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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호 (2014.6.1발행) - 불꽃 같은 사랑과 신앙을 남기고 간 손…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4-06-11 11:12     조회 : 738    
 고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는 이번 121호로서 7회에 걸쳐 연재를 마치게 된다. 그동안 많은 독자들로부터 손양원 목사의 그 위대한 신앙 여정에 대해 진한 감동과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이 그토록 강요했던 신사참배를 생명을 걸고 끝까지 반대 투쟁했던 일, 그리고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빨아준 사건, 그것은 인간 사랑의 한계를 초월한 즉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실천했던 한국 기독교 역사의 불멸의 성자라고 했다.
 

특히 두아들을 죽인 살인범 즉 아들의 친구를 사형직전 극적으로 살려내어 양아들로 맞이한 사건 등 그 파란만장의 손양원 목사가 남기고 간 신앙의 발자취를 그동안 안드레명상에서 요약 게재를 해준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한편 손양원 목사는 1950년 9월 28일밤 전남 여수 인근의 미평 과수원에서 북한 인민군들에 의해 총살 순교했다. 두아들도 좌익계열 친구들에 의해 역시 총살 순교했다.
 

손양원 목사가 순교하기 몇시간전 부인 정양순 사모는 남편을 보낸 대신 아들을 낳았다. 손목사의 시신이 애양원 마당에 도착 침상에 누운 상태로 천으로 덮힌 당시의 흑백사진을 보면 부인 정양순 사모가 전날밤 태어난 아이를 안고 손목사 시신 옆에 넋을 잃고 앉아 있다.
 

다행히 이 아이는 손목사의 순교직전 불과 몇시간 전에 태어나서 유복자는 아니었다. 정양순 사모는 이 아이에게 혹시 마지막 떠나가는 아버지의 얼굴이라도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천으로 덮힌 손목사 시신에서 얼굴만 조금 보이게 했다. 손목사의 장례는 10월 13일 3일장으로 거행되었다. 경향 각지에서 찾아온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고 1천여명의 애양원 가족들의 애곡소리는 3일 낮·밤을 그칠줄 몰랐다.
 

특히 나병환자들이 울부짖는 눈물의 절규는 손목사가 평소 나병환자들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그대로 대변했다.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는 “아버지의 친구는 권세자도, 성자도, 학자도 아닌 오직 세상에서 천대받는 나병환자들만이 진정한 친구였다”고 증언했다.
 

손양원 목사가 애양원에 전도사로 부임할 때만 해도 그 시절의 우리나라 나병환자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개 짐승보다 못한 저주의 대상이요, 오직 죽는날만 기다릴 뿐이다. 지금은 한센병이라고 부르지만 그 당시는 문둥이라고 불렀다. 행복했던 한 가정에 문둥병 환자가 생기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피를 나눈 형제간이라도 당장 쫓아내야 한다.
 

젊은 부인과 남편도 그들이 낳은 자녀들도 그중 누군가가 문둥이가 되면 집에서 소리 없이 한밤중에 정처없이 떠난다. 첫째 이유는 동네에 소문이 퍼지기 전에 그리고 병이 전염되는 것이 두렵고, 무섭고, 더러워서 같이 지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시절의 그 많은 나병환자 중에서 국민들의 심금을 울린 대표적인 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둥이도 사람이라고 피를 토해내듯 외치며 자신의 문둥이 신세를 수많은 영가(靈歌)와 시(詩)로 남긴 사람이 바로 나병시인 한하운이었다. (본명:한태영) 함남 함주에서 태어난 한하운은 17세때 나병에 걸렸으나, 필사의 노력으로 다행히 병세를 잡아 1943년 중국 베이징대학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그후 그는 함남도청과 경기도청 축산과에 근무하면서 개마고원 개발에도 전념했으나, 27세때 이 병이 재발했다. 이때부터 한하운은 전국을 정처없이 유랑하며 천형의 고통을 시로 승화시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유랑시인이 되었다.  한하운의 절망적 고통과 한 맺힌 한숨 소리가 지금도 들려 올 것 같은 그의 대표적 시가 바로 보리피리, 황토길, 파랑새 등이 있다.
 

김포시 장릉공원 묘지에 안장된 한하운의 비석 뒷면에는 <보리피리> 가사가 새겨져 있다. 젊은 나이에 나병이 생겨 찾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봄 언덕 꽃동산에 친구들과 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글이다. 또한 <황토길> 시에는가도가도 황토길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구나 신을 벗으면 발꼬락도 한개 없어졌구나….
 

그리고 <파랑새>란 시에는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들 날아다니며… 한하운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자유와 가족간의 기본적 윤리도덕 그리고 혈연조차 끊어버리는 천형(天刑)의 비애를 시로서 분출시켜 나갔다. <나의 슬픈 반생기>라는 한하운의 자서전에 의하면 가문 대대로 즉 3대에 계속 과거에 급제한 선비의 집안이었다.
 

단신 월남한 한하운은 가마니를 이불삼고 쓰레기통에서 그날 그날의 끼니를 해결하면서 날마다 악화되는 나병에 절망적 고통과 피맺히는 울음소리를 시로 써 내려갔다.그의 시는 서서히 문단에 알려지면서 1949년 <신천지> 4월호에 게재되었고, 당시 서울신문 사회부장 오소백은 한하운을 신문사로 초청 세상으로부터 나병 시인이라고 외면당하던 그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한하운은 바로 이 자리에서 오소백 사회부장에게 즉흥시로 시 한수를 써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보리피리>였다. 한편 당시 한하운의 작품 내용이 다소 불온하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오소백 부장이 한하운을 감싸준 것이 문제가 되어 오소백과 사회부차장 문제안 기자가 신문사에서 파면을 당하는 사건이 생겼다.
 

1955년 발표된 <보리피리>는 날이 갈수록 대중들에게 크게 소문이 퍼지자 작사자 반야월의 <나는 사람이 아니외다>라는 제목으로 작사를 했고 박시춘이 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가사가 너무 슬프고 특히 이 노래는 문둥이 노래하고 해서 재수가 없다는 등의 소문으로 큰 유행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노래 제목을 “님의 통곡”이라고 바꾸고 당대의 최고가수 남인수가 이 노래를 불렀다.
 

1절 : 하늘도 날버리고 세상도 날버리고

 돌에도 나무에도 붙일곳없는 신세

 한강수 푸른물에 던지고싶은 이목숨

 살아서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외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내것이 아니외다
 
 
2절 : 사랑도 날버리고 친구도 날버리고

 날보면 피해가네 침뱉고 돌아가네

 달리는 철길위에 깔리고 싶은 이목숨

 이름만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외다

 다빠진 두눈섭 내것이 아니외다
 
 
 오늘날 KBS 가요무대에서 혹시 이 노래가 방송된다면 오늘의 이시대 우리 국민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노래를 감상할까? 한편 한하운은 그 무서운 나병을 이겨내고 대한 한센 연합위원장 직을 맡아 나환자 구제운동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1975년 2월 28일 한하운은 간경화증으로 57세 나이에 한많은 이 세상을 하직했다.
 
 
 

불꽃 같은 사랑과 신앙을 남기고 간 손양원 목사
 
 
 

 당시 애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은 고향도, 부모형제도 그리고 호적도 없었다. 그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집안 족보에 아예 문둥병 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한 극비로 숨겼다. 이것은 바로 후손들의 혼사는 물론이며, 그 집안의 정통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안드레명상 116호의 손양원 목사 딸 손동희 권사의 증언에서도 밝혀졌듯이 당시 애양원의 중환자들이 기거하는 방은 나병환자들의 환부에서 흐르는 진물로 인해 남자 간호사들은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출입을 했다.
 

뿐만 아니라 나균의 전념을 방지하기 위해 장갑을 끼고 장화를 꼭 신고 출입하는 엄격한 규칙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손양원 전도사는 이런 규칙도 아예 무시하고 수시로 들어가 기도를 해주고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더 충격적인 일은 나병에는 사람의 침이 약보다 더 좋다면서 그들의 환부에서 흐르는 피고름을 입으로 쭉쭉 빨아 주었다. 이 날의 돌발적인 사건은 너무나 갑자기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그래서 이때 환자들은 손전도사의 행동에 미쳐 제지도 못하고 뒷걸음만 치면서 모두가 새파랗게 질려 벌벌 떨기만 했다고 한다.
 

“네 이웃을 네몸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진리를 실천했던 이날의 손양원 목사의 그 뜨거운 사랑은 한국기독교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종교 문제로 가뜩이나 나라가 시끄러울 때 제2의 손양원 목사가 다시 이 땅에 혜성처럼 나타나기를 기원해 본다.
 

한편 손양원 목사의 순교로 인해 한 집안에 세사람이 순교함으로 이 가정에 남는 것은 가난과, 고통, 눈물 뿐이었다. 그러나 유족들은 그 위대한 손목사의 신앙의 씨앗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으며 하나님도 결코 무심치 않아 이 가정에 물질의 복을 내려주었다. 당시 애양원은 손목사의 유족들이 살 수 있는 방두칸짜리 작은 집을 애양원안에 지어주었다.
 

그리고 당시 17세의 손동희에게도 축복의 길이 열렸는데 선교사로 한국에 온 유명한 피아니스트 마두원 목사에게서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당시 마두원 선교사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의 친구인 안용준 목사의 간곡한 추천으로 손동희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고 피아노 레슨에 죽기살기로 매달렸다.
 

날로 달라지는 손동희의 피아노 실력은 스승인 마두원 선교사를 감탄시켰고 드디어 손동희는 직접 개인 레슨으로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또한 동생들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켜서 동생 동림이는 부산 사범대학 피아노과를 졸업시켰고, 동연이는 경희대 피아노과와 동 대학원을 나와 그당시 부산의 한성여대, 세종대, 경희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켰다.
 

한편 손양원 목사의 부인 정양순 사모는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개척교회 건축모금 운동을 열심히 전개 신풍교회 건축을 도왔고 특히 나환자들의 교회로 알려진 밀양교회 건축에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교회 건축모금운동의 과로로 1977년 11월 26일 당시 부산 청십자의원에서 72세로 운명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자신의 가슴에 돈이 든 전대가 있음을 눈짓으로 알렸다. 교회 건축 모금으로 한푼 두푼 모아온 꼬깃꼬깃한 돈을 묶어놓은 전대 띠였다.
 

“이 돈을 밀양교회에 갖다 주어라” 퍽 오랜만에 미소띤 이 말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긴 말이다. 그는 성경학교만 졸업했지만 성경 신·구약의 역사를 줄줄 외웠고, 가끔 손양원 목사가 설교준비에 미쳐 생각이 안나는 성경 구절을 물으면 즉시 몇장 몇절까지 알려준다.
 

그 때마다 손목사는 “당신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성경사전”이요 라고 칭찬했다.
 
 
 
 

손양원 목사의 양아들 강철민의 그후
 
 
 
 

손동희 권사의 간증집회에서 청중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강철민에 대한 궁금증이었다고 한다. 19세 동신이와 25세의 동인이를 한자리에서 사살했던 살인범 강철민(가명)을 사형 직전에 살려내고 양아들로 맞이했던 손양원 목사! 그 강철민을 친아들처럼 사랑하며 성경공부를 시켜 앞으로 선한목자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남으로 강철민의 목회자 꿈은 사라져 갔다. 강철민이 1952년에서 54년가지 군인 하사로 제주도에서 근무할 때 당시 신광교회 전도사로 사역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강철민은 서울에서 아파트 수위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가난하게 살아갔다.
 

1976년 강철민은 오랜만에 어머니 정양순 사모가 보고 싶어 부산으로 내려갔다. 마침 이날 정양순 사모는 시장에 가고 없었으며 손동희만 있었다. 강철민은 정양순 어머니가 올때까지 마루턱에 앉아 잠시 기도를 한후 무심코 문틀 위에 붙은 사진을 보고 있었다. 사진틀 안에 있는 사진중에 유달리 눈에 들어오는 흑백사진 한장이 강철민의 심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강철민이 직접 죽였던 손동신과 손동인이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즉 강철민에게 사살되기 전에 모습 그대로였다. 강철민은 넋을 잃은채 그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
 

손동희는 뒤늦게 집에 들어오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어머니는 즉시 뛰어나가 강철민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강철민은 자신이 죽인 옛 친구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엄청난 충격 즉 양심의 죄책감 때문에 그 자리에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갔다.
 

한편 강철민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목사가 되어 원주의 모 교회 담임목사로 목회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편 강철민은 편도선 암의 진단을 받고 실의에 빠져 세상 떠날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5일전 마침 손동희가 서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손동희를찾아갔다. 강철민은 이미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 극도로 쇠약한 상태에서 손동희를 보자마자 손동희의 손을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손동희의 어린 가슴을 난도질했던 강철민 두 오빠를 한꺼번에 죽인 강철민에 대한 저주는 평생 사는동안 도저히 지울 수가 없어 이를 갈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강철민이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옴을 알기 때문에 오늘 손동희에게 마지막 눈물의 사죄를 했다. 강철민이 손동희 앞에 엎드려 울며불며 용서를 구하는 그 처절한 모습 앞에서 손동희의 멍든 가슴의 엉어리는 마치 봄눈이 녹듯이 서서히 녹아 내렸다. 드디어 손동희의 두눈에 참았던 눈물보가 터졌다.
 

“오빠 나 용서했어, 지난날 오빠를 철천지 원수처럼 여겼던 그 저주도, 미움도, 다 용서했어, 오늘 나의 이 용서는 분명 하늘나라 저 천국에 계신 아버지와 두 오빠도 이 모습을 보면 아마 잘했다고 칭찬할꺼야” 손동희의 용서를 받은 강철민은 100년 한이라도 푼 것 같이 “동희야,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 곧 하늘나라로 간다.
 

내 죽어서 천당에 가면 네 두오빠에게 무릎꿇고 사죄하겠다”며 힘없이 일어서자 손동희는 강철민의 옷 자락을 붙들고 다시한번 오열했다. 다음은 그 당시 손동희가 쓴 글이다.
 

오빠! 오빠! 철민오빠! 왜 벌써 떠나시렵니까.
 

옛날 아버님이 애타게 부탁하던 그 큰일 잊으셨나요.
 

큰오빠, 작은오빠, 못다한 일 철민 오빠가 대신하라 하지 않았소. 이 강산 이 민족에 큰 일꾼되어 달라 다짐하지 안았던가요. 영원히 또 영원히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그는 사라졌다. 삶의 길은 그렇고 그렇지 몇천년 살 것인가, 몇만년 살 것인가, 해는 지고 너 갔으니 나 또한 가야지! 영원한 고향길 고운님들 사는 그 곳으로……
 

한편 강철민은 손동희와 용서와 화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지 15일만인 1979년 12월 19일 48세의 나이로 한으로 얼룩진 기구한 운명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만일 손양원 목사가 오랫동안 살아 있었다면 강철민은 훌륭한 목회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한편 올해(2014년) 82세의 손동희 권사는 지금도 부산의 대연중앙교회 1부 찬양대의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으며, 간증 집회도 계속하고 있다.
 

-끝-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고 손양원 목사에 관한 안드레명상 집필에 자료 제공의 도움을 준 아가페 출판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가페 출판사 : 02-584-4835
손동희 권사 : 051-628-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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