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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3호 (2016.10.1발행) - 밀림의 성자, 지성의 선구자 알베르트…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6-10-14 10:18     조회 : 139    
밀림의 성자, 지성의 선구자 알베르트.슈바이처

슈바이처는 1815년 1월 14일 당시 독일과 프랑스 국경 알사수주의 카이저스 베르크에서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슈바이처가 남긴 많은 저서중에서 특히 슈바이처 연구에 대표적인 저서로는 1931년에 출간된 <나의 생애와 사상>은 어린 시절부터 56세까지 신학, 철학, 종교에 관한 자전적 내용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이다. 그외 아프리카에서 불쌍한 흑인들에게 헌신했던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물과 원시림의 사이에서>가 슈바이처를 세상에 가장 많이 알린 저서로 평가 받고 있다.


슈바이처는 8세때부터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성경 읽기를 배웠으며, 그에 앞서 이미 5세때 역시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9세가 되자 교회 예배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백부는 슈바이처의 천부적 음악성에 감탄 위대한 오르간 연주자며 작곡가인 바하 연주의 최고 실력자인 샤롤마리, 비로도 교수의 지도를 받게 했다. 한편 슈바이처는 18세가 되자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슈트라스 부르크 대학에 입학했으며, 성토마스교회 신학과 기숙사에 들어가 숙식을 했다.


슈바이처는 이 대학에서 당대의 최고 석학인 신학의 대가 홀츠만 교수의 신학 강의에 강열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장학금 지원을 위해 홀츠만 교수가 강의하는 초삼 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시험과목으로 신청했다. 한편 홀츠만 교수의 마태복음 10장의 강의, 이른바 종말론 강의에는 다소 부정적 생각을 했다. 1894년 슈바이처는 1년간 지원병으로서 군복무를 하게되는데, 이때 중대장의 호의로 대학강의를 계속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한편 1896년 슈바이처의 나이 21세때 앞으로 자신의 나이가 30세가 되면 인생의 큰 변화가 올 것을 예측했다. 그래서 그는 30세가 되기 전에 ‘성 만찬의 제정’이란 논문으로 목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고 1898년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칸트의 종교 철학이란 논문으로 철학박사와 그후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외에도 바하의 음악연구와 차원 높은 오르간의 연주 기술 향상에 매진했다. 이렇게 해서 30세까지 종교와 학문과 예술의 공부를 열심히 했다.


“주님의 눈짓이 나를 불렀다.”

1904년 슈바이처가 성토마스 신학교 사감으로 근무할 때 그의 책상에 한권의 팜플렛이 놓여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비치면서 잠자리에서 깨어난 슈바이처는 무심코 이 팜플렛을 펄쳐 보았다. 『아프리카 콩고 지방의 전도회에 필요한 것』이란 제목의 글이 첫눈에 들어왔다. 그 글의 주인공은 앨자스 태생의 파리 선교사 협회장 베그넬이라는 사람이었다.


글의 내용은 프랑스의 식민지 콩고의 북부지방 가본에 흑인 구제 사업에 일할 사람이 없어 이 사업이 문을 닫게 된다는 호소의 내용이다. 즉『주의 눈짓에 응하여 즉시, “주여 제가 그곳에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할 사람들을 지금 교회가 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단숨에 읽고난 슈바이처는 자신의 저서『나의 생활과 사상』에서『내가 30세가 되면 인간을 위한 봉사에 매진하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내가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을 구제하겠다는 이 결단은 망설임 없이 그날 그 순간에 결정했다.』고 기술했다.


1905년 1월 14일 이날은 슈바이처가 30세 생일을 맞이한 날이다. “주여 제가 아프리카로 가겠습니다.” 그의 결심은 확고부동했다. 첫번째 할 일은 먼저 뒷처리를 정리하는 일로서 즉, 예술가로서 학자로서 그동안 벌여 놓았던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 짖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1906년부터 1907년 사이에『예수 연구사』와 프랑스어와 도이치어로된『바하 음악』 그 외에『파이프 오르간의 제작기술』 등의 책을 출간했다. 특히 도이치어로 출판된『바하 음악』은 초판발행 이후 바하 문헌으로는 유럽 최고의 음악서적으로 60년간 음악계의 독보적 찬사를 받았다.


두번째 할 일은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의 원시림에서 병든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필수적 사명이요 봉사다. 그래서 그는 6년간 의학공부를 하기 위해 30세 나이에 의과대학에 들어가 초인적인 노력으로 2년간 병원 실습생을 거쳐 1908년 기초학과와 임상학과를 통과했다.


그리고 1911년 10월 드디어 의사 자격 국가 고시에 합격 의사 자격증을 받았으며, 2년 뒤 1913년에『예수의 정신 의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이 기간에 그동안 슈바이처의 각종 출판 원고 정리 등의 조수로 일했던 헬레네아 결혼을 함으로 생활의 안정도 찾았다. 한편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간다는 소식에 부모, 형제와 친지는 물론 예술계, 학계 인사들은 모두가 깜짝 놀랐으며 그 계획을 당장 철회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나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몸이며, 기독교의 사랑을 꼭 실천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슈바이처의 이 고귀한 뜻을 알게된 각계 각층 사람들의 기부금이 답지하면서 슈바이처의 준비작업도 빨라졌다. 앞으로 병원 개원에 따른 각종 의료기구와 약품을 담은 큰 궤짝 상자가 70개가 넘었다.


미지의 땅 아프리카 원시림으로

1913년 파리 선교사회는 슈바이처가 의료 봉사할곳은 아프리카의 오고웨강 유역에 있는 람바레네라는 곳으로 정해 주었다. 부인 헬레나와 함께 마침 성 금요일 예배와 뒤이어 부활절 예배까지 드린 이들 부부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고향 균스바하를 떠나 1913년 3월 27일 드디어 콩고로 가는 유럽호에 승선했다.


망망 대해를 항해 하면서 이들 부부의 마음은 더욱 착잡했다. 설레이는 기쁨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도 없는 그야말로 병든 부모님을 찾아가는 우울한 심정이었다. 드디어 아프리카 대륙이 가까워 오자 말로만 들었던 노예해안, 황금해안, 상아해안이 나타났다. 지난날 백인들이 상아 장사, 노예 장사 등으로 흑인들의 피맺힌 한이 서린 약탈의 해안이다. 1913년 4월 16일 슈바이처는 드디어 그가 봉사하게 될 람바레네에 도착 시멘트 보로크의 낡은 집에 짐을 풀었다.


당장 의료기구와 약품과 비품 등을 진열할 시설이 없어 이웃의 닭장을 빌려 사용하기로 했다. 드디어 람바레네에도 병원이 생겼다는 소문이 퍼지자 300km나 떨어진 먼 곳에 환자들이 수로를 이용 카누를 타고 병원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1일 평균 환자 치료는 30명으로 정했는데, 환자들의 병 종류는 말라리아에서부터 나병, 탈장, 각종 악성종양 환자들이다. 수술은 1일 2명만 하는데 수술 준비는 부인 헬레나가 마취와 조수 역할을 맡았다.


특히 마취 수술에 대해 흑인들은 매우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의사가 먼저 사람을 죽여놓고 수술후 다시 살려준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러나 흑인들은 그래도 일단 먼저 살고보자는 식으로 마취 수술을 원했다. 이외에도 약 복용 방법을 아무리 주지 시켜도 지키지 않았다. 가령 1일 3회 나누어 먹으라고 준 약을 한꺼번에 다 먹어 버린다. 그리고 환부에 부치라고 준 고약을 그대로 먹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약을 줄 때 마치 군대 복명복창식으로 연습시켜도 돌아서면 그만이다.


오히려 약이 적다고 불평하며 항상 약을 많이 달라고 요구한다. 환자 수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병원 시설을 확장하면서 병원 운영도 점차 나아졌다. 그러나 일부 환자를 제외하고 모든 환자들은 무료로 치료를 받게됨에 따라 병원 운영에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코끼리의 농장 습격 때문에 농산물의 수확이 어려워 쌀은 전량 수입하고 오직 감자, 옥수수, 바나나 이 세가지가 유일한 생계수단의 먹거리다. 그래서 입원 환자들은 각자마다 주로 이 세가지를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


한편 병원이 문을 연지 1년이 되자 슈바이처는 이곳으로 올 때 당시 파리의 바하 협회가 선물한 피아노를 궤짝에서 꺼냈다. 사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올 때 이제 자신의 예술은 막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인들은 슈바이처의 예술이 아프리카 밀림에서 사라져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아프리카로 가는 70개의 의료시설 궤짝에 이 피아노를 담은 궤짝도 함께 보냈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하루의 병원 일과가 끝나면 피아노 연주 연습에 들어간다.


하루 아침에 포로가 된 슈바이처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정보가 1914년 8월 5일 밤에 슈바이처에게 전해졌다. 그날 밤으로 슈바이처는 적국인(敵國人) 포로의 대상자로 즉시 흑인병사의 감시로 구금되었다. 다음날 아침 이 내용을 모르고 찾아오는 환자들은 진료 거부를 내세우는 병사들과 승강이가 심하게 벌어졌다.


그래서 이 지방 사령관의 호의로 위급한 환자들에 한해서는 진료할 수 있겠금 허락을 받았으며, 3개월 후부터 구금이 해제되어 환자 진료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지인들로부터 오는 후원금이 중단되고 쌀 수입도 되지 않아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한편 슈바이처는 1917년 9월 프랑스 본국에 있는 포로 수용소로 이감 명령을 받았는데, 꼭 4년만에 아프리카를 떠났다.


프랑스로 가는 도중에도 여러군데 수용소를 거쳐 1918년 봄 프로망스 지방 수용소에 수감중 포로 교환으로 석방되었다.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으며 젊은 시절 정열적으로 활동했던 슈트라스 부르크에 도착 ‘적리’ 병 수술까지 받았다. 몸이 회복되자 이 지역 시립병원 조수가 되었고 동시에 성 니콜라이 교회 부목사가 되어 당장 생계 걱정을 면하게 되었다.


1919년 1월에는 딸 레나가 탄생했으며 스페인 바로세로나로부터 피아노 연주 초청을 받았다. 또한 슈바이처의 귀국 소식은 전국으로 퍼져 스웨덴의 대승정으로부터 강연 의뢰가 왔으며, 특히 슈바이처의 신학 사상은 영국으로부터 전 유럽 여러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아프리카 원시림의 병원 이야기는 전국 순회 강연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흘리게 했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슈바이처의 피아노 오르간의 바하 연주를 갈망하는 스웨덴 예술인들의 폭발적 인기로 전국 순회 연주를 했다.


이렇게 훌륭한 연주는 그가 아프리카로 떠날 때 파리의 바하 협회가 기증한 피아노를 병원에서 꾸준히 연습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 1920년 스웨덴을 떠날 때 슈바이처는 그동안의 빚을 다 갚고도 엄청난 수익금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감동의 기록물인『물과 원시림사이』가 출판되었고 뒤이어『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문화 퇴폐와 재건』『문화와 윤리』 등의 서적이 불티나게 팔렸다. 거액의 수익금이 모이자 슈바이처의 머리 속에는 떠나온 아프리카의 원시림과 불쌍한 흑인 환자들의 모습이 줄지어 떠오른다.


다시 찾아가는 아프리카 원시림

1924년 2월 14일 슈바이처는 포로 신분으로 쫓겨났던 아프리카 람바레네로 향했다. 특히 이번에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생 1명이 조수로 함께 떠났다. 병원에 도착하니 건물은 다 쓰러져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즉시 병원 건축공사에 들어갔다. 곧 오게될 의사 2명과 간호원 숙소 그리고 70개의 병상 침대를 갖추게 될 병원 건축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병원 건축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밀려드는 환자 치료도 병행했는데, 나병환자를 비롯한 각종 중병환자가 과거보다 훨씬 많았다.


이에 대비 다시 백인 의사와 간호원이 또 충원되어 이제는 의료진의 규칙적인 교체도 실시되었다. 한편 슈바이처는 1928년 괴테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괴테의 고향인 프랑크프르트 마인시로 가서 수상 강연을 했다. 이때 받은 상금으로 자신의 고향 균스바하에『슈바이처의 집』을 지었다. 이어서 1929년에는『사도바울의 신비주의』가 출판되었으며, 특히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나의 생활과 사상』이 1931년 출판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슈바이처

1939년 1월 슈바이처가 2주간 유럽 체류중에 라디오의 뉴스를 통해 히틀러가 체코를 침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즉시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전쟁이 터지면 병원은 우선적으로 부상 장병 치료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1940년 가을부터 병원은 연합군 측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특히 의약품이 완전 고갈되었을 때 미국에서 페니실린 등 신약품이 대량으로 들어왔다. 그 이후 슈바이처는 감사의 답례로 1949년 6월 미국을 방문 많은 후원자를 확보 지속적인 원조 약속을 받는다.


한편 1953년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이때 상금을 나병환자들의 숙소 건축에 기부했다. 또한 1957년 4월 23일 오슬로 방송국은 슈바이처의 원자폭탄 실험 금지에 관한 호소문을 5개 국어로 방송했다. 이 호소문에서 슈바이처는 앞으로 이 원자폭탄은 우리 인류 공멸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세계를 향해 경고했다. 한편 슈바이처의 평생 동반자였던 부인 헬레네가 1957년 6월 1일 사망하자 슈바이처의 람바레네(병원) 생활도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부인이 떠난 지 8년 뒤 1965년 9월 5일 슈바이처는 90세를 1기로 반세기동안 그의 영혼이 깃든 아프리카 람바레네 병원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내 나이 96세에 슈바이처를 다시 읽는다”고 했다. 그만큼 슈바이처는 20세기 위인전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슈바이처는 국경을 초월 52년을 밀림 속에서 오직 신앙과 인술과 박애주의로 살아온 20세기 최고의 비 정치인이다.


슈바이처는 좋은 직장과 명성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빈궁한 나라 아프리카 가봉의 원시림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가장 불쌍한 흑인환자들에게 봉사 정신의 중요성을 인류 역사에 행동으로 남긴 밀림의 성자요, 지성의 선구자로 만인의 추앙을 받고 있다.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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