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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호 발행일 2012.2.1 -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2-03-03 10:28     조회 : 917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차관보가 되기까지
 

 한국인으로서 미국 행정부 고위직에 진출한 사람으로는 클린톤 행정부시절 법무부 인권 차관보를 지낸 고흥주 박사를 비롯하여 노동부 여성국장(차관보급) 전신애 여사 법무부 법률 담당 부차관보급 유춘(미국명 존유) 그리고 아버지 부시 대통령때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도 맹인 고아로서 인간승리의 전설적 인물인 강영우 박사의 안타까운 사연이 근간에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다. 맹인 고아 중학생이 백악관의 대통령 정책차관보를 거쳐 미국에서 명문가를 이루기까지 살아온 파란만장의 강영우 박사 인생 역정을 앞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했다.
 

강영우 박사는 1944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문호교회를 다녔다. 서종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중학을 다닐 때 그의 인생에 운명적인 비극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15세때 운동장에서 축구공이 양쪽 눈을 떼려 망막박리로 실명의 위기가 왔다.
 

당시 서울 국립의료원에서 치료를 할 때 그의 어머님은 의사들을 붙잡고 제발 한쪽 눈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를 했다. 어머니는 모태신앙으로 잉태된 아들이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 평소 교회에서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의 계시처럼 가슴에 충만했다고 한다.
 

비록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장남인 아들 영우를 열심히 공부만 시키면 앞으로 목사가 될 것이라는 큰 소망을 품고 신앙생활에 매진했다. 강영우를 치료한지 1년이 되던 날 의사들은 강영우 어머니께 현대 의학으로는 이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자세한 설명을 했다.
 

아들의 실명 선고를 받은 어머니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순간 자신의 머리를 스쳐가는 아들의 처량한 모습이 떠올랐다. 즉, 평생을 구걸이나 맹인 안마사로 살아갈 불쌍한 모습이…… 아들이 결국은 완전 실명이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8시간만에 어머니는 그충격을 이기지 못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사망에 이어서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남으로 이 가정의 생계의 책임은 열일곱살의 누나에게로 넘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인 누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서울 평화시장의 봉제공장 미싱공으로 들어갔다. 소녀 가장이 된 누나는 어린 세 동생의 생계를 위해 코피를 흘려가며 죽기살기로 일을 했다.
 

그러나 봉제공 2년만에 누나는 과로를 이기지 못해 쓰러진다. 울고 있는 세 동생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꼭 일어나겠다던 누나는 끝내 눈도 감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불과 4년 사이에 부모도 누나도 시력도 다 잃어버린 강영우는 처절한 절망 속에서 네 번째 가장의 책임을 맡았다.
 

날마다 두 동생을 껴안고 울던 강영우는 비장한 결단을 내린다. 아홉살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그리고 열세살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그리고 자신은 맹인 재활센터로 가기로 하고 3형제는 뿔뿔이 헤어졌다. 강영우는 우선 맹인 재활센터에서 무엇이든지 배워야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또 헤어진 동생들과 언젠가는 다시 함께 살 수 있다고 결심을 한다.
 

맹인 재활센터에서 강영우에게 첫 번째 후원자가 나타났다. 즉, 강영우 소년의 너무나 딱한 사연을 알게된 병원 사회사업가 이선희 선생이 강영우를 서울 맹학교로 데리고 가서 입학금과 3개월분 등록금을 내주고 입학을 시켰다.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이선희 선생은 장애인들에게 자활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한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장애인 자활제도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중에 있었다.
 

한편 강영우는 1962년 18세 나이에 서울맹학교 중등부 1학년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 사이 이선희 선생은 미국유학을 떠났고 강영우는 다시 3개월분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퇴의 고민에 빠졌다. 강영우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된 당시 걸스카우트 지도자 권순기 선생이 훈련을 받는 여대생들에게 강영우의 딱한 사정을 알리고 등록금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강영우는 고마운 여대생들이 모금한 등록금을 수령하기 위해 처음으로 걸스카우트 사무실을 찾았다. 등록금을 전달한 권순기 선생은 여대생들에게 강영우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다. 여대생들 모두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한 여대생이 손을 번쩍들고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했다.
 
 
 
 
강영우 인생에 빛과 등대가 되어준 여대생 석은옥
 

 강영우는 여대생의 손을 꼭 잡고 광화문 네거리를 걸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이에 여학생의 손목은 마치 천사의 손으로 생각했다. 여학생의 첫 말은 “저는 숙명여대 영문과 1학년 석경숙이에요”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당시만해도 강영우의 시력은 완전 잃은 것이 아닌 마치 짙은 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일 정도였다.
 

강영우는 지금도 50여년전 그날의 첫 만남의 기억을 “어렴풋이 보았지만 아주 미모의 여대생이더군요. 하지만 그래봤자 제겐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맹학교의 기숙사는 주말이 되면 부모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기 때문에 강영우에게는 주말이 되면 항상 침울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 여대생이 주말마다 찾아와 외로운 강영우에게 책도 읽어주고 공부도 도와주고 기타 청소, 세탁 등 여러 가지를 다 도와주어 강영우의 공부 성적은 날로 향상되어 2학년이 되자 1등을 하게된다. 우연히 강영우의 1등 성적표를 보던 여대생은 성적표에 기록된 강영우 생년월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부터 중학생인 강영우를 동생처럼 대해 주었는데 자신과의 나이 차이가 불과 한살 아래였다. 한편 장애인들에게『자선이 아닌 직업의 기회』를 주는『굿윌』이란 제도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갔던 이선희 선생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왔다.
 

즉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굿윌의 창업맴버의 한사람이 강영우의 딱한 처지를 알고 강영우를 양아들로 정하고 앞으로 대학을 마칠 때까지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대 주겠다는 것이다. 한편 여대생 석경숙의 정성어린 지도로 강영우는 중,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대학입시에 전력을 기우렸다.
 

그러나 가정교사와 같았던 석경숙이 미국유학을 떠남으로 강영우의 대입공부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는 자원봉사 온 대학생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여 1968년 1월 강영우는 푸른 꿈을 안고 연세대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접수 창구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직원이 강영우에게 맹인은 연세대학교에 입학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원서를 도로 내밀었다. 강영우는 순간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에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연세대학교가 이럴 수 있느냐”고 한참동안 하소연을 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강영우는 마음 속으로 “내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지금 이때 왜 나를 도아주시지 않을까”하고 탄식어린 기도를 하면서 연세대학교 백양로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머리에 기독교 교회 협의회 총무인 김관석 목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관석 목사는 6.25전쟁 초기에 북한에서 단신으로 월남해서 당시 시골의 강영우 집에 잠시 피신해 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강영우는 힘든 일이 생기면 김목사를 찾아가 조언을 듣곤 했다.
 

이번에도 입학원서 접수를 거부당한 강영우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 김관석 목사는 당시 연세대 김윤석 총무처장을 비롯하여 여러 교수들의 지지를 이끌어내 원서를 접수시키는데 도움을 줬다. 그리하여 강영우는 연세대 문과 대학에 응시하여 당당히 10등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미국의 양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방도 한칸 얻어 헤어진 동생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또한 첫 학기가 끝난 뒤 강영우는 좋은 성적을 얻어 장학생이 되었고, 두번째 학기에는 1학년 전체에서 A학점의 우등생이 되었다.
 
 
 
 
멸시 천대로 얼룩진 맹인 대학 생활
 

 자타가 인정하는 일류대학에 들어온 눈뜬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자신감을 얻게된 강영우는 대학의 각종 동아리 활동에도 참여하고 싶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교육과 사상을 배울 목적으로 교내 흥사단에 원서를 냈다가 거절당했다. 두번째로 서울의 명문대학교 교육학 전공 학생들의 YMCA 모임인 노구회에 입회원서를 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세번째로 한국 기독학생회에도 받아 주지 않았는데, 이유는 각종 봉사활동에 눈먼 봉사가 어떻게 봉사를 하겠느냐고 거절했다. 그러나 강영우는 이들 동료학생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맹인들을 비인간적으로 멸시하는 시대에 자기만이 인간 대접을 받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버스를 탈려고해도 차장은 강영우를 밀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태운다. 식당에 가도 일반 손님이 못보겠금 제일 뒤 구석으로 밀어넣고 식사를 하게 한다. 또한 상점에도 아침 일찍가면 상점 주인이 화를 내며 밀어낸다. 이유는 아침부터 맹인에게 물건을 팔면 재수가 없다고 오후에 오라는 것이다.
 

매사에 맹인은 항상 재수없는 존재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영우는 이런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이 세상에 기댈 언덕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다. 당시 불광동의 어느 천막교회에서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장님이 눈을 뜨고 갖가지 불치의 병이 고쳐진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갔다.
 

바로 이 천막교회에서 당시 조용기 전도사를 처음 만났다. 조용기 전도사의 뜨거운 기도가 시작되자, 강영우는 참았던 감사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면서 난생처음 성령 체험을 했다. 그동안 하나님이 자신을 이토록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서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비록 당장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넋을 잃고 울고 또 울었다. 강영우는 이때부터 자신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항상 자신의 앞날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했다. 한편 번번히 거절당하는 학교의 동아리에 미련을 버리고 자신이 직접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다.
 

즉 독서 동아리인 연세자유교양회를 두사람의 친구와 함께 창립하였는데 의외로 회원 숫자가 증가하여 모일 장소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된 김윤석 총무처장이 상학관 지하실에 회의실을 마련해 주었다.
 
 
 
 
강영우의 원대한 사랑의 고백
 

 한편 시각장애인 교육을 위한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갔던 석경숙이 특수교사 자격증을 얻어 1년만에 귀국 맹인재활센터 부소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석경숙은 대학생이된 강영우를 친동생처럼 과거보다 더 열심히 보살폈다. 한편 석경숙은 유학을 마치고 온 후부터 친구들의 소개로 남자들을 가끔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 남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강영우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강영우는 항상 누나처럼 생각했던 그 마음 한구석에 석경숙에 대한 아련한 연모의 정이 싹트고 있었다. 1968년 12월 22일 강영우는 석경숙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남자 고르기가 힘들면 차라리 나한테 시집오는 것 어때?” 순간 석경숙은 깜짝 놀라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강영우는 이때 처음으로 앞이 안보이는 것에 대해 크게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즉 자신의 청혼에 대한 석경숙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없으니 너무나 답답했다. 한참이 지난후 석경숙이 강영우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할까?” 이 말의 뜻은 6년간 누나 동생으로 지내왔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석경숙은 강영우의 순정의 사랑을 받아 드리기로 결정을 해 버렸다. 두 사람은 학교앞 다방으로 들어갔다. 강영우는 석경숙에게 ‘석은옥’이란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다소 의아스러운 표정을 짖고 있는 석경숙에게 강영우는 석은옥이란 이름에 대한 설명을 했다.
 

 “당신 친구들의 남편이나 애인과 비교하면 지금 나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인간이지만 그러나 나에겐 앞으로 30년의 비전과 목표가 있다. 즉 석의시대 10년, 은의시대 10년, 옥의시대 10년이 그 것이다.
 

즉 석의시대 10년간은 돌밭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처럼 고난과 역경의 시대겠지만, 믿음으로 극복해 맹인으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두번째 은의시대 10년간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가정에서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양육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옥의시대 10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눈뜬 사람들에게 짐이되고 있지만 그러나 그때가 되면 우리는 사회에 유익을 주며 봉사하는 삶을 살 것이다.”…… 강영우의 얘기를 다 듣고난 석은옥은 “나는 네가 그렇게 크나큰 비전과 그리고 분명한 인생의 목적이 있는 줄 지금까지 전혀 몰랐다”고 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7년간 쌓아온 우정은 아름다운 사랑으로 급선회 하기 시작하여 서로가 사랑을 고백한지 3일만에 약혼을 했다. 약혼이라고 해서 두사람이 서로 주고 받은 아무런 선물도 없었다. 마침 약혼을 한날이 성탄절이어서 두사람은 서대문 순복음교회를 찾아서 성탄예배를 약혼식으로 대신했다.
 

이 교회에서 약혼 예배를 드린 이유는 과거 불광동 천막교회시절 조용기 전도사의 뜨거운 기도로 성령을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1972년 강영우는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을 전체 차석으로 졸업하고, 5일후 2월 26일 약혼한지 3년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신부 나이는 이미 서른살이 다 되었다.
 

특히 신부는 홀어머니 밑에서 무남독녀로 성장하여 명문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기에 이날 결혼식에서 맹인 사위 모습을 바라보는 그 어머님의 심정이 과연 어떻했을까?…… 결혼식을 마친 강영우는 그동안 유학에 대비 꾸준히 공부한 보람으로 국제로터리 재단의 장학생에 선발되었다. 그러나 문교부 유학시험에서 유학의 길이 막혔다. 강영우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려운 난관을 정면 돌파하겠다고 했다.
 

과거 연세대학교 입학 거부때도 하나님의 섭리로 해결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어려운 고비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도에 매달렸다. 한미재단 이유상 박사가 장애인 불평등 법적조항의 청원서를 만들었고 여기에 한미재단 총재와 연세대학 박대선 총장의 서명으로 민관식 문교부 장관이 쾌히 승낙했다.
 

하나님은 강영우가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문제는 서울대학병원 종합검진에서 ‘해외여행 지장없음’이란 의사의 진단서만 남았다. 그런데 담당의사는 강영우가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진단서를 써 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인 강영우는 강짜를 부리고 항의를 했으나 허사였다.
 

그런데 순간 강영우의 머리에 갑자기 한가지 지혜가 떠올랐다. ‘시각장애 외에는 해외여행에 지장이 없음’이라고 써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담당의사는 고개를 갸웃등 하더니 그것은 써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유학준비 6개월간의 갖가지 난제를 극복하고 비로써 한국장애인 최초 정규 유학생 여권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원의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9월 5일의 개학을 불과 일주일 앞둔 1972년 8월 25일 이들 신혼부부는 2백불을 손에 쥐고 기회의 땅 미국으로 출발했다.
 

※ 다음호에 계속됨.
 
 
 
 
(글 : 김수호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 교회 협동장로)
※『6.25전쟁 하우스보이 임종덕이 미국대통령 안보 비서관이 되기까지』의 지난 4회동안 연재된 내용을 본 많은 독자들이 독후감을 보내주었다.
* 미국 뉴욕의 WMBC-TV(교포 운영 공중파 방송) 서울담당 문무일씨는 안드레명상의 임종덕 장로 사연은 꼭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서울 온누리교회 정병두 장로는 안드레명상을 더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겠금 경복고 34회 동창회 홈페이지에 올려 1일 평균 900명이 본다고 했다.
* 경북 경주시의 서기봉 장로는 안드레명상이 군부대 선교용으로 매우 유익한 글이라고 많은 부수를 요청했다.
 
 
<안드레 명상은 독자들의 선교 헌금으로  인쇄,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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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 안 드 레 명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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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462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080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086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1392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011
20 제20호 발행일 2010.12.1 -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기독교인으… KBS로고스 10.12.30 1669
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1763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459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602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532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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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2호 발행일 2008.12.01 - 나의 사랑하는 아내 윤화영에게 KBS로고스 08.12.28 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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