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회원가입사이트맵

  KBS로고스  
     KBS로고스 



10
12
134
49,129
KBS로고스
    > KBS로고스
  제34호 발행일 2013.8.1 - 고 손양원 목사가 걸어간 순교자의 길…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3-08-07 09:40     조회 : 775    
고 손양원 목사가 걸어간 순교자의 길 (2)
 
2004년 여수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을 관람하던 캐나다에서 온 한 노인이 갑자기 쓰러져 장내가 술렁거렀다. 그 노인이 쓰러진 이유는 벽에 걸린 한 폭의 그림을 유심히 보다가 순간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그림이 바로 고 손양원 목사가 과거 이곳 애양원에 전도사로 있을 때 한 나병환자의 피고름이 흐르는 환부를 입으로 빨아 주는 장면의 그림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는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아가페출판사)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1939년 7월 아버지가 여수 한센인시설 애양원에 부임했을 때 애양원은 식량도 치료약도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전국 각 처에서 찾아오는 나병환자들의 몸에는 피고름과 진물이 흐르는 중병 환자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방에 정상인이 들어갈 때는 소독한 장갑을 끼고 꼭 장화를 신어야 되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습니다.
 

방바닥은 진물과 핏자국으로 엉겨서 신문지를 두겹 세겹 깔고 들어가는데 아버지는 장갑도, 장화도 신지않고 수시로 출입하며 그들을 안아주고 기도하고 또 장시간 대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는 깜짝 놀라운 행동을 했습니다. 즉, 나병환자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된다면서 어느 환자의 피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쭉쭉 빨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옆에 있던 환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모두가 벌벌떨면서 새파랗게 질려 뒷걸음치면서 까무라치고 말았습니다.” 이날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당시 한국 기독교에서는 손양원 목사를 사랑의 원자탄 또는 사랑의 성자(聖者)라고 불렀다. 한편 앞서 캐나다에서 온 노인은 바로 이 그림을 보고 “아! 예수님이 바로 여기 살아있었구나” 하면서 엎어져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노인은 “내가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분의 얘기 즉, 인간 손양원을 꼭 음악으로 후세에 길이 남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 노인이 바로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527장 어서돌아오오, 515장 눈을들어 하늘을 보라, 592장 산마다 불이탄다, 등 9곡의 새 찬송가를 작곡한 박재훈 목사다. 찬송가 외에도 동요 어머님의 은혜, 산골짝에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 펄펄 눈이 옵니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등 많은 동요를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에스더와 유관순을 작곡한 사람이다.
 

올해(2013년) 91세인 박재훈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 원로 목사로서 7년전부터 두가지 암과 투명 중이다. 지난 2012년 3월 8일 드디어 수년간 온갖 심혈을 다 기울인 끝에 그의 필생의 역작 오페라 손양원을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올렸다. 이날 관람석에는 많은 청중들이 소리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손양원 목사의 희생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오페라를 통해 탐욕과 물질만능주의에 허덕이는 이 세대에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손양원
 

 24세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손양원 전도사는 1935년 4월 5일 평양신학교에 입학한다. 더 깊이 있는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의 억압 정책은 이 나라 기독교의 존폐를 기로에 서게 한다. 즉 1938년 9월 9일 저녁 8시 평양서문밖 교회에서 예수교 장로회 제27회 총회가 열렸다.
 

97명의 일본 경찰의 감시속에 목사, 장로, 전도사 등 223명이 참석한 총회에서 총회장에 평북 노회 홍택기 목사, 부회장에 경남노회 김길창 목사를 당선시키고 신사참배 가결을 선포한 한국기독교 역사에 치욕의 장이 기록된 날이다.
 

이때 젊은 전도사 몇 사람만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고함을 치다가 즉각 일본 경찰에 끌려갔다.
 

 이에 앞서 일본 경찰은 신사참배 반대에 생명울 걸고 즉 순교를 각오하고 투쟁하던 주기철 목사를 총회를 앞두고 3번째 구속했다. 한편 일본 경찰은 기독교 신앙의 씨앗을 만들어내는 평양신학교를 폐쇄시킴으로 손양원 전도사는 졸업도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당시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전국의 2천여명 기독교인이 고문을 당했고 2백개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50명이 순교했다. 한편 손양원 전도사는 평양신학교 2학년때 즉 1937년 가을 여수 애양원에 초대되어 부흥집회를 인도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39년 애양원에 부임한다.
 

그러나 당시 신사참배를 지지했던 경남 노회는 손양원 전도사가 신사참배 반대에 가담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손양원의 전도사 자격을 박탈했다. 참고로 당시 손양원 전도사가 개척했던 교회가 경남 밀량의 수산교회, 울산의 방어진교회, 남창교회, 부산의 납부민동교회, 양산의 원동교회 등이 있다.
 

한편 손양원 전도사가 애양원에 부임하면서 하루 일과 대부분을 나환자들과 보내는데 1호실에서 17호실까지 매일 심방을 다녔다. 다음 내용은 당시 14호실 간호를 담당했던 백일홍 씨가 후일 장로가 되어 손동희 권사에게 보낸 글에서 밝혀졌다. “14호실의 환자들은 얼굴이 너무나 일그러져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환부에서 피고름과 진물이 끊이지 않고 줄줄 흐르는 환자들은 속옷은 물론이며 겉옷까지 다 젖어 있어서 14호실은 악취가 사라질날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같이 근무했던 간호원 김오재 씨가 수건으로 코를 막고 피고름으로 젖어 있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들어갔습니다. 순간 박창식 환자가 “야 이 개새끼들아 네놈들은 문둥이 아니냐” 고함을 치더니 옆에 있던 목침으로 김오재씨의 목을 내리쳐서 결국 사망했습니다. 가해자 박창식은 학력이 대단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손양원 전도사님은 14호실 중환자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환자들이 손 전도사의 출입을 완강하게 거부하는데도 그는 손발이 다 썩어진 환자들의 식사를 도우면서 자신도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절망에 허덕이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할 때마다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 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세상에서 버림을 당한 자들이며, 부모와 형제의 사랑에서 떠난 자들이며 세상 모든 인간들이 다 싫어하여 꺼리는 자들이오나 오 주여, 그래도 나는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하여 주소서”…
 

한편 애양원 병원은 손 전도사가 소독장갑도 끼지 않고 또한 장화도 신지 않고 14호실을 자기 안방처럼 드나들고, 특히 피고름이 나는 환부를 입으로 빨아준 사건이 있은후 손 전도사에게 피 검사를 했다. 즉 이미 나균이 손 전도사에게 전염되었다는 소문이 애양원에 퍼졌기 때문이다.
 

손 전도사는 이 소문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차라리 내가 나병에 걸린다면 오죽 좋겠나 그리되면 나를 가까이 오지 말라고 뒷걸음치는 환자가 없어질테니까”… 검사 결과 손양원의 피는 너무나 깨끗하다고 했다.
 
 
 

손양원 목사의 신앙의 절개
 

 1940년 9월 25일 가을 백화가 만발하고 고추잠자리가 푸른 하늘을 즐겁게 날고 있던 애양원의 가을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그러나 이 평화가 깃들던 애양원에 갑자기 먹구름이 깔려왔다. 즉 여수경찰서 형사 2명이 손양원 목사를 낚아채다시피 끌고간 것이다.
 

그 이유는 손 목사가 애양원 교회는 물론 다른 교회 부흥회 설교를 할 때마다 항상 일본의 신사참배 부당성을 선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수 경찰서에 끌려간지 10개월만에 손 목사가 풀려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들이 여수 경찰서로 달려갔다. 일부 목사들은 신사참배를 하겠다는 것을 서약함으로서 이들은 이날 석방이 되었다. 경찰서 정문에서 형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기진맥진 상태에서 힘없이 걸어나오는 손 목사는 석방이 아닌 기소가 되어 광주 구치소로 가는 길이었다.
 

10개월만에 아버지를 보겠다며 따라온 아이들에게 이날 정양순 사모는 믿음의 어머니답게 당당했다.
 

 즉, 형사가 잠시 다른 사람들과 말을 하는 틈을 타서 정양순 사모는 숨겨가지고 온 성경책의 한 구절을 얼른 손 목사에게 손으로 가르쳤다
 

“여보 여기 이 말씀 아시지요? 만일 당신이 신사참배에 응한다면 내 남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은 구원도 못 받습니다.” 초췌한 얼굴의 손 목사는 “염려말고 나를 위해 기도나 많이 해 주구려”… 정양순 사모가 손 목사에게 펼쳐보인 성경구절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10)… 손목사는 39세의 나이로 여수 경찰서로 끌려와 미결수로 있으면서 일본 형사 3명으로부터 10개월간 온갖 회유와 고문에 시달렸다.
 

그 중에서 가루배 형사가 집요하게 손 목사를 유혹했다. “이봐, 손목사 다른 목사들과 신학박사, 노회장, 총회장”도 다 신사참배를 국민 의식으로 시인하고 다 집으로 갔는데, 왜 당신만 그리 독특한 예수를 믿소? 이렇게 하면 당신은 신사참배 하기 전에는 햇빛 보기가 힘들것이오?… 이에 대해 손 목사는 “기독교는 지식적 종교가 아니고 신앙적 종교며, 감정적 종교가 아닌 체험적 종교다.
 

내 몸은 비록 형무소에 강금되어 있으나 내 신앙은 강금치 못할 것이다.” 손 목사는 가루배 형사와의 신앙 논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경을 가루배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요다 검사와도 성경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성경 논쟁에서 그들은 손 목사의 확고부동산 신앙의 절개를 꺽지 못하자 고함소리와 폭력이 사정 없이 가해졌다. 고문과 폭력으로 쇠약해진 손 목사는 특히 비가 내리는 밤에는 멍든 육체의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잠을잘 수 없었다.
 

그래서 손 목사는 그 고통을 항상 기도로서 이겨냈다. “주님 나도 인간입니다. 어떤 악형이 부딪칠지라도 싸워 이겨나갈 힘을 주소서. 주님 위해 받는 아픔은 주님 위해 사는자의 면치 못할 일이오며 내 몸의 석되밖에 안되는 피는 주를 위해 쏟고 이백개의 뼈는 주를 위해 다 부러뜨리면 내 할일 다한 것이외다.” …
 

1941년 11월 4일 손양원 목사는 1년 6개월의 형을 확정 받고 광주 형무소에 수감된다.  1년 6개월동안 형무소 측은 계속해서 손 목사의 신앙을 꺽으려고 온갖 계략을 다했지만 실패하자 이번에는 만주에 가 있던 손목사 아버지를 회유했다.
 

그러나 손목사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손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옥중에서 죽으면 죽었지 신사참배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편지를 했다. 이 내용은 후일 손종일 장로의 장례식을 인도했던 만주의 박상건 목사가 들려준 증언이다.
 
 
 

종신형을 선고 받은 손양원 목사
 

 1년 6개월의 형기가 끝나는 1943년 5월 17일 부인 정양순 사모는 아이들을 다 데리고 광주 형무소로 갔다. 전날밤 남편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꼬박 뜬눈으로 밤을 보낸 정양순 사모는 남편이 출소때 입을 옷가지를 챙기고 아이들에게도 모두 미리 세탁해 두었던 옷을 갈아 입혔다.
 

남편 없는 3년간 온갖 행상을 하면서도 남편의 출소일만 기다려 살아온 지난날의 고생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오늘 형무소 정문에서 당당히 걸어나올 남편의 얼굴 모습만 상상했다.
 

아이들은 모두가 목이 쉬어 있었다. 전날밤 아버지의 출소에 맞춰 가족 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은 너무나 기뻐 할렐루야 찬송가를 너무나 힘차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올 철문은 정오가 지나고 그리고 해가 져도 열리지 않자 아이들은 모두 울상이 되었다.
 

정양순 사모는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형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이 넘어 창백한 얼굴로 아이들 앞에 선 정양순 사모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오늘 종신형을 선고받았단다” 순간 가족들은 모두 길바닥에 철썩 앉아 울기 시작했다. 정양순 사모는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종신형이란 살아 생전에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손동희 권사는 벌써 70년의 (2013년 현재) 세월이 흘렀지만 그 날의 그 광주 형무소앞 길거리에 앉자 땅을 치며 어머니가 부르짖던 그 눈물의 절규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손동희는 “아빠는 바보야! 그들에게 고개한번 숙이면 우리 가족이 다 행복할텐데 아빠는 정말 바보야”라고 울었다고 했다.
 

종신형을 내린 이유는 수형 중에도 일본 국체의 존엄을 무시하고 각성할 기미가 없고 특히 기독교리에 의한 반 국가적 사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 즉, 손양원 목사를 석방하면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종신형을 선고 받은 손양원 목사는 감옥소를 다섯 번이나 옮겨 다니는 동안에도 계속 신사참배 회유에 끝까지 반대하며 오히려 옥중 전도에 매진했다. 한편 손양원 목사가 옥중에 있는 동안 애양원은 미국 선교사가 일본의 압력으로 떠나고 일본인 원장이 들어와 손목사 사택을 점거했다.
 
 
 

풍지박살 산산 조각난 가정
 
 
 애양원에서 쫓겨난 손목사 가족들은 나무통을 만드는 박신출 집사가 마련해 준 부산 범냇꼴 산곡데기 판자집으로 이사했다. 부인은 행상으로, 두아들은 박집사의 나무통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이곳에서 주기철 목사의 아들도 함게 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청주 구금소에 아버지 면회를 갔다 오던 큰아들 동인이가 기차 안에서 우연히 일본 형사와 신사참배 논쟁을 벌였다. 논쟁을 마친 두사람은 헤어질 때 서로의 주소를 알려주었는데 동인이는 일본 형사의 계략에 넘어갔다.
 

당시 동인의 나이는 19세였다. 즉, 일본 형사는 동인이를 일본군대에 입대 시키기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를 동인이 집주소로 보내고 곧 징집을 실시할 계획을 세웠다.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아 본 정양순 사모와 동인이 동신이는 밤새 의논을 한 결과 동인이가 일본 군대에 절대 가지 않기로 결론을 지었다.
 

또한 당시 징집을 기피하면 무조건 사형집행이 되기 때문에 이들 가족들은 언제다시 만난다는 기약도 없이 급히 집을 나섰다. 정양순 사모는 막내를 업고 부산 기장의 장 부자집으로, 동인은 경남 남해군의 깊은 산골로, 둘째아들 동신이는 애양원에서 나온 나환자 7명이 살고 있는 옥종면 북방리의 움막집으로, 그리고 12세의 동희와 9세의 동장이는 고아원으로 보냈다.
 

한편 종신형으로 청주 구금소에 갇혀 있는 손양원 목사는 자나깨나 오직 보배 같은 이 가족들에게 희망을 걸고 복역 중인데 자신의 가정이 지금 산산 조각이 난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다음 글은 손양원 목사가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적은시(詩)다. 『가을 까마귀 뭇 떼들은 때를 찾아 날아오고 3월 3일 왔던 제비 고향강남 찾아가나 고향 떠난 옥중 고객 돌아갈 길 막연하다.
 

아침, 저녁 찬바람 가을 소식 전해주고 천고마비(天高馬肥) 금풍냉월(金風冷月) 낙엽 또한 귀근(歸根)하되 고향 떠난 3년 넘어 돌아갈 길 막연하다. 우주 만유 모든 징조 인생가을 전해주고 억천만인 모든 죄악 심판주를 촉진하되 준비 없는 이내몸은 천당고향 막연하다.』 -끝-
 
 

※ 다음 117호에 계속됨.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안드레 명상은 독자들의 선교 헌금으로 인쇄, 발송됩니다. 여러분의 헌금에 감사드립니다.>
김예식 목사 (고. 조영율 안수집사 유족)
김유호 장로 주님의 교회 (서울 잠실 정신여고內)
홍연표 장로 주님의 교회
배홍자 권사 주님의 교회
김옥라 권사 주님의 교회
장승수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차재완 장로 전 KBS 언론인, 충신교회, AD선교 회장
김 경 장로 삼각지교회
김정연 집사 온누리교회
김효진 성도 온누리교회
 
안드레명상 선교헌금안내
국민은행 268802-04-031127
(예금주 김수호)
 
발행처 : 안 드 레 명 상
* 인터넷 : (홈페이지)www.andre.pe.kr
* 인터넷 네이버(naver), 구글(Google), 다음(daum)에서『안드레명상』을 치면 안드레명상 홈페이지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 안드레 명상은 KBS로고스에도 동시 게제됩니다.
* KBS로고스 : (
www.kbslogos.com)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7-4
Mobile : 010-8871-0685
F A X : 02-514-0686
E-mail:
songpo8304@naver.com
 
 
 
 
 


게시물 58건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읽음
58 제58호 (2017.10.1발행) - 전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과 그 어… KBS로고스 17.10.18 7
57 제57호 (2017.7.1발행)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이땅에… KBS로고스 17.06.30 34
56 제56호 (2017.4.1발행) - “유한양행은 유씨가 사장이 될 수 없… KBS로고스 17.04.26 50
55 제55호 (2017.2.1발행) -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위대… KBS로고스 17.03.02 83
54 제54호 (2016.12.1발행) - 소아마비의 몸으로 (반신불수) 미국의… KBS로고스 16.12.20 121
53 제53호 (2016.10.1발행) - 밀림의 성자, 지성의 선구자 알베르트… KBS로고스 16.10.14 139
52 제52호 (2016.8.1발행) - 미국 이민 100년사 3대 인물 신호범 전… KBS로고스 16.08.08 157
51 제51호 (2016.6.1발행) - 60 나이에 워싱톤주 하원의원에 출마한… KBS로고스 16.06.09 200
50 제50호 (2016.4.1발행) - 미국 한인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KBS로고스 16.04.06 220
49 제49호 (2016.2.1발행) - 침을 뱉고 떠난 조국에 대학 교수가 … KBS로고스 16.02.04 401
48 제48호 (2015.12.1발행) - 소년거지 신호범이 미국상원 5선 의원… KBS로고스 15.12.08 344
47 제47호 (2015.10.1발행) - 서울 남대문시장 거지소년 신호범의 … KBS로고스 15.10.06 403
46 제46호 (2015.8.1발행) - 서울 남대문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 5… KBS로고스 15.08.04 435
45 제45호 (2015.6.1발행) - 한국의 거지소년 신호범의 미국 상원 5… KBS로고스 15.05.29 469
44 제44호 (2015.4.1발행) - 한국의 거지소년이 미국상원 5선의원이… KBS로고스 15.03.31 606
43 제43호 (2015.2.1발행) -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 5선의원이 되기… KBS로고스 15.02.03 697
42 제42호 (2014.12.1발행) - 입양은 축복이다. (거지 소년의 미국 … KBS로고스 14.12.04 863
41 제41호 (2014.10.1발행) - 역경을 넘고 세상의 빛으로 안면 중화… KBS로고스 14.09.30 853
40 제40호 (2014.8.1발행) - 세상의 빛으로, 고난은 축복으로 이지… KBS로고스 14.08.06 632
39 제39호 (2014.6.1발행) - 불꽃 같은 사랑과 신앙을 남기고 간 손… KBS로고스 14.06.11 738
38 제38호 (2014.4.1발행) - 성경의 진리를 실천했던 손양원 목사 6… KBS로고스 14.04.02 901
37 제37호 (2014.2.1발행) - 두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양아들로 맞이… KBS로고스 14.02.06 1261
36 제36호 (2013.10.1발행) - 여순 반란 사건으로 순교한 손양원 목… KBS로고스 13.11.29 866
35 제35호 (2013.10.1발행) -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KBS로고스 13.10.08 925
34 제34호 발행일 2013.8.1 - 고 손양원 목사가 걸어간 순교자의 길… KBS로고스 13.08.07 776
33 제33호 발행일 2013.5.30 -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었던 … KBS로고스 13.05.31 1454
32 제32호 발행일 2013.3.30 - “폭포를 뛰어 넘는 물고기의 용기처… KBS로고스 13.04.02 835
31 제31호 발행일 2013.1.25 - 14살의 장애인 소녀가 가정부로 출발… KBS로고스 13.01.28 1066
30 제30호 발행일 2012.11.12 - 전 백악관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 KBS로고스 12.11.16 1198
29 제29호 발행일 2012.9.1 - 맹인 고아 강영우 박사가 미국 대통령… KBS로고스 12.09.06 1298
28 제28호 발행일 2012.7.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7.07 946
27 제27호 발행일 2012.4.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4.19 987
26 제26호 발행일 2012.2.1 -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KBS로고스 12.03.03 917
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462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080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086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1392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011
20 제20호 발행일 2010.12.1 -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기독교인으… KBS로고스 10.12.30 1669
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1763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459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602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532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447
14 제14호 발행일 2009.4.1 - 나라가 어지러울 때 마하트마 간디의 … KBS로고스 09.04.20 1599
13 제13호 발행일 2009.2.1 - 한국인의 해외여행 “소주와 오징어 … KBS로고스 09.03.02 1799
12 제12호 발행일 2008.12.01 - 나의 사랑하는 아내 윤화영에게 KBS로고스 08.12.28 1464
11 제11호 발행일 2008.10.01 - 정명훈을 세계적 지휘자로 만든 사… KBS로고스 08.09.30 1468
10 제10호 발행일 2008.07.01 - 맥아더와 히로히도 천황의 성경공부 KBS로고스 08.08.05 1507
9 제9호 발행일 2008.05.01 -대통령의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위대… KBS로고스 08.06.11 1421
8 제8호 발행일 2007.06.01 - 어버이 살았을 때 KBS로고스 07.06.04 1443
7 제7호 발행일 2007.05.01 - 멀리 멀리 갔더니 KBS로고스 07.06.04 1529
6 제6호 발행일 2003.5.31 - 기적의 신약을 개발하고 2번의 뇌종양… KBS로고스 07.06.02 1660
5 제5호 발행일 2003.2.25 - “간단하게 두어 마디만 해” KBS로고스 07.06.02 1376
4 제4호 발행일 2002.12.20 - 권투선수 홍수환의 4전5기! 그날의 … KBS로고스 07.06.02 1678
3 제3호 발행일 2002.9.25 - 時問과 公義 KBS로고스 07.06.02 1494
2 제2호 발행일 2002.4.1 -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길… KBS로고스 07.06.02 1538
1 제1호 발행일 2002.2.1 - 대통령이 친히 권하는 축하의 술잔을 … KBS로고스 07.06.02 1739
KBS로고스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이메일수집거부

KBS로고스 / 저자:김수호 / 관리자이메일주소 : songpo8304@naver.com
Copyright ⓒ 2002-2007 by Su-Ho Ki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