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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9호 (2016.2.1발행) - 침을 뱉고 떠난 조국에 대학 교수가 …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6-02-04 13:47     조회 : 401    
제49호 (2016.2.1발행) -  침을 뱉고 떠난 조국에 대학 교수가 되어 돌아온 전 미국 상원의원 신호범 8번째 이야기


<지난 줄거리 요약>


『신호범의 약혼녀였던 독일 여대생의 배신으로 절망에 빠졌을 때 미국 국무성에서 보낸 외교관 시험 합격통지서는 신호범에게 크나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며칠후 미국 국무성은 신호범의 외교관 시험 합격을 취소한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이유는 신호범이 미국 시민권을 받은지 아직 9년 3개월이 경과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호범은 국무성에 합격 취소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간절한 탄원서를 보냈다.


거지소년이 미국에 입양되어 자립으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겪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알게된 미국 국무성은 신호범에게 장학금을 주어 대학원 공부를 시킨다. 한편 신호범은 교회에서 알게된 ‘다나’라는 여성과의 결혼이 큰 난간에 부닥친다. 즉 당시만 해도 (1960년대) 미국 사회는 유색인종과 국제결혼을 반대했는데, 유일하게 캘리포니아주만이 국제결혼을 인정해서 LA에서 결혼했다. 지난호 130호에 게재된 더 자세한 내용은 안드레명상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다.』 www.andre.pe.kr


 피츠버그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신호범은 브리감영 대학 하와이 캠퍼스에서 강의를 맡았다. 학교에서 제공한 교수 사택은 아름다운 하와이 해변이 전개되는 좋은 주택이었고, 특히 자신이 배정 받은 연구실 출입문에 붙은『신호범 교수』문패를 보는 순간 신호범은 “아, 드디어 내가 교수라니……” 감격과 희열이 전류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80명 교수 중에 유일한 동양인교수가 된 신호범이 맡은 과목은 동양사, 국제정치, 세계문화사 세 과목이었다.


첫날 강의시간에 앞서 신호범은 잠시 묵상의 기도를 했다. “하나님! 영어도 완벽하지 못한데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요.


그러나 하나님, 저의 머리에 총명과 지혜로 채워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학생들을 잘 지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첫날 강의를 극도의 긴장 속에서 마친 신호범은 매일 매일 완벽한 강의준비로 학생들의 인기를 모아 동양계 학생들의 수강 숫자가 점차 늘어났다. 이에 따라 대학교는 신호범을 동양계 학생 과장으로 임명하고 매년 여름이면 한국, 일본, 중국 등지를 순방하며, 장학생 선발의 중책을 맡겼다. 또한 신호범의 아내 다나도 이곳 하와이에서 중학교 교사로 채용되어 가정에는 약간의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그리하여 이들 부부는 교회에 십일조 헌금도 하고 일부 금액은 한국에 있는 친아버지에게 생활비로 보냈다. 그러나 한가지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다나가 드디어 임신이 되었을 때 신호범은 너무 기뻐 길을 걸으면서도 어깨춤을 추었고 매사가 즐거움과 희열이 넘쳤다. 그러나 임신 3개월 때 아기는 유산이 되고 말았다.


충격과 슬픔을 잘 극복한 이들 부부는 하나님이 다음에는 건강한 아이를 주실 줄 믿는다면서 서로 위로를 했다. 한편 한국 유학생들이 점차 늘어나자 해마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신호범은 한국말이 서툴러 가능한 한국 학생들과 대화를 피했다. 그런데 이날 파티장에서 사고가 터졌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대학원생이 신호범에게 “한국에서는 어느 학교를 나왔습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는 학교에 못 다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이런 개자식! 한국 학교도 못 다닌 놈이 여긴 왜 왔어!”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순간 신호범은 정신이 아찔해 졌다. 이유도 없이 모욕을 당했기에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지만 우선 한국 말을 조리있게 잘 할수 없었고 또한 소란이 커지면 교수 체면도 손상될 것 같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 앞에서 당한 모욕감에 분함과 서러움을 참지 못해 길을 걸어가면서 계속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소란이 생겼을 때 마침 아내 다나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 상황을 알지 못했다. 무려 5시간을 걸으면서 분을 삭였다. 신호범은 그날 한가지 큰 결심을 했다. “내 기어이 한국말을 완벽하게 배우고 말겠다”고……


신호범은 사실 거지생활 하느라고 초등학교를 못 다녔기 때문에 한글의 기초실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상스러운 말뿐이었다. 한편 신호범은 대학교 신입생 모집을 위해 동양의 여러 나라를 순방하는 길에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한국 땅을 밟았다. 김포공항에서 어떤 기자와 간단한 인터뷰를 했는데 다음날 신문에 “거지소년이 고국을 떠난 지 11년만에 미국의 대학 교수가 되어 미국인 부인을 데리고 함박웃음으로 고국땅을 밟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신호범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서울의 남대문 시장이었다. 신호범이 거지시절 늘 찾았던 순대국집, 국수집, 꿀꿀이죽집 등 그 당시 점포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시절 어린 거지가 좌판 앞에 너무 오래 앉아 기다리는 것이 장사에 지장이 된다고 자르던 순대 꼭지를 주고 얼른 떠나라고 했던 아주머니, 역시 장사에 지장이 된다면서 국수를 말아주며 빨리 먹고 자리를 비키라고 했던 아주머니, 그리고 팔다 남은 떡 부스러기를 모아주었던 좌판의 떡장수 아주머니, 특히 신호범에게 옛 기억을 또렷이 생각나게 한 것은 야채 실은 수레였다.


즉 그날 따라 너무나 배가 고파 야채 수레에 오이 한 개를 슬쩍 빼먹다 주인에게 들켜 셀수없이 뺨을 맞았던 일이 눈앞에서 선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꿀꿀이 죽을 얻어 먹었던 그 식당에 오늘은 당당하게 들어가 내 돈을 주고 사먹었다. 그러나 코흘리게 시절 얻어 먹었던 그때 그 꿀꿀이 죽맛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물 한방울 없이 한그릇을 다 먹어 치웠다. 식당문을 나서는데 이유 없는 눈물이 글썽거리면서 그의 발걸음은 서울역으로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눈비가 내리는 추운 겨울철 그에게 항상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던 남대문 지하도를 찾았다.


낮이라서 그런지 걸인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서울역을 보는 순간 신호범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모습이었고 특히 겨울철 양지바른 구석에 앉아 옷을 벗어 이를 잡았던 그 모퉁이 자리도 변함이 없었다. 마침 동냥하는 것 같이 보이는 한 초라한 소년이 지나가기에 손짓으로 불러 돈을 주었다. 돈을 손에 꼭 지워주던 신호범의 얼굴에 순간 왈칵 눈물이 흘렀다.


신호범은 소년에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거지 소년은 신호범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몇번이나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거지 소년 시절 기차표를 사는 손님들 옆에서 무작정 서 있던 어느날 어떤 분이 차표를 사고 받은 거스름돈을 몽땅 신호범 손에 쥐어 주었다. 그 날밤 신호범은 그 돈으로 그토록 먹고 싶었던 호떡을 사서 맛있게 먹으면서 도대체 그 손님은 어떤 분인지가 궁금했다. 오늘 신호범은 그날의 그 손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그 거지소년에게 돈을 준 것에 대해 너무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 산천을 찾아온 신호범


다음날 신호범은 아내 다나와 함께 신촌에서 고향으로 가는 금촌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의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백인 여성 다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수군댔다. 이러한 현상은 신호범이 미국에서 수없이 겪었던 인종 차별의 시각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신호범이 탄 시골버스는 드디어 금촌에 도착했다. 들판은 모 심기를 앞두고 논마다 물이 가득 실어 있었고 힘차게 울어대는 개구리의 합창은 신호범의 금의환향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어린 시절 즐겁게 뒹굴었던 들녘의 뚝방길도 실개천의 도랑물도 변함없었다. 꿈에도 그리웠던 그 얼마나 보고 싶었던 고향 산천이었던가, 신호범이 드디어 대골리 고향 집을 바라보는 순간 과연 외할머니가 지금도 살아 계실지가 가장 궁금했다. 발걸음은 급하고 마음은 더욱더 초조해졌다. 드디어 신호범이 싸리문을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외숙모가 나타났다.


외숙모는 “왠 신사양반이 미국 여자를 데리고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왔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아이고! 이게 호범이 아닌가, 호범이 맞지, 어머니, 호범이가 왔어요!” 하고 크게 고함을 질렀다. 순간 신호범은 외할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다.외숙모의 고함소리에 할머니가 방문을 열면서 “뭐야? 지금 뭐라 했나? 호범이라고”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와서 신호범을 보는 순간 “아이고 이놈아! 네가 정말 살아 있었구나! 아이고, 이게 혹시 꿈이냐, 생시냐!”하며 신호범을 부둥켜 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신호범은 너무나도 꼬부라져 버린 할머니의 허리를 어루만지며 통곡했다. 한참동안 울던 신호범이 아내 다나를 할머니께 소개했다. “할머니, 제 집사람입니다.” 할머니는 다소 신기한 표정으로 “아이고, 참 예쁘구나, 색시가 꼭 아이들 장난감의 인형 같구나,” 할머니는 손주 며느리의 이모저모 아래 위를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손과 얼굴 그리고 머리카락까지 만지면서 “세상에 무슨 사람의 모양이 요렇게도 곱게 생겼느냐”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편 일곱 살때 헤어진 외사촌 동생들도 모두 20대 후반의 청년들이 되어 있었다. 저녁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각자마다 한마디씩 했다. “어미도 없이 자라 떠돌아 다니던 호범이가 출세했다.” “호범이는 초등학교도 못다녔지” “이제 미국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잖아” 할머니들은 어린시절 신호범의 천덕꾸러기 시절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에도 다나의 인기는 여전했다.


즉 이날 저녁 동네 아낙네들은 모두가 다나의 천사 같은 옷차림, 아름다운 머리카락, 손등을 『만지면서 “어떻게 사람의 몸이 이렇게 백옥 같이 보이느냐 혹시 환칠을 너무 많이 바른 것 아니냐?하고 감탄을 했다. 사실 그 당시 도시 아닌 시골 사람이 서양 여인의 몸을 직접 만지고 본다는 것은 그들 평생에 처음 있는 신기한 일이었다.


한편 이날 저녁 누구보다 신이 나고 바쁜 사람은 바로 신호범의 외숙모였으며, 금의환향한 신호범을 위해 정성들여 만든 음식으로 이웃 사람들을 대접했다. 신호범이 어린시절 외숙모 집에서 지낸 것은 4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6살까지 외숙모 집에서 살았다. 외숙모 집을 떠난 이유는 바로 동생들이 먹던 엿을 신호범이 빼앗아 먹자 외숙모로부터 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매맞은 자리에 피까지 흐르자 6살의 신호범은 “나는 앞으로 꼭 엿장수가 되어 평생 엿을 실컷 먹겠다”며 가출해 버렸다.


한편 신호범은 고향 방문 몇 년후 외숙모를 위해서 이곳 고향 마당에 우물이 있는 좋은 기와집 한 채를 사드렸다. 신호범은 외숙모가 가르쳐준 주소로 다음날 서울 영등포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찾았다. 일곱식구와 함께 단칸 셋방에서 궁색하게 살고 있는 아버지는 매우 초췌한 모습으로 술에 취해 있었다. 신사복 차림에 백인 부인까지 데리고 나타난 아들을 본 아버지의 첫말은 “너 출세했구나” 하면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다섯 동생들에게 준비해간 선물을 나눠주며 궁핍하게 살아가는 새어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해 줄 때 신호범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한편 신호범은 다음 날부터 아내 다나를 위해 여러 곳에 관광을 했으며, 특히 부산 국제항 부두를 찾아 갔을 때는 11년 전 눈물로 얼룩졌던 그 날의 서글픈 자신의 모습이 머리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미국의 양아버지로부터 초청장을 받고도 여권을 만들지 못해 입양을 포기하는 상황에까지 갔었다. 돈도 배경도 없는 신호범이 여권 발급에 필요한 서류를 만든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 했다.


즉 부정과 부패가 관공서에 곰팡이처럼 퍼져서 오직 돈 봉투만이 해결의 수단이었던 시절이었다. 3년여 노력했던 여권 서류 준비가 허사로 끝나자 신호범은 결국 미국 입양을 포기한다는 편지를 양아버지께 보냈다. 남대문 시장 소년 거지에서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를 거쳐 드디어 미국 입양의 푸른 꿈을 달성하고 미국에서 기필코 출세하겠다는 신호범의 그 굳건한 의지는 안개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한편 신호범의 안타까운 사정을 뒤늦게 알게된 미국의 양아버지는 주한 미국 대사관에 신호범의 딱한 사정을 호소하여 불과 이틀만에 여권을 발급 받았다.


신호범은 11년전 부산항 국제 부두에서 미군 수송함 화물선에 오르던 그 날을 회상하며 아내 다나 몰래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당시 미국 유학을 떠나는 10여명의 청년들은 모두가 꽃다발을 안고 전송 나온 부모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으며, 청년들은 서로가 각자 자기 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즉 어느 대학을 나왔으며 미국에 어느 대학에 유학가느냐, 전공은 무엇이냐, 등등 그러나 신호범이 답변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빨리 배가 출항하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이 울리자 신호범은 홀로 선상으로 올라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를 낳아준 내 조국아! 부정과 부패로 썩어가는 이 땅을 나는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에잇!” 하고 바다를 향해 침을 뱉었다.


“나를 반기고 믿어준 사람 하나 없는 한맺힌 이 땅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하고 두 번째 침을 뱉었다. “이제 나는 너를 버리고 간다, 무지개가 기다리는 미국으로 간다!”하고 세 번째 침을 뱉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11년전 그토록 가슴아팠던 그 날의 그 부산 부두를 다시찾은 신호범은 조국이 무엇이길래를 가슴 깊히 생각했다. -끝-


※ 다음 132호 예고

신호범은 미국의 교포 사회에서 서툰 한국말 때문에 눈총을 받을 때가 많아지자 본격적인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성균관 대학교 학장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 한국학과를 세웠던 국문학자 서두수 박사에게서 주 2회씩 우리말 교육을 받는다. 또한 워싱턴 대학 교환교수로 와 있던 당시 고병익 교수로부터(전.서울대총장) 한국 고대사와 현대사를 배우면서 본격적인 교포 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부모님을 모셔 오고 이복 동생 다섯명까지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자립시킨다.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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