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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6호 (2013.10.1발행) - 여순 반란 사건으로 순교한 손양원 목…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3-11-29 09:27     조회 : 866    
여순 반란 사건으로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네번째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와 순천에서 일어난 여순 반란 사건은 제주 4.3 폭동이 원인이 되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스웨덴 대사, 브라질 대사 등을 지내고 지난 11월 25일(2013년) 작고한 채명신 대사는 제주 4.3 사건의 내막을 다 증언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든다고 했다.
 

필자는 채명신 대사가 생전에 증언했던 내용을 요약해 기술한다. 1948년 육사를 졸업한 22세의 신참내기 육군 소위 채명신은 제주도의 9연대 2중대 2소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직속 연대장이 당시 남로당 계열 군인들에게 암살 당했고, 또한 자신도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암살의 위기를 당했다. 즉 부하들이 쏜 총알이 머리를 살짝 스쳐갔던 것이었다.
 

당시 제주도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들을 이용한 이른바 인민 해방군 5백명이 과거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로 무장하여 현지인 1천여명과 합동작전으로 1948년 4월 3일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제주도의 경찰지서 15개중 14개를 습격, 경찰을 살해하고 경찰서를 불태웠다.
 

당시 이 사건은 5월 10일 남한 단독 총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반란이었다. 그 당시 제주도의 일부 주민들은 제주에 대한 사회적 냉대, 그리고 경제적 낙후에 대한 박탈감이 많았다. 바로 주민들의 이 박탈감을 좌익 남로당이 이용해서 폭동을 일으켰다.
 

특히 4.3 사건을 진압해 가는 과정에서 군대보다 더 적극적인 것이 서북 청년단의 용맹성이었다. 이들은 북한에서 공산당의 만행으로 재산을 잃고 월남한 청년들로서 공산당의 철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이들이 군과 함께 4.3 사건을 진압해 가는 과정에서 다소 거칠게 진압하는 과정이 일부 제주 도민들을 자극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당시 전남 여수에 있던 육군 제14연대에 제주도로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10월 19일 이 긴급 출동 명령은 14연대 일부 좌익계 사병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다. 좌익 고참 상사가 핵심 당원 40명에게 무기고를 점령케하고 비상 나팔로 대원들을 선동했다. 즉 “지금 경찰이 우리 부대로 쳐들어온다.
 

우리는 절대 제주도 출동을 거부한다. 지금 북한 인민군들이 통일을 위해 3.8선을 넘어 남진중에 있다”고 선동하면서 단체 행동을 거부하는 동료 군인들을 무차별 사살했다. 한편 순천 경찰서와 국방 경비대는 순식간에 반란군의 무차별 사살과 기습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여수와 순천은 불과 하루 아침에 무법천지에 빨갱이 천국으로 변해 버렸다. 이들 반란군은 소위 반동분자를 색출한다면서 양민들과, 정당 관계자, 부유층,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닥치는데로 학살했다. 우리 국군이 다시 투입 진압하기까지 불과 1주일만에 반란으로 3,500명이 학살당했고 이들의 시체가 여수, 순천의 거리마다 쌓였다.
 

특히 좌익계 학생들이 반란군에 적극 가담하여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를 몽둥이로 그리고 총으로 쏘아 죽이는 비참한 참극이 벌어졌다. 바로 이들에게 희생당한 것이 손양원 목사의 두아들 동인과 동신이었다.
 
 
 

“하나님은 그때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이 말은 그날 두 오빠의 시신을 앞에두고 울부짖었던 손동희의 절규였다. 68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2013년) 손동희 권사는 그 날의 그 비극의 상황을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떨린다고 했다.
 

특히 큰오빠 동인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순천사범 음악선생의 사사를 받아 성악의 천부적인 자질을 나타냈다. 또한 미남 얼굴에 성품도 강직하면서 부드러웠고 항상 정의감에 앞장서면서도 매사에 자상했다. 동인이가 기독학생 모임때 독창을 부를 때는 많은 여학생들이 흠모의 표정을 지었다고 손동희 권사는 생생하게 그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동인의 독창 중에서도 찬송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 이 찬송을 가장 애송했다고 한다. 한편 두 오빠가 순교하던 날 손동희는 순천 매산여중 1학년으로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흔히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천성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이날 손동인은 소풍을 가는 여동생을 불러 세우고 “어디 보자 우리 동희, 오늘 소풍날인데 어머니가 곁에 안계셔서 맛있는 것 많이 못쌌지?”하면서 빵과 과자를 가방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는 동희를 3번이나 다시 불렀다. 동희는 3번째 부를 때는 다소 짜증이 났고 오빠가 실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인 오빠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동인은 동희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그윽한 눈빛으로 동희를 한참 동안 보다가 “별일 아니야 소풍 잘 갔다 오라는 말을 하려고 부른거야”……  소풍을 마친 동희는 애양원 집으로 갔다. 하루를 집에서 보내고 다음날 다시 형제들이 자취하는 순천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한대가 애양원 집앞으로 오더니 여러명의 학생들이 무장을 한채 차에서 내리면서 “여기가 손양원 목사 집이지, 손목사 어서나와”하고 고함을 쳤다. 다행이 그때 손양원 목사는 집에 없었다. 만일 그때 집에 있었더라면 손목사는 그 자리에서 참변을 당했을 것이다.
 

손목사를 찾지 못하자 흥분한 이 학생들은 손양원 목사의 부인 정양순 사모를 노려보며 “흥, 당신, 알고나 있소? 오늘 당신의 두 아들놈이 다 총살 당해 죽었단 말이오”하고는 떠났다.
 

순간 정양순 사모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손동희는 오빠들의 생사를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면서 순천으로 달렸다. 기차도 오지 않아 순천까지 달음박질하면서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길거리의 시체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전도했던 두형제
 
 
 
 
 1948년 10월 19일에 일어난 여순 반란은 다음날 즉 20일부터 본격적으로 무자비한 살인 폭동으로 변했다. 손동인과 동생 동신이는 학교 당국의 지시로 수업도중 귀가했다.
 

다음 내용은 손동인과 같은 집에 세들어 살던 양집사가 남긴 그날의 증언이다. 즉 동인과 동신에게 “지금 세상이 너무 험악하다. 다들 피난가는데 우리도 빨리 피난을 가지”라고 하며 재촉했다.
 

그때 동인은 “피할 곳이 어디겠습니까? 예수님 품보다 더 안전한 피난처는 없을 것입니다. 피신을 하려다가 도중에 붙잡히기라도 하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없을 것이고 특히 그들은 나더러 총을 잡으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일을 당하더라도 집에서 당하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10월 21일 드디어 비운의 날은 닥아왔다. 오전 10시경 폭도로 변한 좌익 학생들이 동인이 살고 있는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몽둥이와 쇠파이프 그리고 총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손동인을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때렸다.
 

이때 손동인은 “이봐, 맞더라도 이유나 알고 맞자 무슨 죄로 나를 때리느냐?” 그러나 이들은 “야 이자식아, 그걸 몰라서 물어? 너는 기독학생회장에 예수대장, 그리고 또 미국 유학을 가겠다니 너야말로 진짜 친미주의자다.”
 

손동인은 “내가 친미주의 자라고? 이 사람들아 나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 일 뿐이야” “집어치워, 흥, 예수 좋아하고 있네, 차라리 내 팔뚝을 믿어라” 그들은 손동인에게 온갖 조롱과 욕설과 폭력을 사용해서 손동인의 몸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때 손동신이 형을 돕기 위해 용감하게 이들에게 대들었다.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린 오직 예수님만 믿을 뿐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우리가 도둑질을 했습니까, 사기를 쳤습니까?”하고 고함을 지르며 대 들었다. 그러자 “네놈도 똑같이 정신나간 예수쟁이로구나”하면서이들은 쇠파이프로 두 형제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후 이미 반란군에 점령되어 있던 순천경찰서로 끌고 갔다.
 

두 형제는 끌려가면서도 사악한 이 학생들에게 전도를 했다. “이봐, 우리는 같은 동족에 같은 학교의 학생이 아닌가, 예수 믿고 선한 일을 해야 이 나라가 복을 받지, 이렇게 동족끼리 또 친구간에 헐뜯고 싸우면 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좌익 학생들은 “아니 이 녀석이 누구한테 훈계하는 거냐?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하면서 손동인을 각목으로 내려쳤다.
 

손동인은 피를 흘리면서 이들에게 기독교의 정신으로 새 삶을 찾으라고 계속 전도를 했다.   이 광경을 후일 증언해 준 사람은 손동인의 가족들이 단골로 애용했던 사진관 서종문의 부인 정여사였다. 정여사는 이들 형제가 순천 경찰서로 끌려가는 동안 끝까지 따라 가면서 이들 형제의 굳굳한 신앙의 절개를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다.
 

한편 이들 형제는 임시 사형장으로 사용하던 순천경찰서 뒷마당으로 끌려갔다. 뒷마당 구석에는 이미 사형 집행을 당한 양민들의 시체가 마치 볏집단처럼 쌓여 있었다. 좌익 학생들은 손동인을 드디어 사형대에 세웠다. 이때 사형 집행의 총책인 강철민(가명)이 손동인 앞에 나타났다. 강철민은 바로 손동인의 같은 반 친구였다.
 

강철민은 “반동새끼, 너에게 마지막으로 너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주겠다 예수 사상을 버리고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면 이 자리에서 너를 살려주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즉 우리 공산주의를 받아 들이고 우리와 함께 살겠느냐? 아니면 바보처럼 예수쟁이가 되어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한편 이날의 사형집행 장면을 손동인의 친구들과 시민들에게 일부러 공개했다.
 

이것은 오늘날 북한에서 자행하는 공개 총살형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날 사형 집행장에는 동인의 아우 즉 손동신의 친구 나제민이 사형집행 장면을 보고 있었다. 나제민은 손동인 형제들의 학교 편입을 도와준 나덕환 목사의 아들이다. 바로 이 나제민에 의해서 이 날의 동인과 동신의 사형집행 전후 과정이 알려졌다.
 

후일 장로가 된 나제민은 손동희 권사에게 그때 그 비극의 참상을 자세하게 증언해 주었다. 즉 나제민 장로는 동인과 동신 형제의 순교의 현장을 정확하게 한국기독교 역사에 남긴 사람이다. 한편 손동인은 앞서 언급된 친구 강철민의 최후 통첩에 다음과 같이 담래하게 대답했다.
 
 
 
 
두 형제가 남긴 순교의 목소리
 
 
 
 
 “너희들은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내 신앙을 빼앗을 수는 없다. 일본인들이 악랄한 수법으로 한국기독교를 말살하려 했지만 자기네가 망한 것을 너희들도 보고 겪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희들도 이런 악한 짓을 그만두고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선한 사람이 되어라”
 

이때 그들중 한명이 총의 개머리 판으로 손동인의 얼굴을 내려쳤다. 그리고 그들의 일당들이 빨리 죽여라!고 고함을 쳤다. “여러 말할 필요없다. 이 놈은 구제불능의 예수병 환자다. 빨리 총을 쏘아 죽여버려!” 이때 손동인은 “너희들은 내 육신을 죽일 수는 있으나 내 영혼은 죽일 수 없다.” 순간 그들은 손동인에게 총을 겨눴다.
 

이때 이 위기의 순간을 지켜보던 동생 동신이가 뛰어나가 그들의 총구 앞을 막으면서 소리쳤다. “안됩니다! 우리 형님은 우리 집안의 장남입니다!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차라리 날 죽여요, 형 대신 내가 죽겠습니다” 그떄 형 동인은 “동신아 너 왜 이러니? 너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내 대신 네가 부모님을 모셔라, 어서 집에 가, 이러다가는 너마저 죽어”……
 

죽음을 앞에 놓고 두 형제는 자기가 죽겠다고 승강이를 벌리다 서로가 꼭 껴안았다. 이때 그들 일당중 한명이 뛰어 나와 동생 동신이를 무자비하게 후려치면서 떼어 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을 때 손동인은 조용하고도 침착하게 말했다.
 

“이제 나는 죽으면 천국으로 가지만 너희들은 오늘의 이 죄값을 어떻게 다 치르겠느냐, 지금이라도 예수 믿고 회개하도록 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잔소리 집어 치우고 마지막할 말이 있거든 해라” 흔희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바로 사형수의 마지막 특권이다.
 

평소 노래를 잘 불렀던 손동인은 말대신 찬송가를 부르겠다고 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워진 동인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가 평소 가장 애창했던 찬송가 <하늘가는 밝은길이>를 불렀다.
 

『하늘가는 밝은길이 내앞에 있으니
 슬픈일을 많이보고 늘 고생 하여도
 하늘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해치니
 예수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맑고 고우며서도 그리고 청아한 음성으로 동인의 찬송은 하늘을 향해 멀리 멀리 구름처럼 흘러갔다. 찬송이 끝나자마자 “쏘아랏, 하나, 둘, 셋!” 여러명이 한꺼번에 방아쇠를 당겼다. 고막을 찢는 폭발음의 총알은 동인의 가슴과 얼굴을 피로 물들게 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손동인은 기도를 끝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이때 동생 손동신이 자신을 꽉잡고 있던 그들의 손을 힘차게 뿌리치고 뛰어나가 쓰러진 형을 부여안고 성난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형님, 나도 형님따라 천국에 가겠습니다”피로 얼룩진 형의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던 손동신이 부들부들 떨면서 벌떡 일어나 “당신들!
 

하늘의 심판이 두렵지도 않소! 무엇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입니까! 지금 당장 회개하시오! 내 신앙도 형님 신앙과 똑같소! 내 신앙도 형님 가신 그 천국에 함께 가겠소, 이 더러운 세상 살기 싫다. 자!
 

총을 맞을 터이니 너희들 하고 싶은대로 쏘려면 쏘아라!”라고 외치자 “야 저놈은 제 형보다 더 지독한 놈이네 저런놈 살려두면 안되겠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손동신은 다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들고 큰 소리로 기도를 했다.
 

“아버지 하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그리고 저 포악한 자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내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순간 세발의 총탄이 동신의 가슴을 찢었다.
 

손동신은 이미 숨이 끊어졌는데도 확인사살로 두발의 총알을 또 맞았다.  이때 확인 사살을 한 학생이 바로 후일 손양원 목사가 양자로 받아드린 강철민(가명) 이었다. 두 형제가 사살된 이유는 오직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기독학생회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졌다는 이유였다.
 

손동인의 나이 25세 동신은 19세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짧은 인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은 짧았지만 그들의 위대한 순교는 하나님의 생명록에 영원 무궁토록 보존될 것이다. 흔히 순교는 아무나 할 수 없다고 했다.
 

한꺼번에 두 아들의 순교로 인해 그들 부모님과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과 절망감은 어찌 말로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한편 일주일만에 국군이 여수와 순천에 진입하면서 전세는 180도로 변했다. 그동안 숨어 지내던 우익계열 학생들이 반란군에 가담한 좌익 학생들을 색출하여 이들을 계엄사령부에 인계했다.
 

특히 동인과 동신이를 죽인 강철민 학생은 체포되자 바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 다음호에 계속됨.
 
 
 
 
<다음 119호 예고>
 

 손양원 목사는 비장한 결단을 내린다. 즉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에 입각하여 두 아들을 죽인 강철민을 살려내어 양아들로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딸 손동희는 소리내어 울며불며 아버지께 달려든다.
 

“아버지, 생각해 보세요, 용서하면 용서했지 아들 삼겠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가 그놈을 아들 삼으면 내겐 오빠가 되는데 날더러 그 철천지 원수놈을 오빠라고 부르란 말입니까? 다른 목사님들은 그렇지 않는데, 왜 아버지는 항상 유별나게 예수를 믿습니까?”
 

아버지와 딸의 치열한 신앙의 논쟁, 그리고 눈물 바다로 만든 이날 장례행열의 모습이 다음 119호에 소개된다. -끝-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 이 글을 보신후 버리지 마시고 전도용으로 유익하게 사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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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081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086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1392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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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459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603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532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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