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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5호 (2013.10.1발행) -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3-10-08 10:20     조회 : 924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만 단련된다.”손양원 목사 세번째 이야기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만 단련된다.”손양원 목사 세번째 이야기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의 늪으로 빠져들 때 그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소위 내선일체를 내세워 우리 국민들에게 동방요배와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일본 천황을 한국 사람들에게 완전 신격(神格)화 시키려는 그들의 계략과 총칼앞에 한국의 교회는 신사참배의 찬성과 반대로 양분되었다. 즉 신사참배 반대 목회자들에게는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감옥으로 보냈다.
 

그 반면 신사참배를 하나의 의식 행위로 일본 정책에 동조한 목회자들은 편안한 목회 생활을 영위했지만 그러나 끝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위해 50여명의 목회자가 순교의 길을 택했다.
 

특히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 투쟁은 일본 형사들도 두손을 들었다.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 투쟁은 북한의 평양 산정현교회가 본거지가 되었으며 손양원 목사는 주로 남쪽에서 투쟁했다.
 

손양원 목사가 종신형을 선고 받고 5년간 복역중 특히 청주 구금소가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손 목사는 아침에 눈만 뜨면 함께 있는 죄수들에게 큰소리로 전도를 했다. 결국 청주 구금소는 손 목사를 영화 10도의 겨울 독방에 가두었다.
 

이로 인해 동상으로 손톱, 발톱이 다 얼어 짓물렀고 극심한 영양실조에 독감까지 걸렸다. 어느날 새벽에 손 목사 독방을 순찰하던 간수가 의식을 잃고 뻣뻣하게 굳어버린 손 목사를 보고 죽은 줄 알고 시체실 같은 음침한 병실 구석으로 끌고가 방치해 버렸다.
 

이튿날 아침이 밝아올 때 손 목사는 비몽사몽중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고아원으로 간 손동희와 동생 동장이
 
 
 손동희 권사는 당시 12살 때 동생과 함께 고아원으로 가게된 전후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일본군 징집 영장을 받은 큰오빠는 가족들과 의논 끝에 일본 군에는 절대로 갈 수 없다고 결정하고 전가족이 각자 헤어져 숨어살기로 했다.
 

피신 전날밤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어머니는 각자 숨어 지낼 곳을 정해 주었다. 이미 할아버지는 (손종일 장로) 삼촌이 살고 있는 만주로 떠났다. 한편 12살된 나와 9살된 동생은 함께 고아원으로 가야된다고 했다.
 

나는 그때 왜 내가 고아원으로 가야 하느냐며 어머니와 오빠에게 대들며 절대 고아원에는 안간다고 울었다. 이날밤 가정 예배는 두오빠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한숨 소리 등 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내일 아침이면 다 뿔뿔이 헤어지고 그동안 정들었던 이곳 판잣집도 이별이다. 그래도 산꼭대기의 이 판잣집은 포근한 고향집처럼 정이들었다. 과거 애양원 사택에서 쫓겨나 노숙을 할 때 나무통 공장을 하던 박신출 집사님이(훗날 서울의 삼각산 제일기도원 원장) 무료로 제공한 집이다.
 

밤에 비가오는 날이면 두 오빠가 교대로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내야 했다. 또한 두 오빠가 나무통 공장에 일하는 동안 이 판잣집은 삶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특히 어머니는 3살된 아이를 업고 해초류를 뜯어 하루종일 행상을 했다.
 

종일 행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이 판잣집은 고마운 안식처였다. 언제 다시 우리 가족들이 만난다는 기약도 없이 판잣집의 마지막날 밤 가정예배는 비통함과 슬픔 속에 진행됐다.
 

어머니는 성경 한 구절을 읽고난 뒤 비장한 목소리로 “어쩌면 우리는 이제 천국에 가서나 만날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이 이제 어느 하늘아래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 다시 만날 날을 위해서 쉬지말고 기도해라”고 하면서 우리들에게 찬송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부르자고 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간데마다 보호하며 양식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때 다시 만날 때 예수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바라네……”
 

우리는 서로가 부둥켜안고 우느라고 이날밤 마지막 가정예배는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났다.  새벽이 되자 동인이 큰오빠가 일찍 서둘렀다. 빌려 온 큰 자전거 앞뒤에 나와 동장이를 태우고 이웃 사람들 몰래 집을 나와 도망치듯 힘차게 달렸다.
 

멀리 사라져가는 우리들을 보고 눈물짓던 어머니는 땅바닥에 앉아 머리 수건을 흔들며 울고 있었다. 한참 후에 우리들이 도착한 곳은 한정교 목사님이 운영하는 부산 구포에 있던 애린원이었다.
 

오빠는 (한정교 목사에게) 우리들을 부탁하고 나와 동생을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믿는다. 내 동생들은 인내심이 강하니까 부모 형제 생각나도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꾹 참고 잘 지내야 한다”면서 오빠는 떠나갔다.』
 

손동인은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경남 남해군의 어느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한편 손동희와 손장동 형제는 해방이 될 때까지 이곳 고아원에서 살았는데 이곳에서 신사참배 반대의 거목이었던 고 주기철 목사의 큰아들 주영진과 셋째 아들 주영해를 만나서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되었다.
 

손동희는 고아원 생활에 항상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찼다. “도대체 하나님의 계명이 뭐길래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고아가 되게 했는지 왜 우리 부모님은 예수를 믿어도 유별나게 믿어 우리가 고아원에서 살아야 하는지 그까짓 신사참배, 일본 경찰에게 찬성한다고 한마디만 했다면 우리 가족들은 다른 목사의 자녀들처럼 학교도 다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손동희는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 싫어지면서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러나 그 마음에 다시 평강을 갖게된 것은 주기철 목사의 아들 주영해가 아침마다 원생들에게 가르키는 성경공부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일본의 2차대전 패망으로 손양원 목사 출옥
 

 1945년 8월의 무더위가 한창이던 어느날 손동희는 요란스러운 예배 장면을 보고 원장인 한정교 목사가 이상하게 보였다. 즉, 한 목사가 나무 그늘 밑에서 몇몇 성도들과 함께 우렁찬 찬송을 부르며 하늘을 향해 할렐루야 소리를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손동희는 한 목사의 이와 같은 광적인 예배 모습을 한번도 본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배를 마친 한정교 목사가 손동희를 덥석 안아주며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일본 놈들이 원자탄을 맞고 두손들고 항복했단다. 이제 네 아버지도 감옥에서 나와 너희들을 찾으러 올 것이다”……
 

손동희는 정신이 멍해지면서 한 목사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한편 해방은 8월 15일에 됐지만 실제 감옥문은 이틀뒤인 8월 17일에 열렸다. 뜨거운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던 황혼녘, 고아원 마당에 아주 남루한 차림의 한 거지가 나타났다. 바로 손양원 목사였다.
 

손동희 권사는 그날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모습을 68년이 지난 지금도(2013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버지의 수염은 턱밑까지 길게 자랐고 얼굴 빛은 폐결핵 말기 환자처럼 창백했으며 눈은 십리나 들어간 듯 뻥뚫려 있는 것 같았다.
 

뼈와 가죽만 남은 몸은 마치 송장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발은 다 떨어진 슬리퍼였고 입은 옷은 푸른 죄수복 그대로였다. 그러나 비록 육신은 다 말라 붙었으나 움푹패어 쑥 들어간 두눈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영혼이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감옥문을 나올 때 다른 사람들은 출옥 마중을 나와 새옷으로 갈아 입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다니고 숨어지내는 바람에 해방이 된 것도 그리고 아버지의 출옥도 몰랐다.  거지중에 상거지의 모습인 아버지에게 급하게 구해온 헌옷을 입혔지만 아버지의 몸이 너무나 말라서 마치 들판에 세워놓은 허수아비 형상이었다.
 

고아원 원생들이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우르르 모여들어 마치 동물원 짐승을 보듯 아버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누추한 아버지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아버지다……”
 

“어디 보자 이놈들아 귀여운 내새끼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우리 남매를 한꺼번에 얼싸 안았을 때 우리 형제는 “아빠”라는 한마디 말 만하고 아빠의 품속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때 이들의 슬픈 상봉장면을 보고 뛰어온 한 청년이 손양원 목사에게 인사를 했다.
 

이 청년이 바로 고 주기철 목사의 아들 주영해였다. 손양원 목사는 깜짝 놀라며 “너가 주기철 목사의 아들이란 말이냐” 하고는 주영해를 끌어안고 “주기철 형님이 이 기쁜 해방도 못보고 순교했으니” …… 손 목사는 땅을 치며 울었다.
 

주기철 목사는 해방을 1년 4개월 앞둔 1944년 4월 21일 평양 형무소에서 4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순교했다. 그런데 손 목사 옆에서 울고 있던 주영해가 갑자기 도끼를 집어들고 교회앞 큰 공원을 향해 달렸다.
 

주위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있는데 주영해는 일본인들이 공원에 세워둔 ‘가미다나’ 우상을 단번에 박살을 내고 그 길로 정처없이 고아원을 떠났다. 주영해는 아마 “아버지가 1년여만 더 살았더라면” 하는 애통함과 슬픔이 그의 마음을 폭발시켰을 것이다.
 

 흔히 당시 독립지사의 후손들이 가난과 배고픔, 그리고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처럼 신사참배 거부를 주도했던 목회자들의 자녀들 역시 뼈에 사무친 가난으로 배움의 시기를 놓쳤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돈 있는 사람들의 자식들은 호의호식하며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일본은 당시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타락을 유인하기 위해 도시마다 홍등가를 설치, 공창제를 운영했다. 또한 농민들에게 담배 생산을 적극 장여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편 재배까지 공인했다. 이러한 일본의 야만적인 계략과 정책을 분쇄하기 위해 과감하게 일어선 목사가 있었다.
 

그가 바로 전세계에도 없는 한국기독교 새벽기도의 창시자인 길선주 목사였다. 길선주 목사는 청년들이 제발 담배를 끊고 절대 술을 먹지 말 것을 부흥회설교 때마다 강력하게 외쳤다. 그러자 일본은 조선총독부 수입 세원 증대에 반항자라며 길선주 목사를 소요죄로 구금시켰다.
 
 
 

다시 애양원으로 돌아온 손양원 목사
 

 손양원 목사는 둘째아들 동신이가 숨어 지낼 때 그를 도와준 진주 남강 다리밑 거지 나환자들을 찾아갔다. 과거 애양원 시절에 함께 지냈던 이들과 눈물의 상봉을 하고 이곳에서 첫 부흥회를 한후 다시 애양원으로 갔다.
 

손 목사가 오던날 벌써 소문을 듣고 애양원으로 접어드는 긴 둑길에는 애양원의 전 나환자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어 “환난을 이기고 손 목사님이 드디어 돌아오신다! 할렐루야 우리 목사님!!” 이들의 고함소리와 함성은 그야말로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
 

악질적인 일본 원장 ‘안토’는 도망쳤고 대신 애양원의 설립자 윌슨박사와 원가리 선교사도 다시 애양원으로 돌아왔다. 또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나갔던 북방리 산속 움막촌 나환자들과 남강 다리 밑에 살던 거지 나환자들도 돌아왔다.
 

그리고 해방이 된 사실도 모른 체 경남 남해의 깊은 산속에 숨어살던 정양순 사모와 큰아들 동인이 그리고 동림이도 한참 뒤에야 애양원으로 돌아왔다. 5년만에 다시 만난 이들 가족들은 서로가 부둥켜 안고 이것이 분명 꿈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게 감사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이들 가정에 가장 급한 것이 아이들이 5년간 중단된 학교 편입 문제였다. 특히 큰아들 동인이와 둘째아들 동신이는 초등학교 3학년때 신사참배 거부로 각각 퇴학을 당했고 손동희는 학교의 우상숭배 강요 때문에 어머니가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이제와서 이들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학교에서 편입을 거부했다. 이때 손 목사의 친구인 나덕환 목사가 학교마다 찾아가 교장을 붙잡고 그동안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사정 사정해서 간신히 편입이 되었다.
 

큰아들 동인이는 순천사범학교 4학년에, 둘째아들 동신이는 순천중학교, 2학년 동희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동생 동장이는 2학년으로 각각 편입이 되었다. 손양원 목사는 학교가 있는 순천에 아이들의 방을 마련해 주고 친구 나덕환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승주교회(현 제일교회)에 출석시켰다.
 

손동희 권사는 당시 두 오빠가 항상 밤 12시가 넘도록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해서 매일 밤마다 코피를 딱은 솜을 아침마다 본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편 손동인은 교회 유년주일학교 교사에서부터 찬양대 지휘 등을 성실히 했으며 순천 연합 기독학생회를 조직 회장으로 열심히 뛰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 전체 기독학생회 임원까지 맡았다. 또한 동인의 아우 동신이는 잠잘 때마다 항상 어머니의 저고리와 자신의 옷에 줄을 연결 해놓고 잠을 잔다. 이유는 어머니가 산에 새벽기도 나갈 때 같이 따라가기 위해서 즉 잠을 깨기 위한 방법이다.
 

이렇게 두 형제는 그야말로 한점 흠없는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청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다음호 예고>
1948년 10월 19일 손양원 목사가 애양원으로 돌아오고 두달만에 여순 반란 사건이 터졌다.
 

평소 좌익사상에 물든 학생들이 반란군에 적극 가담한다. 이들은 평소 같은 학교 친구였던 손동인과 동신이에게 소위 인민재판으로 손동인에게 “너는 기독교 학생회장, 예수대장, 친미주의자이기 때문에 죽인다”라며 두 형제를 동시에 총으로 사살했다.
 

그러나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손동인과 동신이를 죽인 친구 강철민(가명)이 체포되어 사형 집행장으로 간다. 이때 손동인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가 사형 집행을 적극 만류하고 두 아들을 죽인 원수 강철민을 살려내어 양아들로 입적시킨다.
 

※ 다음 118호에 계속됨.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 예산 관계로 많은 부수를 인쇄 못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늘고 공급은 부족합니다.
 

보신후 꼭 다른 사람에게 돌려가면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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