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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7호 (2017.7.1발행)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이땅에…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7-06-30 10:01     조회 : 33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이땅에 남기고 간 숭고한 사랑의 의술




장기려 박사는 1911년 8월 14일 평북 용천에서 개신교 신자였던 한학자 장운섭과 어머니 최윤경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황해도 송도고보 3학년 때는 이미 성령체험을 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1938년 경성의전(지금의 서울의대)을 거쳐 일본 나고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후 1947년 김일성대학 외과 교수가 되어 김일성의 주치의가 되었다.




장기려 박사의 기독교 신앙 성장에는 김교신의 성서조선과 10년 연배인 함석헌의 신앙 영향, 그리고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의 설교가 그를 확고부동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만들었다.




한편 1950년 북한의 6.25 남침 전쟁으로 장기려 박사도 이산가족이 된다. 즉, 1950년 12월 평양의대 병원에서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수술하던중 갑자기 날아온 폭탄으로 수술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이 급히 철수할 때 이들의 치료를 위해 장기려 박사도 부상병들과 함께 남하했다. 이때 너무나 긴박한 상황이라 평양 종로 앞에서 부인을 잠시 만나 대동강변에서 합류할 것을 약속하고 차남만 데리고 헤어졌다.




그러나 대동강변의 가족 합류는 실패로 끝났다. 이유는 대동강변으로 밀려드는 피난 행렬에서 부인 김봉숙 씨가 남편을 찾지 못하고 결국 다섯 자녀를 데리고 다시 평양 집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때 부인 김봉숙의 나이 34세였다. 불과 몇시간전 평양 종로에서 본 것이 이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1950년 12월 24일 월남후 첫 주일예배를 부산 초량교회에서 드렸으며, 부산의 제3육군 병원에서 부상 장병들을 치료했다.




한편 부산거리는 피난 내려온 행려병 환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쓰러져 죽어 가고 있었다. 장기려 박사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1951년 6월 천막을 치고 무료치료를 실시했는데, 이 천막진료소가 후일 복음병원이 되었다. 천막병원의 치료 소문이 부산에서 급속도로 퍼지면서 특히 오갈 때 없는 행려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장기려 박사는 환자들을 수술하기 전에 항상 간절한 기도를 한다. 이 모습을 본 환자들이 도대체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수술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에 평안을 받는다고 장 박사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한편 복음병원은 시간이 갈수록 의료시설과 병원 규모도 크게 발전했지만 병원 운영은 항상 어려웠다. 그 이유는 장기려 원장의 무료 치료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병원의 부장들이 장기려 원장에게 병원 운영의 어려운 고충을 건의하면서 무료 치료를 중단하자고 하소연 했다.







국내 최초 의료보험 제도 실시




1959년 장기려 박사는 자신이 조직한 부산기독의사회 모임에서 매우 귀중한 정보를 얻게 된다. 즉 당시 덴마크에서 초청연사로 온 의사로부터 덴마크의 의료보험 제도를 알게된 것이다. 장기려 박사는 이 생소한 의료보험 제도를 1968년 자신의 병원에서 실시하기로 하고,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 났을 때 도움 받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당시 소고기 한근 가격이 360원인데 매월 60원의 보험료를 내고 조합원이 되면 언제 든지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효시가 된 것이다. 특히 영세민들로 구성된 조합이라 초창기에는 반발과 의심이 많았다.




즉 몸이 아프지도 않는데 왜 미리 돈을 내라고 하느냐며 장기려 박사를 한 때 사기꾼으로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의료협동조합은 장기려 박사의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박애정신에 감동하여 조합원은 계속 늘어났다. 지금은 22만명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으로 성장하여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의 모태가 되었다. 즉 복음병원의 청십자 의료보험 협동조합이 생긴지 10년후에 비로소 한국의 의료보험이 생긴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의료보험 제도의 저렴한 숫가 때문에 100세 시대를 향한 수명 연장에 절대적 혜택을 받고 있다.




한편 장기려 박사는 1959년에 이미 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했으며, 명의 제1호에 선정되었다. 임상 의사로는 허준에 이어 두번째 과학 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바도 있다. (2006년) 장기려 박사의 인술에는 특히 가난한 환자를 위한 배려가 의료계를 놀라게 했다.




어느날 진료가 끝난 환자가 원무부에 처방전을 주자 수납 직원이 처방전을 보고 이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등 했다. 장기려 박사는 건강 상태가 매우 나쁜 그 환자의 처방전에『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를 먹을 수 있겠금 도와 주시오』…라고 기록했다. 또다른 환자의 경우 너무 가난한 형편의 한 환자가 다음 예약 진료 날자에 못올 것을 미리 알고 장 박사는 처방전에『이 약 먹으면 확실히 차도가 있을 것이니 며칠 뒤 돈이 없어도 꼭 다시 오시오.』……




경남 거창에서 온 한 가난한 농부는 큰 수술이 끝났지만 병원비를 내지 못해 퇴원을 못하고 있었다. 농촌은 모심기가 한창인데 이 농부와 부인의 마음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병원비를 외상으로 해주면 가을 수확때 꼭 갚아 드릴테니 퇴원 좀 시켜 주이소” 매일 병원 원무과장에게 사정했으나 허사였다. 원무과장은 이 농부 부부가 틀림없이 도망칠 것을 예감하고 병원정문의 야간 경비 책임자와 담당 간호사에게 특별 경계령을 내렸다.




장기려 박사도 거창 농민 부부의 안타까운 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드디어 장기려 박사의 농민 환자의 병원 탈출 지원 작전이 비밀리에 진행됐다. 어느날 밤이 깊어가자 병실의 환자들도 잠들고 간호사들도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졸고 있었다. 바로 이때 장기려 박사는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거창 농민 부부가 있는 106호실에 귀신처럼 홀연히 들어가 이들 부부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이들은 원장과 함께 낮은 포복자세로 불이 꺼진 원장실로 기어갔다.




먼저 장 원장은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거창까지 가려면 버스도 여러번 바꿔 타야 하니 차비로 쓰시오” 이때 이들 부부는 장원장을 얼싸안고 소리없이 울었다. 장 원장은 원장실 모퉁이 부분에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 통로문을 열고 이들 부부를 좁은 골목길로 도망치게 했다. 이렇게 해서 거창 농민부부 병원 도피지원 작전이 성공함으로서 이들 부부의 모내기 작업도 차질 없이 잘 진행됐다. 그러나 예상대로 병원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끄러워졌다.




담당 간호사의 칼날 같은 말 소리가 원무과 사무실에서 울려 퍼졌다. 즉 환자가 도망친 것에 대해 야간경비 측과 담당 간호사간의 서로 책임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장기려 박사는 회심의 미소를 짖고 있었다. 원장실로 들어온 원무과 직원과 간호사의 얼굴은 그야말로 죽을 상이 되었다. 원무과 직원이 “환자는 정문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고 담을 타고 넘은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거창 경찰서장에게 체포 요청 전화를 하겠습니다.”




이때 장원장이 원무과 직원에게 한마디 훈시를 한다. “지금 농촌에 모내기 일손이 부족해 학생들까지 동원하여 모내기를 지원한다고 한다. 그만큼 농사는 그 시기를 놓치면 농민은 굶어 죽는다. 그래서 그 환자 농민도 빨리 모내기를 하라고 사실 내가 도망치게 도와주었네, 그러니 야간경비, 간호사 책임 서로 따질 것 없다. 저기 비상용 문을 내가 열어주고 빨리 가서 모내기 잘 하라고 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리고 밀린 병원비는 내 월급에서 매달 떼라”…원장실에서 나온 직원과 간호사는 장기려 박사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뜨거운 사랑의 인술에 눈물을 흘렸다. “이 지구상에 그 수많은 병원이 있지만 병원 치료비를 못낸 가난한 환자를 도망치게 한 병원장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이 말은 이날 원장실에서 나온 남자 직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회고담으로 남긴 글이다.








내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 북한의 내 가족도 도움을 받을 것이다.




장기려 박사의 인술의 첫 번째 대상은 길거리 행려병 환자다. 1960년대 만해도 길거리에는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는 행려 병자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1966년 장기려 박사가 길을 걷다가 뼈만 남아 있는 채 곧 숨을 거둘 것 같은 한 청년을 자신의 병원으로 옮겼다. 진단 결과 28살의 이기동 청년은 척추 결핵으로 이미 하반신이 완전 마비되어 살아도 평생을 누워서 지내야 하는 환자였다. 이기동 청년 환자는 과거 교사였지만, 갑작스런 척추 결핵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외로운 몸이었다.




장기려 박사의 집중 치료로 생명을 건졌으나 찾아갈 집이 없었다. 그래서 장박사는 부산 서구 아미동에 단칸방을 얻어 주었다. 그러나 하반신 마비의 이기동은 옆에서 수발드는 사람이 없어 혼자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마침 이 시기에 병 치료 차 장 박사를 만난 한 여인이 장 박사의 소개로 이기동 청년을 만나는 귀한 인연이 되었다. 장 박사는 이기동이 누워 있는 방안에서 성경을 가운데 놓고 두사람을 부부로 맺어 주었다.




“이 불쌍한 부부에게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임재 하셔서 이들의 생애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시오. 특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불구의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한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축복해 주십시오.” 그야말로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그런데 현대의학으로는 설명도 이해도 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즉 첫 아들에 이어 쌍둥이 자매가지 탄생했다. 당장 아이가 셋이나 되자 부인 김양금 씨는 파출부에서 호떡장사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지만 생활은 어려웠다. 보다 못한 장기려 박사가 된장, 매주, 쌀을 20년 동안이나 지원해 주었다. 한편 그동안 25년을 결핵 척추로 누워서 지낸 이기동씨는 과거 중학교 국어교사의 실력을 발휘『5월의 환상』이란 하나님의 간증 시집을 발행했다. 참고로 그때 이기동씨가 지금 생존해 있다면 (2017년) 76세가 되었을 것이다.




한편 1979년 장 박사는 당시 동양의 노벨상이라고 했던 막사이 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장기려 박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생정신을 높이 존경했다. 이 말에 대해 장 박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북한의 우리 가족을 도와 주실 것입니다.” …









장기려 박사를 괴롭힌 끈질긴 재혼의 권유




1950년 6.25 전쟁으로 장기려 박사가 부인과 이별할 때 그의 나이는 39세였고, 부인 김봉숙은 34세였다. 항상 독신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장기려 박사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주위의 많은 지인들이 재혼을 권유했다. 상대는 대부분 덕망 있는 집안의 여성들로서 장 박사에게 일단 단 한 번이라도 만나 보자고 유혹한다. 그러나 장 박사는 중매가 들어온 날 밤에는 유달리 잠을 설치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 리가 없건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요즘도 이따금 당신과 아이들의 꿈을 꿉니다. 그러고 당신과 약속했던 옛일을 회상합니다. 그때 우리는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만일 우리 둘중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도 우리의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사랑은 육체로 있을 때만 아니라 떠나 있을 때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사랑이다.』…




장기려 박사가 재혼 권유를 거절할 때마다 꼭 하는 말이 있다. “한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굳게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평양에서 결혼식날 주례 목사님이 우리에게 꼭 백년해로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두주먹을 불끈쥐고 하나님께 다짐했습니다.




영원무궁토록 오직 내 아내만을 사랑하겠습니다”… 한편 1991년 미국의 지인으로부터 북한에는 아직도 부인과 가족들이 생존하고 있다는 꿈같은 소식의 편지와 사진을 받았다. 장남은 의학박사, 삼남은 물리학 박사 등 가족 모두가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허망했던 것은 이별할 때 34세의 아내의 모습이 완전 할머니로 변해 있었다. 장기려 박사는 이 사진을 가슴에 품고 몇날밤을 울고 또 울었다. 결국 장기려 박사의 가족 상봉은 성사되지 못한채 1995년 12월 25일 84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부산 복음병원 원장으로 40년 그리고 복음간호대학 학장으로 20년, 꼭 60년을 근무했지만 그가 거처했던 복음병원 옥탑방 이외에 그에게는 소형아파트 한 채도 누울 땅 한 평도 없었다. “내가 죽으면 나의 비문에 주를 섬기면서 살다간 사람이라 적어달라” 그가 생전에 남긴 유언이다.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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