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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8호 (2014.4.1발행) - 성경의 진리를 실천했던 손양원 목사 6…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4-04-02 11:16     조회 : 900    
성경의 진리를 실천했던 손양원 목사 6번째 이야기
 

※ 지난 줄거리
 

『손양원 목사는 1948년 10월 19일 여순반란사건때 두아들이 한꺼번에 총살당하는 비극을 당했다. 그것도 아들이 다니던 같은 학교 좌익계열 친구들에 의해서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개총살을 당했다. 당시 여수와 순천은 좌익계열 반란군에 의해 불과 일주일동안 3천5백명이 소위 인민재판 형식으로 처형당했다.
 

여수와 순천 시내 거리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이들의 시체가 볏집단처럼 그대로 쌓여 있었다. 한편 일주일만에 전세는 바뀌어 국군이 진주하면서 반란군 소탕 작전으로 피의 보복전이 전개된다.
 

손양원 목사의 두아들 손동인(당시 25세)과 손동신(19세)을 죽인 친구 강철민(가명)도 체포되어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을 때 손양원 목사는 성경을 가슴에 품고 비장한 결단을 내린다.
 

즉 두아들을 죽인 살인범 강철민을 살려내어 장남으로 받아 드린다. 이는 두아들을 보낸 대신 새로 얻은 아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진리를 꼭 실천하겠다는 숭고한 뜻이었다.』……
 

 강철민을 사형 직전에 살려낸 손양원 목사는 강철민의 집을 찾았다. 강철민의 부모님은 뜻밖에 나타난 아들의 생명을 구해 준 손목사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쏟아 낸다. 특히 이날 강철민을 처음 보게된 손양원 목사는 “네가 철민이냐? 이리 오너라!” 손목사는 떨고 있는 철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안심해라 네 실수는 벌써 용서했다. 아마 하나님도 용서했을 줄 믿는다. 나는 너의 과오는 기억도 안한다. 예수 잘믿고 내 죽은 두아들 할 일을 네가 대신해서 예수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다오”……
 

드디어 강철민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손양원 목사의 강한 집념이 실천으로 들어갔다. 우선 일차적으로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부흥집회 때마다 강철민을 꼭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설교를 듣게 한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생겨났다.
 

즉 부흥회에 참석한 수많은 성도들은 손양원 목사가 두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아들로 받아드린 강철민이란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기 위해 그들의 시야가 강철민에게 총 집중되었다. 이는 마치 수많은 청중속에 갑짜기 이상한 동물이 나타난 것을 구경할려는 심리와 같았다.
 

한편 당시 손양원 목사의 부흥집회는 2천회를 넘었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특히 손양원 목사가 가장 경계한 것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신비주의나 기복신앙이다. 이 당시 부산 초량교회 부흥회에서 있었던 일을 손동희 권사의 작은어머니었던 최호순씨가 남긴 증언으로 알아본다.
 

손목사의 설교가 우렁차게 울려퍼지면서 성도들의 찬송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갑자기 사건(기적)이 터졌다. 내용인즉 앞 못보는 한 장님이 고함을 질렀다. “목사님, 목사님 내 눈이 보여요 내가, 내가, 지금 눈을 떳어요.”하며 팔짝 팔짝뛰며 통곡을 했다.
 

이 장님을 평소부터 알고 있던 성도들이 이 기적을 보고 모두가 감탄하여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이 터지도록 찬송을 불렀다. 그런데 이 순간 가장 기뻐해야 할 손양원 목사는 흥분에 도취한 성도들에게 침착하라고 외쳤다.
 

“성도 여러분 제발 조용히 하십시오. 다들 앉으십시오. 저 장님이 눈을 뜬 것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내 설교는 영혼의 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지 육신의 병을 고치기 위한 설교가 아닙니다. 저 사람은 자기의 믿음으로 눈을 뜬 것이지 내가 눈을 뜨게 한 것은 아닙니다”.
 

…… 장내가 숙연해지면서 성도들은 모두가 “과연 손목사다”…… 이것이 바로 신비주의와 기복신앙을 경계한 손양원 목사 신앙의 기둥이요, 핵심이다. 오늘날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유명한 목회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손목사는 부흥집회때 강단에 서기전에 항상 먼저 자신의 성경책 앞에 적어 놓은 글을 읽는다.
 

첫째, 하나님의 지능 의지하고 나의 지(知)를 믿지 말 것.
 

둘째, 주님을 나타내지 않고 나를 나타낼까 삼가 조심할 것.
 

셋째, 성경 원리 잘 모르고 내 지식대로 거짓말하지 않게 할 것.
 

넷 째, 간증할 때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거짓말되지 않게 할 것.
 

다섯째, 나도 못 행하는 것을 남에게 무거운 짐 지우지 말 것.
 

여섯째, 내 한마디 말에 청중 생명의 생사 좌우됨을 깊이 알고 말에 조심도, 열심도 충성도 다할 것.
 

일곱째, 이 한시간에 성경말씀 한마디에 인령(人靈)의 생사가 좌우되는 것을 잘 생각해야 된다.
 

여덟째, 음식과 물질에도 크게 주의할 것.
 

① 주님 대신 받는 대접이니 대접받을 자격 있나 살펴라.
 

② 배 위해, 입맛에 취해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해 먹어라.
 

③ 물질, 선물에는 하 등의 관심을 두지말라.
 

결론 : 오 주여! 이 한시간에 주앞에 범죄 되지 말게 하여 주시고 사람 앞에 비 없는 구름처럼 은혜 못받고 돌아갈까 주의하게 하소서. 또 내생(生)에 유일한 참고서는 오직 성경 66권이 되게 하소서. 아멘.
 

당시 손양원 목사의 부흥집회는 전국 교회마다 초청이 쇄도하여 보통 월요일에 애양원을 떠나면 토요일에 돌아온다. 한 번은 서울 남대문교회 집회를 위해 손목사가 교회마당으로 들어가는 순간 손목사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용인즉, 교회 게시판에『세계적인 성자 손양원 목사님』이란 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손목사는 그것을 보는 순간 교회 직원을 불러 “저 포스터 당장 띠어 내시오, 안띠면 설교 안하고 돌아가겠다”고 하자 포스터를 금방 띠었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대신 자신이 잘난척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그의 성품 때문이다.
 
 
 

손양원 목사, 그는 분명한 사랑의 성자였다.
 
 
 
 
사형집행 직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강철민을 손양원 목사는 매일 같이 말끝마다 “우리 철민이 우리 철민이”하며 한없는 사랑을 주었다.
 

손목사는 강철민을 당시 부산에 있던 고려고등성경학교에 입학시켜 본격적인 신앙공부를 시킨다.
 

한편 손목사의 큰딸 손동희에게 충격적인 소문이 들려왔다. “손양원 목사님이 큰딸 동희와 강철민을 앞으로 결혼시키려 한단다”는 얼토당토 않은 헛 소문이 나돌자, 손목사는 매산여중에 다니던 손동희를 서울 이화여중으로 전학시킨다.
 

한편 성경학교에 입학한 강철민은 날마다 뜨거운 신앙인으로 변하면서 주일마다 둥둥북을 치며 부산역 광장과 각 시장을 찾아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1949년 10월 28일 손양원 목사는 강철민이 성경학교에 입학한 후 첫 편지를 받아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아버님께”란 편지에는 구구절절이 예수님의 사랑을 찬미하며 이제야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진리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고 했다. 특히 아버님이 왜 나를 살려주었는지? 하늘을 두루마리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한없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는 찬송 구절을 인용한 편지에 손목사는 목이 메었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남침 전쟁은 동족상잔의 참극으로 국토는 핏빛으로 물들었으며, 비교적 안전지대라고 했던 여수 애양원도 죽음의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7월 27일 좌익계열의 반란군들이 다시 들고 일어난 여수는 그들의 세상으로 돌변 또다시 피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손목사의 친구인 나덕환 목사가 선박을 이용한 손양원 목사의 피난을 적극 권유했지만 손목사와 부인 정양순 사모도 이를 거절했다. 이번에는 애양원의 청년들이 손목사를 강제로 배에 태웠지만 손목사는 이들을 물리치고 바다로 뛰어들어 애양원으로 돌아왔다.
 

손양원 목사가 피난가는 것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저 불쌍한 환자들을 남겨두고 나 혼자만 살겠다고 떠나면 결국 목자 잃은 양떼처럼 저들은 또다시 문전걸식으로 사람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손양원 목사는 풍전등하에 놓인 나라를 위해 애양원 교회에서 하루 세번씩 부흥집회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순교를 각오하라고 외쳤다. 드디어 9월 13일 손목사는 인민군들에 의해 여수 유치장으로 끌려가 예상한대로 혹독한 고문과 몽둥이를 맞으면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
 
 
 

총살 직전까지도 전도에 매진한 손양원 목사
 
 
 

손양원 목사가 이곳 유치장에 와서 순교하기까지 15일간의 행적을 후일에 소상하게 알린 사람이 여수 율촌교회 김장로의 아들인 당시 18살의 김창수였다. 특히 우익사상이 강한 김창수는 손목사의 둘째아들 동신이의 학교 친구였다.
 

또한 손목사와 같은 감방에서 지내다 총살 집행장까지도 같이 가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가 남긴 증언에 의하면 손목사는 매일같이 취조실로 끌려나가 그들이 요구하는 사회주의 찬양과 반미주의에 동조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또한 지난날의 반동적인 설교와 모든 행적을 고백서로 기록하라고 시달렸다. 그래서 어느날 손목사는 그들이 요구하는데로 고백서를 기록했다.
 

『일찍이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이 강산을 속히 복음화 시키지 못한 죄, 피흘리며 싸우는 인간들에게 주의복음 진리를 언행으로 가르치지 못한 죄, 더구나 동족간에 살상을 일삼는 이 현실에 무능하고 무신(無信)하여 무애한 이놈의 죄, 백번 죽어 마당하다』는 등의 자신의 신앙고백서를 적었다.
 

이것을 읽어본 책임자는 완전 동문서답이라고 펄펄뛰면서 책상 밑에 몽둥이를 꺼내어 손목사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러나 손목사는 고통을 참고 비틀거리면서도 “주님 지신 십자가 나도 지겠사오며 주께서 당하신 고초 내게도 주시니 감사합니다”하며 기도를 하자 그 취조 책임자는 “아니 세상에 이런 악질목사놈이”하면서 체념했다.
 

손양원 목사는 아들 친구 김창수에게 “육신의 고통은 순간이다. 그러나 영혼의 기쁨은 영원하다네, 순교자가 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하는 길 뿐일세” 이는 총살 집행이 가까워옴을 알고 불안에 떨고 있는 김창수에게 신앙의 용기를 주기 위한 격려였다.
 

한편 전쟁은 유엔군에 의해 유리하게 전개되어 1950년 9월 28일 서울 탈환을 앞두고 있었다. 이때 인민군들은 공산주의 동조를 끝까지 거부해온 우국지사들만 골라내어 처치 해버리고 북으로 도망가겠다는 술책을 세웠다. 특히 손양원 목사는 이곳 유치장에서도 인민군 책임자들에게 전도를 계속했다.
 

어느날 책임자는 “감히 누구에게 전도를 해 이 반동의 목사새끼”하고는 총의 개머리판으로 손목사의 얼굴을 쳤다. 손목사의 입과 코에서 붉은 피가 쏟아졌다.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한 김창수는 벌벌떨기만 했다고 했다. 드디어 처형 집행의 징조가 보였다. 인민군들은 “지금 미군 비행기가 곧 여수를 폭격한다니까 잠시 순천으로 피신한다.
 

단, 야음을 이용한다.”…… 김창수는 손양원 목사와 함께 밧줄로 꽁꽁 묶인체 한밤중에 끌려갔다. 10명씩 한조가 되어 출발하면 한참 후에 다음조가 출발한다. 10분쯤 지나면 따발총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는 앞서 출발한 조를 사살하는 총소리다.
 

드디어 손양원 목사의 조원들이 끌려갔다. 캄캄한 밤 미평과수원 근처까지 갔을 때 수많은 시체들이 줄에 엉키어 고꾸라져 있었고 아직도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렸다. 김창수는 “앗! 이것이 바로 죽음이구나!”
 

김창수는 필사의 탈출을 위해 밧줄에 묶인 손목을 결사적으로 빼기 시작한다. 곧 총살될 것을 감지한 손양원 목사의 전도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김창수에게 “창수군, 기도하게 어떠한 순간에도 기도를 잊지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실 것이네, 자, 우리는 천국에서 만나세.” 이어서 손목사는 함께 끌려가는 옆 사람들에게도 예수를 영접하고 회개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큰소리로 전도했다. 그러자 인솔해 가던 폭도 한명이 “저동무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하면서 총대로 손목사의 입을 후려쳤다. 더 이상 전도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가 박살나고 입안에서 피가 푹푹 쏟아지는 것을 본 김창수는 최후의 힘을 다해 밧줄에서 손목을 빼려는 찰라 밧줄이 뚝하고 끊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순간 김창수는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이때 과수원 숲속에 매복해 있던 폭도들의 따발총이 불을 뿜었다. 김창수는 비호처럼 달리다 밭두렁에 푹 고꾸라졌다. “아, 내가 총알을 맞았구나, 이렇게 죽는구나” 허망한 생각에 온몸을 만졌지만 그러나 총 맞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도 푹 고꾸라진 것은 총소리와 더불어 그들로부터 평소에 너무 두들겨 맞아 다리에 힘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김창수는 이때의 고문과 구타 때문에 후일 불구의 몸이된다. 김창수는 다시 정신을 차려 달리기 시작했다. 개울과 수많은 논밭을 가로지르며 달려 새벽에 애양원에 도착 손목사 집 문을 두두렸다.
 
 
 

손양원 목사 순교 하루 전날 정양순 사모는 아들을 낳았다.
 
 
 
 
김창수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난 정양순 사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를 그렇게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동안 주님의 일 하시고, 자신이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손양원 목사는 1950년 9월 28일밤 총살당했다. 손양원 목사가 순교하기 하루 전날인 9월 27일 정양순 사모는 남편을 보낸 대신 아들을 낳았다. 손양원 목사의 시신은 애양원 청년들에 의해 미평 과수원에서 들것에 들려 애양원 마당에 도착했다. 불과 2년전 두아들의 시체가 놓였던 바로 그 자리였다.
 

1천여명의 애양원 나환자들이 울부짖는 통곡소리는 애양원을 울음의 바다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의 통곡 중에서도 손양원 목사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유난히도 서럽게 통곡하는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강철민(가명)이었다. 강철민은 삼베옷에 두건을 쓰고 상주가 되어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지, 죽을 목숨인 나를 살려놓고서 아버지가 먼저 가시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사실 당시 애양원의 나환자들은 “우리 손목사님은 절대 죽이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믿었다. 즉 두아들을 죽인 공산당의 살인자를 살려내어 아들을 삼았는데, 아무리 악독한 공산당이라해도 생명의 은인을 배신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편 이화여중 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동희는 뒤늦게 아버지의 순교를 알고 애양원으로 달려와 아버지의 얼굴을 부벼대며 오열한다. 다음은 손동희 권사가 지은 시(詩)다.
 

『하늘이여 보아라, 땅이여 들어라, 동도섬 앞 바다에 터져나오는 곡성을, 저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땅을 치며 터져나오는 통곡은 저 하늘까지 사무쳤고 저 먼산까지 메아리쳤다. 그 날에 뿌린 눈물은 저 깊은 바닷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손동희 권사가 간증집회를 할 때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말이 “손양원 목사가 양아들로 받아드린 그 강철민(가명)이 지금도 살아 있는지, 또는 죽었는지가 궁금합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안드레명상 다음호인 121호에는 강철민(가명)이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으며 그 후손들은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철천지 원수로 항상 저주의 인간으로 멀리하며 살았던 손동희 권사가 수십년만에 드디어 강철민을 용서하고 진정한 오빠로 받아드리는 눈물의 상봉 이야기가 소개된다. - 끝-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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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462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080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085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1392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011
20 제20호 발행일 2010.12.1 -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기독교인으… KBS로고스 10.12.30 1669
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1763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459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602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532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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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2호 발행일 2008.12.01 - 나의 사랑하는 아내 윤화영에게 KBS로고스 08.12.28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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