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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9호 발행일 2012.9.1 - 맹인 고아 강영우 박사가 미국 대통령…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2-09-06 10:30     조회 : 1298    
맹인 고아 강영우 박사가 미국 대통령 정책 차관보를 거쳐 미국의 명문가를 이루기까지 (4편)
 

 안드레명상 108호, 109호, 110호에는 강영우 박사가 미국에서 명문가를 이루기까지 걸어온 과정 즉, 맹인고아로서 온갖 멸시 천대 속에서도 굳굳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온 위대한 생애가 자세히 소개되었다.
 

그런데 많은 독자들이 맹인 고아 강영우가 세계적 인물이 되기까지에는 강영우의 맹학교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보살펴온 부인 석은옥 여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했다.
 

석은옥은 1942년 5월 29일 아버지 석도명과 어머니 이정현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석도명은 일본 체육 전문대학을 나와 국내에서 20여년간 체육교사로 봉직했고 어머니 이정현은 서울 서대문구 농협에 근무했다.
 

석은옥이 교회에 나가게 된 연유는 그가 초등학교때 성탄절날 예수 탄생의 특별극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그가 서울사대 부속고등학교 때부터다. 새벽기도에서부터 철야기도회, 부흥회, 그리고 유년 주일학교 교사 등을 맡아 열심히 봉사했다.
 

당시 서울사대부고 12회 동창 중에는 변주선 걸스카우트 총재, 손성헤 서울 여성로타리클럽회장, 김영길 한동대 총장, 이건희 삼성그룹회장(13회) 김종량 한양대 총장(20회) 등이 있었다. 한편 강영우와 석은옥의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의 연출은 석은옥이 대학생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석은옥이 숙명여대를 다닐 때 걸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받든 그의 친구들이 석은옥을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게 한다.
 

당시 걸스카우트 회원들은 중도 실명자로서 서울 맹학교에 입학한 고아 강영우 중학생의 등록금을 대주는 특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석은옥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1961년 5월의 셋째주일 오후 서울 소공동에 있던 걸스카우트 본부를 찾았다. 이날 강영우 학생이 이들이 모금한 학비를 받으러 사무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처음 본 순간 석은옥은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말로서는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마치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특히 무남독녀인 석은옥은 이 순간 맹인 중학생 강영우를 동생처럼 보살펴 주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그러나 만일 이때 하나님께서 저 불상하고 초라한 맹인 중학생을 장차 인생의 반려자로서 즉, 앞으로 부부로서 일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셨다면 석은옥은 그 자리에서 도망쳤을 것이라고 그때의 감정을 후일에 와서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출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됐다. 1차적으로 석은옥은 강영우를 친동생처럼 보살피며 주말이 되면 기숙사를 찾아 밀린 세탁과 공부를 도왔고 그리고 소풍가는 날은 도시락을 싸 들고 따라 다녔다. 강영우가 연세대학에 다닐 때부터 석은옥은 강영우를 더욱더 열심히 보살폈다.
 

그러나 어느덧 세월은 흘러 누나 동생으로 6년이 지나자 드디어 이들은 애정이 꽃피는 연인으로 변해갔다. 석은옥은 비밀리에 부모도 모르게 강영우와 약혼을 했다. 그 흔한 금반지 하나 없이 학교 앞 다방에서 두 사람은 커피 한잔씩 놓고 오직 장래의 희망찬 비전만 주고 받는 약혼이었다.
 

그리고 결혼식은 강영우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3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들의 관계를 눈치챈 석은옥의 어머님은 매우 부정적으로 반대했으나, 결국 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결혼 허락을 했다. 어머니 이정현 권사는 현재 미국 시카고 노인 아파트에 살면서 시카고 제일연합 감리교회에 출석하며 노후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고 한다.
 
 
 
 

결혼식 날 석은옥 신부는 너무 기뻐 싱글벙글 웃었다.
 

 1972년 2월 26일 강영우와 석은옥은 약혼한지 3년이 지난 즉 강영우의 대학졸업과 동시에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의 나이 29살 그리고 신부는 30살이었다. 이날 기독회관 강당에서 거행된 결혼식의 주례는 숙명여대 윤태림 총장, 축사에는 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관석 목사, 그리고 신부의 친구들인 이화여대 예멜합창단이 목이메인 감동의 축가를 불렀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아름다운 축복의 결혼식이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가끔 신부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흐르자 신부 친구들이 신부를 놀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도 했다. 그만큼 이날의 신부 석은옥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윤태림 총장은 주례사에서 성경을 인용하여 섬기고 순종하는 아내가 되라고 하면서 정숙한 여인으로서 미덕을 잘 갖추었다고 칭찬했다.
 

또한 김관석 목사는 축사에서 “그 동안 오랫동안 신랑 강군의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해준 석양이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헌신적인 아내가 될 것인지를 짐작 해줍니다”라고 격려와 칭찬을 해주었다. 또한 가족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해준 사람은 구본술 박사였다.
 

구본술 박사는 강영우가 실명하여 날마다 병원 침대에서 울고 있을 때 강영우의 시력회복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 했던 안과 의사였으며, 그후 강영우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날 구본술 박사가 강영우 부모를 대신하여 인사를 할 때 신랑 강영우는 부모님 생각으로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그날의 결혼식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서영훈 전.KBS 사장은 “세상에서 그러한 행복한 결혼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오늘의 강영우 박사가 있기까지 뒤에서 눈이되고 손발이 되어준 석은옥 여사는 두 아들을 성공적으로 양육한 현모양처였습니다. 큰아들은 훌륭한 안과 의사로 그리고 둘째 아들은 미국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서 미국의 명문가를 만든 것은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교육적인 면에서도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석은옥은 결혼식을 올린지 6개월만인 1972년 8월 5일 남편의 피츠버그 대학원 가을 학기에 맞추어 단돈 2백불을 허리춤에 간직하고 가난과 고난의 여정이 기다리는 미국으로 갔다.
 

석은옥은 항상 성경에 입각한 섬기고, 순종하고, 그리고 어진 아내가 된다는 신앙의 교훈이 항상 몸에 뱄기 때문에 앞 못보는 남편 강영우를 일편단심 지극 정성으로 봉사와 희생으로 섬겼다.
 

사기(史記)에 이런 말이 있다. 가빈사 양처(家貧思 良妻) 즉,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생각나고 국난사 양상(國難思 良相) 나라가 어려우면 훌륭한 재상(宰相)이 생각난다고 했다.
 

한편 석은옥이 미국에서 남편이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는 이미 안드레명상 109호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석은옥은 남편의 박사 학위가 끝나자 이제 두 아들의 앞으로 대학 교육을 위해서는 임시교사의 봉급으로서는 불가능함으로 종신교사가 될 수 있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마침 살고 있는 근처에 듀크대학교 대학원이 있어서 3년만에 교육학 석사 학위를 마치고 종신교사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40이 넘었다. 27년간 교직생활의 봉급으로 두 아들을 사학의 명문고 진학에서부터 대학, 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교육비에 큰 보탬이 되었다.
 

큰아들 진석이는 3살 때 아빠의 눈을 고쳐 주겠다고 안과 의사의 길을 택해 지금은 워싱턴에서 최고의 안과 의사가 되었고 그의 아내는 산부인과 의사다. 둘째 아들 진영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데로 2009년 1월 16일 백악관의 오마바 대통령의 최연소(27세) 특별보좌관이 되었다. 현재 미국의 한인 동포중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가 되었으며, 그의 아내도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한다.
 

2003년 5월 29일 석은옥은 두 아들과 며느리가 정성을 다하여 차린 자신의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행복함을 느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합창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 남편 강영우의 말 한마디가 석은옥을 더욱더 기쁘게 했다. “여보, 아들, 며느리 네명의 박사가 당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니 당신은 정말 행복하겠소?” 그러자 둘째 아들 진영이가 한마디 덧 붙였다.
 

“아버지 박사가 네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잖아요” 이 말을 듣고난 석은옥은 마음 속으로 “그렇다 한집안 여섯명 가족 중에 다섯명의 박사와 한명의 석사가 탄생했으니, 이제 우리 집안이 미국의 주류 사회를 이끌어 갈 훌륭한 명문가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의 몸은 마치 가을 하늘 뭉게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성경빌립보서 4:13)
 
 
 미국에서 명문가를 만들기까지 석은옥은 눈먼 남편과 자식을 위한 헌신과 노력 그리고 그 인내의 열매가 미국 여성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교육계 명사 인명사전과 미국 여성 명사 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등재되었다.
 

석은옥의 자동차에는 <인내는 언젠가는 꼭 보상을 받는다>라는 격언의 글이 부착되어 있다.
 

그만큼 석은옥이 오늘이 있기까지 걸어온 길은 오직 인내의 깊은 뿌리가 있었기에 헌신과 봉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석은옥이 젊은 시절 언젠가 펜실베이니아의 헤리스버그를 방문했을 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펄벅 여사를 만났다.
 

펄벅 여사는 당시 석은옥의 각종 이야기가 신문에 난 것을 보고 “세상을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의 촛불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여 그 어둠을 밝힌 한국의 젊은 여성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라고 청중을 향해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한편 남편 강영우가 전세계 20여개국의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연설할 때마다 석은옥은 바늘에 실가듯이 항상 남편 곁을 보살피는 1급의 비서요, 지팡이요, 운전기사였다. 오마바 대통령의 특보인 둘째아들 진영이가 지난날 쓴 에세이에서 “우리 엄마는 158cm의 키에 몸 무게는 54kg도 안되는 비교적 작은 체구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엄청난 힘이 나오는지?”라고 의문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란 것을 이 아들이 미쳐 깨닿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하나님은 불상한 맹인고아 강영우를 잘 양육하기 위해 신실한 신앙의 여인 몇사람을 강영우에게 붙쳤다.
 

그 첫 번째 여인이 당시 병원에 근무하던 사회 사업가 이선희였다. 그는 강영우의 시력회복이 불가능 하다는 판정을 내린 안과의사 구본술의 부탁으로 강영우를 맹인 재활원의 기초 훈련을 거쳐 서울 맹학교에 3개월 등록금과 함께 입학을 시켜주고 미국 유학을 갔다.
 

하나님이 강영우에게 두번째 부쳐 준 여인은 당시 걸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담당하고 있던 권순귀였다. 권순기는 이선희가 미국 유학을 감으로서 강영우가 등록금을 못내 학교에서 자퇴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 훈련을 받고 있던 대학생들과 함께 강영우의 등록금을 지원했다.
 

물론 이때 오늘의 주인공 석은옥은 하나님의 특별 부름을 받은 여인이다. 한편 권순귀의 사정이 여의치 못해 등록금 지원이 어렵게 되자, 하나님은 다시 미국의 이선희에게 강영우를 도울 수 있는 즉, 앞으로 강영우의 양부모가 될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당시 기독교 사랑나누기 운동 즉 <굿 윌 인더스트리>에서 교육을 받던 이선희는 어느날 이 단체의 섭외부장 맥닐 부부가 이선희에게 식사 초대를 했다. 이 자리에서 맥닐의 부인이 이선희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했다. “혹시 부모 없이 어려움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좀 특정한 고아를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선희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러잖아도 강영우의 학비 문제로 매일 같이 고민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판에 맥닐 부인의 이러한 제의는 분명히 하나님은 강영우를 절대 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렇게 하여 불안과 좌절 속에 있던 강영우는 맥닐 부부의 도움으로 생활비와 학비 지원은 물론이며, 철물점으로 고아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3남매가 이제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집까지 선물 받았다. 이것이 1965년 5월에 있었던 강영우 인생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한 하나의 사건이다.
 

맥닐 부부는 계속해서 강영우가 연세대를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지원하여 강영우를 국제적 인물로 키우기 위한 기초를 만들어 준 자랑스러운 양부모로서 아름다운 책임을 다했다.
 
 
 
 
20만대 1로 선발된 “지구촌 인권 박애상 수상”
 

2009년 6월 17일 강영우 박사는 미국 LA에서 개최된 국제로타리클럽 세계대회에서 너무나도 귀한 상을 받았다. 이 상이 바로『올해의 지구촌 인권 박애상』이다. 이 상은 전세계 200여개국의 민간 지도자 120만명의 국제로타리클럽 회원 중에서 단 한명에게만 주어지는 그야말로 120만대 1로 선발된 수상자다.
 

무려 2만명이 넘는 세계 민간 지도자들이 참석한 LA 컨벤션 센터의 이 날의 장내 분위기는 강영우 박사의 무대 등장을 앞두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인권 박애상을 놓고 당시 미국 연방 중앙은행 총재인 폴 볼커를 비롯해서 세계적 지도급명사 10여명이 최종 경쟁을 벌렸는데, 즉 120만대 1로 뽑힌 인물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2만명의 시선이 총 집중된 가운데 강영우 박사가 수상연설을 하기 위해 석은옥의 손을 잡고 시상대에 등단했다. 2만명의 청중은 강영우 박사의 연설을 경청하기 위해 일제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는 1960년대초 전쟁으로 폐허가된 한국의 불쌍한 눈먼 고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분이 보시는데로 저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했던 기적의 삶을 살아왔는데 이 기적의 삶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20여명의 세계 국가 정상들과 세분의 유엔 사무총장들을 만나 저는 세계 장애위원회 부의장으로서 전세계 7억명에 달하는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
 

2만명의 기립 박수 소리는 LA컨벤션 홀을 진동시켰고, 석은옥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한편 2008년 강영우 박사의 모교 피츠버그대학은 “2008년의 동문상”으로 강영우 박사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귀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어둠을 빛으로 무지를 지식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시켰습니다.』 (다음호에 계속됨.)
 
 
※ 2012년 2월 23일 강영우 박사는 췌장암으로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남은 생을 정리하면서 부인과 아들에게 남긴 이별의 글이 다음호에 소개됩니다.
 글 : 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안드레 명상은 독자들의 선교 헌금으로 인쇄, 발송됩니다. 안드레 명상은 특히 사단급이상 군부대 대형교회 1만명 이상의 장병들이 이 글을 돌려가면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 군경 선교회
이병식 장 로 (주님의 교회)
박재준 장 로 (주님의 교회)
홍연표 장 로 (주님의 교회)
김익훈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박석진 안수집사 (주님의 교회 3부 찬양대)
장경희 권 사 (주님의 교회 3부 찬양대)
김미혜 권 사 (주님의 교회)
고수웅 전.KBS 언론인 (여의도 침례교회)
 

안드레명상 선교헌금안내
국민은행 268802-04-031127
(예금주 김수호)
 
 
발행처 : 안 드 레 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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