아왔을 때 과연 빈손으로 왔을까? 소위 혁명자금에는 아들의 장래를 위한 어머니의 연금저축도 기여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1815년 2월 26일 병사 1천여명을 태운 7척의 배는 심야에 엘바섬을 탈출한다.
방향도 목적지도 모르는 병사들이 나폴레옹에게 묻는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딥니까?” 나폴레옹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목적지는 파리다 총한방 쏘지 않고 파리까지 직행이다” 3월 1일 나폴레옹은 지중해 연안 칸느 근처 쥐앙만에 상륙하여 이 지역 주민들의 열열한 환영을 받았다.
나폴레옹도 감격하여 외친다 “병사들이여 이제 여러분은 조국의 해방자로써 자랑스러운 사명을 맡았다. 모두들 나의 사령관 깃발아래서 파리를 향해 진격해 간다” 진격 코스는 왕당파가 많은 프로방스를 피해 그르노블을 지나갔다.
연도는 소문을 듣고 나온 농민들이 줄을이어 구세주가 다시 왔다고 열광했다. 특히 이때 나폴레옹이 놀란 것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지역 사령부에서 동원된 병사들이 직속 상관의 명령을 거부했다. 즉 이들은 오히려 나폴레옹 병사들과 함께 어울려 파리 진격에 나섰으며, 종전 1천명의 병력은 갑자기 수천명으로 증강되었다.
3월 18일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자 프랑스 군대는 자동적으로 나폴레옹 휘하에 흡수되고 루이 18세는 국외로 탈출했다.
나폴레옹은 서둘어 6월 1일 새 의회를 소집하고 과거 황제 시절의 요직의 인물들로 새 내각을 구성했다. 나폴레옹 황제의 재등장에 놀란 동맹국, 즉 연합국은 오스트리아 빈 정상회담에서 나폴레옹 타도를 결의했다.
이에 대비 나폴레옹은 12만 프랑스 군을 앞세워 벨기에에 포진중인 연합군에게 그의 전술 특기인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연합군 사령관 웰링턴 장군과 나폴레옹 간에 벌어진 이 전쟁이 그 유명한 월털루 전투다.
1815년 6월 18일 단 하루 전투에 양측의 전사자가 1만1천명에 부상자 3만5천명 그리고 군마 1마리가 죽었다.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땅을 치며 통곡했다. 즉 연합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프랑스의 막강한 포병부대가 이날 억수같이 쏟아진 비 때문에 움직일수가 없었다.
즉 땅이 굳어지지 않아 포대가 작전을 펼수 없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연합군의 포위망을 간신히 벗어나 파리로 후퇴했다.
프랑스 의회는 나폴레옹 황제에게 황제 퇴위를 결의하자 나폴레옹도 의회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 들였다. 6월 29일 나폴레옹은 평복 차림으로 마차를 타고 대서양 연안의 로슈포르 항구로 달렸다.
그는 그곳에서 프랑스 해군이 제공하는 배를 타고 비밀리에 미국 망명을 시도했지만 영국 해군에 적발되었다. 1815년 7월 15일 결국 나폴레옹은 영국군함 벨레로폰에서 항복서에 서명했다.
이날 부두가에는 나폴레옹의 항복 서명을 보기 위해 수만명의 영국인들이 각자 모자를 벗고 손을 흔들며 이제 역사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져갈 영웅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했다.
이 광경을 본 나폴레옹은 깜짝 놀랐다.
영국 국민들이 과거 적장인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다니?……
나폴레옹은 이날의 열렬한 환영행사에 다소 고무되었던지 혹시 자신이 영국에 살 수 있는지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1815년 7월 15일 나폴레옹은 부하 장군들과 시종 10명을 데리고 영국 군함 노덤버랜드호에 실려 2개월 반동안 긴 항해끝에 유배지 세인트헬레나 섬에 도착했다. 나폴레옹은 이 섬에 도착 6년만인 1821년 5월 5일에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를 마감했다.
영국 정부는 사망원인을 위암이라고 했으며 프랑스는 비소에 의한 약물 독살이라고 주장했다.
나폴레옹의 유해는 평소 본인의 소원대로 1840년 조국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세느강변에 안장되었다.
1855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장차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어린 태자를 나폴레옹 동상 앞으로 데리고 와서『위대한 영웅 나폴레옹이다 경례를 해라』고 했다. 또 어느날은 반신불수에 앞도 못보는 80세의 할머니가 동상을 더듬어 만지며 목놓아 울고 있었다. “황제께서는 다시 조국 프랑스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백발의 이 할머니가 바로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였다.
16살의 나폴레옹이 보병학교 시절 집안이 가난하다고 기죽지 말아라, 부유한 집안에서 영웅이 나오지 않는다, 항상 독서를 최선의 벗으로 삼아라, 너무 과한 욕심은 파멸을 가져오니 항상 근검절약하라,……
레티지아는 황제의 어머니 황태후로서 100만프랑의 연금을 받았지만 무조건 반을 떼어 아들의 장래를 위해 저금을 하면서 오직 신앙에 몰두했다. 한 가정의 어머니의 지성, 신앙, 교양, 지혜가 자녀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는 사실을 레티지아가 오늘의 우리 어머니들께 남겨준 교훈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어머니의 교육으로 프랑스의 황제와 영웅이 되었지만, 어머니의 지혜로운 충고를 외면했기 때문에 비참한 인생을 마감했다.
1836년 이 위대한 생애의 어머니 레티지아는 가을 낙엽과 함께 이 세상을 하직했다. -끝-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교회 협동장로)

<안드레 명상은 독자들의 선교 후원금으로 인쇄, 발송됩니다. 여러분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교회 장로회:홍연표 장로, 구자삼 장로(서울잠실,정신여고內) 백항기 장로, 김현덕 장로, 강석인 장로, 이성준 장로,정재윤 장로, 김익훈 장로,김우림 장로, 김유호 장로,김영식 장로
주님의교회 협동장로회
주님의교회 안수집사회:권순영, 오종세,정재훈, 김창균,최오섭(비트크럽)
주님의교회 권사회:김옥라 권사(중보기도회), 배홍자 권사(호산나찬양대), 장경희 권사(샬롬찬양대), 박혜원 권사, 김미혜 권사, 박정숙 (6교구 겨자씨회)

KBS TV 권혁만 PD
전KBS언론인:박진우, 조원석, 김민기, 한동수, 수원대 성수일 교수 (주님의 교회)
남가좌교회:이형욱 장로
의정부 열방교회:신현승 장로
박성혜 권사 (여의도)
해군본부 교회:정주성 안수집사
여의도순복음교회 :무명
온누리교회:김정연 집사
소망교회(압구정동):김효진 성도, 김용운 (경기, 일산)


안드레명상 선교헌금안내
국민은행 268802-04-031127 (예금주 김수호)

발행처 : 안 드 레 명 상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68길 19 (청담동)
Mobile : 010-8871-0685
F A X : 02-514-0686
E-mail:songpo8304@naver.com

* 인터넷 : (홈페이지)www.andre.pe.kr
* 네이버, 구글, 다음,에서 한글로『안드레명상』을 검색하면 안드레명상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 안드레 명상은 KBS 로고스에도 동시 게제됩니다.
* KBS로고스 : (www.kbslogos.com)


게시물 62건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읽음
62 제62호 (2018.8.1발행) - 안드레명상 발행 6주년 특집 유럽의 명… KBS로고스 18.08.27 13
61 제61호 (2018.6.1발행) - 나폴레옹 제국(帝國)의 흥망성쇠 네번… KBS로고스 18.06.16 36
60 제60호 (2018.4.1발행) - 황제로 등극하는 나폴레옹 3번째 이야… KBS로고스 18.03.31 70
59 제59호 (2018.1.1발행) - 나폴레옹의 전쟁 역사 2번째 이야기 KBS로고스 18.01.18 98
58 제58호 (2017.10.1발행) - 전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과 그 어… KBS로고스 17.10.18 136
57 제57호 (2017.7.1발행)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이땅에… KBS로고스 17.06.30 126
56 제56호 (2017.4.1발행) - “유한양행은 유씨가 사장이 될 수 없… KBS로고스 17.04.26 180
55 제55호 (2017.2.1발행) -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위대… KBS로고스 17.03.02 181
54 제54호 (2016.12.1발행) - 소아마비의 몸으로 (반신불수) 미국의… KBS로고스 16.12.20 195
53 제53호 (2016.10.1발행) - 밀림의 성자, 지성의 선구자 알베르트… KBS로고스 16.10.14 215
52 제52호 (2016.8.1발행) - 미국 이민 100년사 3대 인물 신호범 전… KBS로고스 16.08.08 289
51 제51호 (2016.6.1발행) - 60 나이에 워싱톤주 하원의원에 출마한… KBS로고스 16.06.09 264
50 제50호 (2016.4.1발행) - 미국 한인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KBS로고스 16.04.06 300
49 제49호 (2016.2.1발행) - 침을 뱉고 떠난 조국에 대학 교수가 … KBS로고스 16.02.04 490
48 제48호 (2015.12.1발행) - 소년거지 신호범이 미국상원 5선 의원… KBS로고스 15.12.08 423
47 제47호 (2015.10.1발행) - 서울 남대문시장 거지소년 신호범의 … KBS로고스 15.10.06 483
46 제46호 (2015.8.1발행) - 서울 남대문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 5… KBS로고스 15.08.04 520
45 제45호 (2015.6.1발행) - 한국의 거지소년 신호범의 미국 상원 5… KBS로고스 15.05.29 556
44 제44호 (2015.4.1발행) - 한국의 거지소년이 미국상원 5선의원이… KBS로고스 15.03.31 684
43 제43호 (2015.2.1발행) -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 5선의원이 되기… KBS로고스 15.02.03 780
42 제42호 (2014.12.1발행) - 입양은 축복이다. (거지 소년의 미국 … KBS로고스 14.12.04 952
41 제41호 (2014.10.1발행) - 역경을 넘고 세상의 빛으로 안면 중화… KBS로고스 14.09.30 923
40 제40호 (2014.8.1발행) - 세상의 빛으로, 고난은 축복으로 이지… KBS로고스 14.08.06 693
39 제39호 (2014.6.1발행) - 불꽃 같은 사랑과 신앙을 남기고 간 손… KBS로고스 14.06.11 824
38 제38호 (2014.4.1발행) - 성경의 진리를 실천했던 손양원 목사 6… KBS로고스 14.04.02 1003
37 제37호 (2014.2.1발행) - 두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양아들로 맞이… KBS로고스 14.02.06 1382
36 제36호 (2013.10.1발행) - 여순 반란 사건으로 순교한 손양원 목… KBS로고스 13.11.29 943
35 제35호 (2013.10.1발행) -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KBS로고스 13.10.08 1003
34 제34호 발행일 2013.8.1 - 고 손양원 목사가 걸어간 순교자의 길… KBS로고스 13.08.07 852
33 제33호 발행일 2013.5.30 -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었던 … KBS로고스 13.05.31 1542
32 제32호 발행일 2013.3.30 - “폭포를 뛰어 넘는 물고기의 용기처… KBS로고스 13.04.02 895
31 제31호 발행일 2013.1.25 - 14살의 장애인 소녀가 가정부로 출발… KBS로고스 13.01.28 1133
30 제30호 발행일 2012.11.12 - 전 백악관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 KBS로고스 12.11.16 1274
29 제29호 발행일 2012.9.1 - 맹인 고아 강영우 박사가 미국 대통령… KBS로고스 12.09.06 1406
28 제28호 발행일 2012.7.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7.07 1023
27 제27호 발행일 2012.4.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4.19 1055
26 제26호 발행일 2012.2.1 -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KBS로고스 12.03.03 983
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547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155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153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2225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082
20 제20호 발행일 2010.12.1 -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기독교인으… KBS로고스 10.12.30 1744
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1920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533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684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629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512
14 제14호 발행일 2009.4.1 - 나라가 어지러울 때 마하트마 간디의 … KBS로고스 09.04.20 1677
13 제13호 발행일 2009.2.1 - 한국인의 해외여행 “소주와 오징어 … KBS로고스 09.03.02 1953
12 제12호 발행일 2008.12.01 - 나의 사랑하는 아내 윤화영에게 KBS로고스 08.12.28 1528
11 제11호 발행일 2008.10.01 - 정명훈을 세계적 지휘자로 만든 사… KBS로고스 08.09.30 1538
10 제10호 발행일 2008.07.01 - 맥아더와 히로히도 천황의 성경공부 KBS로고스 08.08.05 1570
9 제9호 발행일 2008.05.01 -대통령의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위대… KBS로고스 08.06.11 1495
8 제8호 발행일 2007.06.01 - 어버이 살았을 때 KBS로고스 07.06.04 1502
7 제7호 발행일 2007.05.01 - 멀리 멀리 갔더니 KBS로고스 07.06.04 1598
6 제6호 발행일 2003.5.31 - 기적의 신약을 개발하고 2번의 뇌종양… KBS로고스 07.06.02 1745
5 제5호 발행일 2003.2.25 - “간단하게 두어 마디만 해” KBS로고스 07.06.02 1430
4 제4호 발행일 2002.12.20 - 권투선수 홍수환의 4전5기! 그날의 … KBS로고스 07.06.02 1752
3 제3호 발행일 2002.9.25 - 時問과 公義 KBS로고스 07.06.02 1550
2 제2호 발행일 2002.4.1 -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길… KBS로고스 07.06.02 1604
1 제1호 발행일 2002.2.1 - 대통령이 친히 권하는 축하의 술잔을 … KBS로고스 07.06.02 1890
KBS로고스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이메일수집거부

KBS로고스 / 저자:김수호 / 관리자이메일주소 : songpo8304@naver.com
Copyright ⓒ 2002-2007 by Su-Ho Ki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