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회원가입사이트맵

  KBS로고스  
     KBS로고스 



10
12
134
49,129
KBS로고스
    > KBS로고스
  제33호 발행일 2013.5.30 -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었던 …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3-05-31 17:53     조회 : 1454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었던 사랑의 성자(聖者) 손양원 목사 첫 번째 이야기
 

 손양원 목사의 나병환자에 대한 사랑과 특히 자신과 두 아들의 순교 이야기는 손목사의 친구 안용준 목사가 집필한 <사랑의 원자탄>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해방 전에 출간된 이 책은 5개국으로 번역되어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또한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는 영화, 소설, 오페라 등 다양하게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 부분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간직하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다.
 

손 권사는 과거 책을 집필한 사람들이나, 영화나 오페라 제작자들이 손양원 목사에 대한 자료 부족 때문에 사실에 입각한 작품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했다.
 

그러나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손양원 목사의 사실적인 증거를 정확하게 증언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해 손동희 권사는 허탈감과 초조함에 깊은 번민이 쌓여 갔다.
 

손 권사는 현재 (2013년) 81세의 나이에도 부산 대연중앙교회 1부 찬양대의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순교한지 60여년의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그때의 비극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가장 감수성과 총명성이 강했던 중학생이였기 때문이다.
 

두 오빠가 순교할 때는 전남 순천 매산중 2학년 이었고 아버지가 순교할 때는 서울의 이화여중 3학년때 였다. 특히 그 당시 손 권사가 직접 보고 겪은 비극의 가족 이야기를 여고시절에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던 노트 한권을 보물처럼 간직해오고 있다.
 

바로 피눈물로 얼룩져 있는 이 노트가 자신이 직접 책을 집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손양원은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부친 손종일과 모친 김은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손양원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이미 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전파하던 때였으며, 특히 대원군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다소 소강 상태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러나 일본 통치 하에서 한국의 교회는 신사참배를 강요 받아 교회마다 찬반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이때 경남 함안군에 살고 있던 당시 한 농부가 이웃집의 형님뻘 되는 사람으로부터 국모인 명성왕후 시해 사건의 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 농부를 붙잡고 울분에 떨면서 일본 식민지에 의한 조국의 운명을 한탄하다가 갑자기 그 농부의 귀에다 대고 “자네에게 지금 큰 선물을 하나 주겠다”라고 했다. 그런데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지금 큰 선물을 주겠다는 그 형님뻘 되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던 농부에게 그 형님은 다시 귓속말을 했다.
 

“내가 너에게 줄 선물은 바로 예수라네” 지금은 노방전도에서 “예수를 믿으시오”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전도를 하지만 그 시대는 귀속말로 전도를 했다고 한다. 예수를선물로 주겠다는 말에 농부는 “도대체 무슨 소리요!”하고 멈칫하며 놀랬다. 그러나 이 순간 성령은 즉 예수님은 단 몇초사이에 이 농부의 영혼을 사로 잡았다.
 

흑냄새와 농사 짖는 생각만으로 살아온 이 농부의 가슴에 도저히 알 수도 없는 희안한 기쁨과 희열히 충만하기 시작했다. 그 농부는 드디어 그 형님의 전도로 손꼽아 기다리던 주일날 혼자서 당당히 교회에 갔다.
 

그 당시 시골 교회 마당 담에는 농사용 삽들이 놓여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동네 일가 친척 몰래 교회를 갈때는 꼭 삽을 어깨에 메고 큰 길을 피해 일부러 논두렁 길로 돌아서 교회에 간다. 그래도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때는 논에 가는 길이라고 속인다.
 

이러한 사람들에 비해 이 농부는 삽도 가지지 않고 당당하게 대로를 걸어서 교회로 바로 나갔으니 교회 성도들의 환영이 얼마나 열열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농부는 그날부터 술과 담배를 끊었고 밤마다 성경을 열심히 읽어가면서 경건한 신앙인으로 변해 갔다. 뿐만 아니라 동네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전도까지 했다. 그러나 이 농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사건을 하나 저지르고 말았다.
 

“살아 생전에 효도해야지 죽은 묘에 음식 차리고 절을 한들”……
 

즉 어느 설날 아침 집안 문중 일가가 다모여 조상의 묘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데 이 농부 혼자만이 뒤에서 불만어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문중 어른들이 일제히 함께 절을하는 순간 이 농부는 갑자기 제삿상을 훌쩍 뒤엎어 버렸다.
 

삽시간에 성묘 자리는 난장판이 되었고 문중 어른들은 일제히 이 농부에게 달려들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놈이 서양 귀신 예수에게 홀려 이제는 완전히 미쳐 버렸다. 이 서양 귀신을 쫓아 낼려면 계속 두들겨 패야한다.”면서 한시간동안 주먹과 작대기로 때렸다. 그러나 이 농부는 아무 저항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여보시오 어르신들 내말 좀 들으시오! 하나님은 유일신이니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도 숭배해서는 아니되오. 살아생전에 효도해야지 죽은 묘에 절하지 마시오. 하나님이 싫어한단 말이요.” 이 말이 떨어지자 말자 문중 사람들이 아직도 귀신이 안나갔다면서 매를 맞아 축늘어진 농부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감나무에다 꽁꽁 묶어 버렸다.
 

이 농부가 당시 38세의 바로 오늘의 주인공 손양원의 아버지 손종일이었다. 손종일의 날마다 달라지는 신앙인으로서 곧은 인생관을 가장 눈여겨 보던 그의 부인 김인수는 두말없이 먼저 예수님을 영접했다. 뒤이어 손종일을 미친사람으로 취급했던 친척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교회로 몰려왔다.
 

손종일은 바쁜 농사일 속에서도 새벽기도와 아침, 저녁 가정 예배 등을 철저히 했으며, 이때 그의 아들 손양원의 나이는 7살이었다. 손양원을 주일학교에 보낼 때 폭설이 내리거나 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아들을 직접 업고서 주일학교를 다녔다. 그만큼 손종일은 아들의 신앙교육은 주일학교 때부터 철저하게 시켰다.
 

한편 손종일은 1923년 교회 개척을 위한 부흥회를 열었는데, 이때 당대의 최고의 부흥사인 길선주 목사를 강사로 초청했다. 손종일은 당시 교회 건축 헌금으로 논 3마지기를 팔았는데 이때 부인 김은수가 나머지 2마지기를 더 팔아서 논 5마지기를 몽땅 건축헌금으로 냈다.
 

동네 사람들은 이들 부부에게 조소를 보냈고 손종일이 이제 망조가 들었다고 수군거렸다. 사실 시골에서 논 농사는 농민의 생명선이다. 이때 손종일은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망하더라도 교회는 영구히 남는다”는 명언을 했다.
 

이렇게 해서 칠원교회가 개척되었고 손종일은 신앙의 연륜을 거듭하여 장로가 되었다. 손종일 장로의 아들 손양원이 11살이던 1913년 일본인이 교장으로 있던 칠원공립학교에 입학했다. 일본인 교장은 아침 조회 때마다 학생들에게 동방요배 행사를 강요했다.
 

즉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는데 이때 손양원은 항상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불쾌하게 보아왔던 일본인 교장은 손양원을 직접 불러 “네가 예수 믿는 것은 너의 자유다.
 

그러나 국법을 어기는 것은 죄가된다” 그러자 손양원은 “천황에게 직접 절을 하는 것이라면 웃 어른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절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무턱대고 동쪽을 향해 절을 하라고 하는 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자 일본인 교장은 “예끼, 발직한 놈 네가 믿는 하나님은 중하고 민족의 태양이신 천황폐하는 경하단 말이냐?” 이 말에 손양원은 “하나님은 온 우주에 오직 한분 뿐인 유일신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교장은 흥분과 불쾌감으로 손양원의 따귀를 쉬지 않고 계속 때려 손양원 코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철저한 신앙인으로서 성장하는 손양원
 
 
손양원은 17세때 아버지가 세운 칠원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서울로 올라와 중동중학교에 입학한다. 밤에는 만두장사를 해서 학비에 보충했다. 만두집 사장은 손양원의 성실성에는 호감을 가졌지만 그러나 장사가 제일 잘되는 주일날에 장사를 하지 않고 교회에 가는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손양원을 쫓아 버렸다.
 

그러나 다시 어렵게 일자리를 얻었으나 역시 주일날 교회가는 것을 알고 일을 못하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중동중학교는 손양원에게 퇴학 통고를 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아버지 손종일 장로가 3.1만세운동 주모자로 마산 형무소에 수감되었기 때문이다.
 

즉, 불순한 사상을 가진 사람의 자식은 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일본인 교장의 논리였다. 손양원은 고향으로 내려와 1년간 집안 일을 돕다가 못다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이번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쓰가모’ 중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우유배달로 고학을 하며 공부하여 ‘쓰가모’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아버지 손종일 장로가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편지를 받고 즉시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 앞에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아버지, 저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두운 이 땅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 되겠습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결심을 듣는 순간 손종일 장로는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다.
 

손 장로가 감옥에서 늘 기도했던 즉 아들을 꼭 목사로 만들어 달라고 주야로 기도해 왔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이다. 또한 손종일 장로는 물질의 축복도 받았다.
 

즉 일본에 유학 중이던 둘째아들 손문준이 당시 일본 대 지진때 복구사업에 참여하여 인건비로 받은 돈을 모아서 고향으로 송금했다. 아버지 손종일 장로는 앞서 언급 한데로 교회 개척때 전 재산인 논 5마지기를 교회에 헌금하고 사실 빈농으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이런 형편에 마침 아들이 보내준 돈으로 논 10마지기를 샀다. 손종일 장로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동네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무조건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나중에 두배로 채워주십니다.” 즉 과거 5마지기 논이 10마지기로 늘어난 것을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신앙과 순교의 선배 주기철 목사를 만나다.
 

1926년 3월 손양원은 당시 진주에 있던 경남 성경학교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앞으로 같은 운명의 길을 가게될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만난다. 특히 주기철 목사의 로마서 강해는 손양원 학생에게 감동과 은혜의 설교였다.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서 태어난 주기철 목사는 손양원보다 5년 연배였다.
 

어느날 주기철 목사는 손양원을 불러 “손군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지만 위대한 인물이 날 터이니위인전을 많이 읽어서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준비하라”고 했다. 손양원 학생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주기철 목사의 신앙으로 단련된 비범한 모습과 특히 불타는 애국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주기철 목사에게 애국심을 심어준 것은 그의 모교인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였다. 경남, 부산, 대구 등지의 가까운 학교를 두고 왜 오산학교를 갔을까? 손양원은 그것이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춘원 이광수 때문이었다.
 

춘원 이광수는 1906년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투철한 민족의식을 갖게된 계몽사상가였다. 춘원 이광수는 그의 고향 정주에 남강 이승훈이 새운 오산학교 학생모집 설명회 겸 강연을 하기 위해 부산 강연을 마치고 마산으로 가던중 우연히 웅천이란 곳에 들렸다.
 

이곳 웅천 강연에서 이광수는 “오산학교는 앞으로 이 나라의 애국자를 길러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이 나라의 운명이 바로 오산학교 학생들의 어깨에 달렸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강연장 한쪽 구석에 앉아 강연을 듣던 주기철의 어린 가슴에는 일제의 탄압과 망국의 서러움이 서서히 분노로 끓어 오르면서 그는 오산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주기철이 오산학교에 입학 했을 때 오산학교의 설립자요, 민족의 선각자였던 남강 이승훈은 105인 독립운동 사건으로 형무소에 수감 중이어서 대신 이광수가 교장 서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광수는 성경 공부에도 심혈을 기우렷다. 그러나 그렇게도 훌륭한 선생 이광수가 서서히 기독교 신앙 생활에 변절이 오면서 친일 문학가로 돌아섰다. 이광수의 이러한 영향으로 기독교적 민족구원의 투철한 정신으로 무장된 학생들까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고당 조만식이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오산 학생들은 정상을 되찾앗다. 오산학교 70년사에는 이런글이 기록되었다.
 

<남강은 박애와 사랑으로, 고당은 인내와 정성으로, 남강이 오산의 얼이요, 겨례의 스승이라면 고당은 오산의 주춧돌이요, 겨례의 등불이다.> 한편 1916년 19세의 나이로 오산학교를 졸업한 주기철은 고당 조만식과 남강 이승훈으로부터 연희전문 상과 입학을 권유받고 서울로 온다.
 

이때 주기철은 두분께서 왜 자신을 신학이 아닌상과를 권했는지를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이 내용은 추후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다시 손양원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손양원 전도사 나환자들과의 첫 인연
 

경남 성경학교에 재학 중이던 손양원 전도사는 1924년 23세의 나이로 경남 함안군 대산면 옥얼리에 살고 있던 18세의 정양순과 결혼한다. 결혼식을 마치고 처가에 머물던 중 우연히 그 마을교회 신자들의 부탁으로 수요예배 설교를 하게 된다.
 

마침 이날 수요예배에는 멀리 부산 감만동의 나환자 촌에서 왔다는 나 권사란 분이 손양원 전도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정신없이 울고 있었다. 결국 손양원 전도사는 나 권사의 간절한 부탁으로 6백명의 나환자들이 살고 있는 부산 감만동 나환자 촌에서 그의 목회 생활 첫 부흥집회를 했다.
 

첫날 집회부터 손양원 전도사의 설교는 폭발하기 시작했다.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자 드디어 성령의 회오리 바람은 잠자던 6백명 나환자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순간 나환자들은 서로가 부둥켜 안고 딩굴며 통곡의 바다를 이루었다.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모두가 다 “내 부모형제 처자도 날 버렸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짐승처럼 돌팔매질을 당하며 산을 넘고 들길로 항상 쫓기면서 살아온 나를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길래 나를 이토록 사랑하고 위로해 주십니까”……
 

이날밤 부흥집회는 나환자들이 생전처음 하나님의뜨거운 사랑 즉, 성령을 체험하는 황홀한 밤이었다. 손양원 전도사의 부흥회는 6백명 나병환자들 가슴 속에 강렬한 인상과 아쉬움을 남긴채 끝났다.
 

곧이어 나환자 촌에는 중대한 결의가 채택되었다. “우리 이라지말고, 고마 손 전도사를 이곳에 모십시더, 우리 6백명 나환자들이 각자 밥 한 숟가락씩만 덜 묵으면 6백 숟가락 안됩니꺼, 어디서 그보다 더 은혜로운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꺼?”……
 

사실 이 나환자촌은 당시만해도 자립의 기반이 없었기에 고정 목회자를 둘 수 없었으며, 특히 나환자들 속으로 선뜻 들어갈 목회자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 손양원 전도사는 밥 한숟가락씩 덜 먹고 자신을 고정 목회자로 모시겠다는 나환자들의 초청을 심사숙고할 필요없이 수락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목마른 그들, 피고름이 흐르는 상처에 약보다 성경말씀이 필요한 그들, 육체는 나병일지언정 그들의 정신은 아침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청아한 꽃잎과 같은 그들,……
 

손양원 전도사는 나병환자와 동행하는 사랑의 성자(聖者)로서, 그 위대한 고난사는 부산 감만동 나환자 촌에서 시작되었다.
 
 
※ 다음호에 계속됨.
글: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안드레명상은 예산 관계상 2개월에 한 번씩 약 8천부 정도 발행됩니다. 이 글을 보신후 꼭 다른 사람에게 돌려가면서 본다면 이 글은 1만6천명이 볼 수 있습니다. 보신후 버리지 마시고 꼭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 분이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인생관이 어떻게 변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안드레 명상은 독자들의 선교 헌금으로 인쇄, 발송됩니다. 여러분의 헌금에 감사드립니다.>
홍연표 장로 주님의 교회 (서울 잠실 정신여고內)
김옥라 권사 주님의 교회
박규택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박석진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장승수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차재완 장로 전 KBS 언론인, AD선교 회장
            충신교회
김정연 성도 온누리교회
김효진 성도 온누리교회
 
안드레명상 선교헌금안내  
국민은행 268802-04-031127
(예금주 김수호)
 

발행처 : 안 드 레 명 상
* 인터넷 : (홈페이지)www.andre.pe.kr
* 인터넷 네이버(naver), 구글(Google), 다음(daum)에서 안드레 명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 세군데에 한글로『안드레명상』을 치면 안드레명상 홈페이지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 안드레 명상은 KBS로고스에도 동시 게제됩니다.
* KBS로고스 : (
www.kbslogos.com)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7-4
Mobile : 010-8871-0685
F A X : 02-514-0686
E-mail:
songpo8304@naver.com
 


게시물 58건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읽음
58 제58호 (2017.10.1발행) - 전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과 그 어… KBS로고스 17.10.18 8
57 제57호 (2017.7.1발행) -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이땅에… KBS로고스 17.06.30 34
56 제56호 (2017.4.1발행) - “유한양행은 유씨가 사장이 될 수 없… KBS로고스 17.04.26 51
55 제55호 (2017.2.1발행) -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위대… KBS로고스 17.03.02 83
54 제54호 (2016.12.1발행) - 소아마비의 몸으로 (반신불수) 미국의… KBS로고스 16.12.20 121
53 제53호 (2016.10.1발행) - 밀림의 성자, 지성의 선구자 알베르트… KBS로고스 16.10.14 139
52 제52호 (2016.8.1발행) - 미국 이민 100년사 3대 인물 신호범 전… KBS로고스 16.08.08 157
51 제51호 (2016.6.1발행) - 60 나이에 워싱톤주 하원의원에 출마한… KBS로고스 16.06.09 200
50 제50호 (2016.4.1발행) - 미국 한인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KBS로고스 16.04.06 221
49 제49호 (2016.2.1발행) - 침을 뱉고 떠난 조국에 대학 교수가 … KBS로고스 16.02.04 402
48 제48호 (2015.12.1발행) - 소년거지 신호범이 미국상원 5선 의원… KBS로고스 15.12.08 344
47 제47호 (2015.10.1발행) - 서울 남대문시장 거지소년 신호범의 … KBS로고스 15.10.06 403
46 제46호 (2015.8.1발행) - 서울 남대문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 5… KBS로고스 15.08.04 435
45 제45호 (2015.6.1발행) - 한국의 거지소년 신호범의 미국 상원 5… KBS로고스 15.05.29 469
44 제44호 (2015.4.1발행) - 한국의 거지소년이 미국상원 5선의원이… KBS로고스 15.03.31 607
43 제43호 (2015.2.1발행) - 거지 소년이 미국 상원 5선의원이 되기… KBS로고스 15.02.03 697
42 제42호 (2014.12.1발행) - 입양은 축복이다. (거지 소년의 미국 … KBS로고스 14.12.04 864
41 제41호 (2014.10.1발행) - 역경을 넘고 세상의 빛으로 안면 중화… KBS로고스 14.09.30 853
40 제40호 (2014.8.1발행) - 세상의 빛으로, 고난은 축복으로 이지… KBS로고스 14.08.06 632
39 제39호 (2014.6.1발행) - 불꽃 같은 사랑과 신앙을 남기고 간 손… KBS로고스 14.06.11 739
38 제38호 (2014.4.1발행) - 성경의 진리를 실천했던 손양원 목사 6… KBS로고스 14.04.02 901
37 제37호 (2014.2.1발행) - 두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양아들로 맞이… KBS로고스 14.02.06 1261
36 제36호 (2013.10.1발행) - 여순 반란 사건으로 순교한 손양원 목… KBS로고스 13.11.29 867
35 제35호 (2013.10.1발행) -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 KBS로고스 13.10.08 925
34 제34호 발행일 2013.8.1 - 고 손양원 목사가 걸어간 순교자의 길… KBS로고스 13.08.07 776
33 제33호 발행일 2013.5.30 -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었던 … KBS로고스 13.05.31 1455
32 제32호 발행일 2013.3.30 - “폭포를 뛰어 넘는 물고기의 용기처… KBS로고스 13.04.02 835
31 제31호 발행일 2013.1.25 - 14살의 장애인 소녀가 가정부로 출발… KBS로고스 13.01.28 1066
30 제30호 발행일 2012.11.12 - 전 백악관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 KBS로고스 12.11.16 1198
29 제29호 발행일 2012.9.1 - 맹인 고아 강영우 박사가 미국 대통령… KBS로고스 12.09.06 1299
28 제28호 발행일 2012.7.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7.07 946
27 제27호 발행일 2012.4.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4.19 987
26 제26호 발행일 2012.2.1 -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KBS로고스 12.03.03 918
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462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081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086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1392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011
20 제20호 발행일 2010.12.1 -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기독교인으… KBS로고스 10.12.30 1670
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1763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460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603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533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447
14 제14호 발행일 2009.4.1 - 나라가 어지러울 때 마하트마 간디의 … KBS로고스 09.04.20 1600
13 제13호 발행일 2009.2.1 - 한국인의 해외여행 “소주와 오징어 … KBS로고스 09.03.02 1799
12 제12호 발행일 2008.12.01 - 나의 사랑하는 아내 윤화영에게 KBS로고스 08.12.28 1464
11 제11호 발행일 2008.10.01 - 정명훈을 세계적 지휘자로 만든 사… KBS로고스 08.09.30 1469
10 제10호 발행일 2008.07.01 - 맥아더와 히로히도 천황의 성경공부 KBS로고스 08.08.05 1508
9 제9호 발행일 2008.05.01 -대통령의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위대… KBS로고스 08.06.11 1421
8 제8호 발행일 2007.06.01 - 어버이 살았을 때 KBS로고스 07.06.04 1443
7 제7호 발행일 2007.05.01 - 멀리 멀리 갔더니 KBS로고스 07.06.04 1530
6 제6호 발행일 2003.5.31 - 기적의 신약을 개발하고 2번의 뇌종양… KBS로고스 07.06.02 1660
5 제5호 발행일 2003.2.25 - “간단하게 두어 마디만 해” KBS로고스 07.06.02 1377
4 제4호 발행일 2002.12.20 - 권투선수 홍수환의 4전5기! 그날의 … KBS로고스 07.06.02 1678
3 제3호 발행일 2002.9.25 - 時問과 公義 KBS로고스 07.06.02 1495
2 제2호 발행일 2002.4.1 -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길… KBS로고스 07.06.02 1538
1 제1호 발행일 2002.2.1 - 대통령이 친히 권하는 축하의 술잔을 … KBS로고스 07.06.02 1740
KBS로고스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이메일수집거부

KBS로고스 / 저자:김수호 / 관리자이메일주소 : songpo8304@naver.com
Copyright ⓒ 2002-2007 by Su-Ho Ki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