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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1-06-20 09:04     조회 : 139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악관 비서관이 되기까지 (1편)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악관 비서관이 되기까지 (1편)
 

하우스보이란 6.25 전쟁때 미군 부대에서 막사 청소를 하고 미군의 군화를 닦아주고 그리고 각종 심부름을 해주는 소년을 말한다. 주로 전쟁 고아들 중에서 선정했는데, 당시 미군부대의 하우스 보이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6.25 전쟁때 하우스 보이로 성공한 잘 알려진 인물로는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이된 신호범 장로와 수원중앙교회 김장환 원로목사 그리고 미국 하바드대학교 정치학박사 임종덕 장로를 들 수 있다.
 

이들 세사람 중에서 임종덕 장로는(2011년 현재 나이 75세) 그가 오늘이 있기까지 살아온 그 파란만장의 위대한 생애를 아는 사람이 많치 않다. 그 이유는 임종덕 장로는 미국 육군대령으로 예편하기까지 백악관에서 닉슨대통령, 포드대통령, 카터대통령 등 세분 대통령의 안보비서관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2014년 까지는 자신의 과거 직책과 관련된 일체의 말을 절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의 여러 교회에서 그의 신앙 간증을 요청해도 일체 거절하고 있다.
 

사실 안드레명상도 이미 3년전 임종덕 장로의 인생 역정을 게재할려고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는데, 마침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임장로를 송승엽 안수집사의 소개로 다시 만나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단, 백악관 안보비서관 시절의 그의 직책과 관련된 내용은 일체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1949년 당시 12세의 임종덕은 중국 용정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부모님과 함께 귀국하여 서울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년뒤 북한의 6.25 남침으로 미쳐 피난을 가지 못하고 고아가 된다. 임종덕 소년이 고아가 되어버린 그날의 불행을 6.25전쟁 6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잘 알고 지내던 형님뻘 되는 청년이 임종덕에게 서울중학교 한쪽 교실에 불을 지르라고 했다. 당시 서울중학교는 인민군들이 주둔해 있었는데 이곳에 수감된 수십명의 청년들이 훈련을 받고 곧 북한 의용군으로 전쟁에 나가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청년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임종덕에게 불을 지르라는 지시를 한 것이다. 평소부터 의협심이 강했던 임종덕은 그 청년이 전해준 기름통을 들고가서 교실옆 목조 건물에다 불을 지르고 북아현동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도망을 갔다.
 

집에 도착한 임종덕은 집안에 있던 큰나무에 올라가 나무속에 숨었다. 잠시후 인민군 찌프차가 집앞에 도착 인민군 요원들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마침 마당에 있던 어린 여동생의 머리에 총검을 데고 부모님을 찾았다. 어린 여동생은 겁에 질려 와들와들 떨더니 지하 창고에 부모님이 있다고 말을 해 버렸다. 잠시후 부모님이 양손을 뒤로 묶인채 마당에 섰다. 인민군은 당신네들은 반동문자이기 때문에 인민 재판에 의해 처형하겠다고 했다. 임종덕을 학교 방화범으로 체포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형식적인 재판이 끝나자 총 소리와 함께 부모님은 쓰러졌다. 아버지 임성규는 독립운동가였고 어머니는 당시 숙명여고 교사였다. 인민군들은 미리 준비해온 장작 위에 시체를 얹어 놓고 기름을 부어 불을 질렀다. 이 무서운 만행을 나무 위에서 직접 목격했던 임종덕은 그 길로 서울을 탈출 피난민 대열에 끼어 정처없이 걷다가 다시 9.28 수복때 미군을 만났다.
 

한 미군 대위는 임종덕을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면서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원산과 흥남까지 임종덕을 데기고 간 그 미군 대위가 전사하면서부터 임종덕은 외로운 고아로 거지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서울역 앞에서 거지생활을 하던 임종덕 소년은 고아들을 데리고 당시 불광동에 있는 희망원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다섯살이었다.
 

자신보다 어린 고아들을 동생처럼 보살폈다. 그러나 어느날 고아원 원장의 놀랄만한 부정행위를 목격한 임종덕은 몽둥이를 들고 원장실로 쳐들어가 사무실을 박살냈다. 원장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산으로 도망쳤다. 임종덕도 주위 형들이 너도 빨리 도망가라고 권유해서 고아원을 나와 서울역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동생뻘 되는 아이들이 “형, 오빠”하면서 29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임종덕은 깜짝 놀라 돌맹이를 던지면서 따라오지 말고 고아원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 혼자도 얻어 먹기 힘든데 너희들을 어떻게 먹이고 또 잠은 어디서 잔단 말이냐”하면서 계속 돌맹이를 던지면서 저지했으나, 어린 소년, 소녀들은 함께 손을 잡고 울며불며 임종덕을 따랐다.
 

저녁때가 되어 서울역에 도착한 임종덕은 염천교 다리 밑에 임시 거처를 정하고 모두가 밥을 얻으러 나갔다. 두시간 후에 이들이 얻어온 각종 음식을 다 모아서 비빕밥을 만들어 골고루 배식을 했다.
그러나 정작 임종덕은 자신이 먹을 음식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잠잘 곳을 찾아서 임종덕은 행복했다. 즉 큰 방공호로 만들어 놓은 장소를 깨끗이 청소를 하고 나니 그곳에 많은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이별로 남·녀 구분과 엄격한 규칙을 정했다. 임종덕은 어느날 염천교 밑에서 당시 거지왕자로 소문난 김춘삼을 만나서 거지로써 살아가는데 지켜야할 중요한 규칙 몇가지를 교육받았다.
1) 밥을 얻으러 갈 때 대문을 두드리지 말고 깡통 소리를 내라.
2) 밥을 얻을 때는 꼭 깡통이나 그릇을 준비해 가라.
3) 하루에 같은 집에 두번 가지마라.
4) 땅에 떨어진 음식은 절대 먹지 말아라.
한편 날이갈수록 고아들이 계속 모여들어 129명이 되었다.
 

* 129명 고아들을 살리기 위해 임종덕은 소매치기와 절도범으로 변했다.
 

129명의 아이들이 제대로 못먹고 질병으로 그동안 24명이 죽었다. 어떤 날은 8명이 한꺼번에 죽는 날도 있었다. 약 사먹을 돈이 없기 때문에 심한 감기만 걸려도 고열로 쓰러져 죽어갔다. 그래서 임종덕은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것은 바로 소매치기와 도둑질을 해서라도 약값을 모으기로 했다. 그 해가 1952년이었다. 매일매일 소매치기로 번 돈으로 당장 아이들에게 옷도 사 입히고 그리고 약값에 충당했다. 임종덕은 서서히 간이 커지면서 소매치기에서 부잣집들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주로 서울 장충동이 활동 무대가 되었고, 특히 제니스 라듸오를 훔치는 날은 아이들에게 특식으로 꽈배기 빵을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왔다. 어느날 임종덕 소년에게 그의 인생의 운명을 바꾸는 날이 왔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좀 고급스러운 손님을 찾기 위해 대기하고 임종덕은 미국 공군 장성이 탄 승용차 한 대가 미군 전용 주차장에 도착하는 것을 목격했다.
미군 헌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차에서 내린 장군은 환송차 대기 중이던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이때 임종덕은 승용차 뒤의 트렁크가 약간 열린 것을 발견하고 그안에 있는 가방 하나를 훔쳐 비호처럼 도망갔다. 그러나 그는 멀리 못가고 미군 헌병들에게 붙잡혔다.
 

임종덕은 과거 미군부대에 조금 있을 때 배운 서투른 영어로 자신이 절도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데리고 있는 고아들이 굶어 죽는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임종덕을 유심히 보고 있던 장군은 곧 절도죄로 파출소로 연행할려는 헌병들에게 임종덕을 조선호텔 즉 장군의 숙소로 보내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임종덕은 이 절호의 기회, 이 좋은 직업을 사양했다.
 

이유는 내가 없으면 100여명의 고아들이 당장 굶어죽는다고 했다. 장군은 헌병들에게 100여명 고아들의 생활 현장을 확인하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고아들 전원을 미국 공군이 운영하던 제주도 고아원으로 입소시키고 그리고 임종덕은 자신의 하우스 보이로 일하겠금 명령했다.
그가 바로 미국 5공군 사령관 스티브 도마스 화이트 중장이었다. 당시 사령부는 일본에 있지만 작전 지시 관계로 서울 조선호텔에 상주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전투비행기 조종사인 그의 외아들이 전투비행중 전사했다. 한편 화이트 장군은 임종덕을 데리고 약 1년동안 유심히 관찰한 후 어느날 임종덕에게 “너는 오늘부터 내아들이 되었다”며 양자로 입적을 시키겠다고 했다. 모처럼 장군의 가슴에 푹 안긴 임종덕은 탱큐를 연발하며 엉엉 울었다. 임종덕은 다시 서울중학교 3학년에 복학하여 중단되었던 학업을 계속했다.
 

어느날 임종덕은 사령관을 따라 수원의 미공군 기지를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다. 즉 같은 하우스 보이로 이곳 공군기지 막사에서 일을 하는 김장환이란 소년을 만났다. (후일 수원중앙교회 원로목사) 김장환 소년은 임종덕을 아주 경계하는 눈초리로 보면서 “너는 도대체 누구냐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왔느냐”며 매우 못 마땅한 표정으로 임종덕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일하는 이곳의 하우스보이 자리를 임종덕이 차지할려고 온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후 오해가 풀린 김장환은 임종덕에게 “너는 어떻게 장군의 하우스 보이가 되었느냐, 누구 빽이냐”며 너무나 궁금하다면서 계속 캐 물었다.
 

임종덕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살아온 과거와 특히 장군과의 인연이 된 사건까지 다 말해 주었다.
 

임종덕의 말을 다 듣고난 김장환은 임종덕의 손목을 꼭 잡고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자며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하우스 보이가 된 사연을 간단하게 말했다. 즉 김장환이 동네 아이들과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는 길에 당시 수원형무소 근처에서 미군들의 야외 회식자리가 있었던 현장을 발견했다. 현장에는 민군들이 먹다 남은 각종 음식이 많이 있어서 김장환은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먹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자 한 친구가 흙 투성이가 된 미군 군화가 몇 켤레 있는 것을 보고 “저것도 가지고 가서 시장에 팔면 돈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가지고 가자고 했다. 그러나 김장환은 절대 반대했다. “음식은 남은 것이니까 다 먹고 가도 되지만 군화는 가지고 가다 들키면 도둑놈으로 형무소에 간다”면서 적극 만류했다. 김장환은 친구들이 떠난후에도 혼자서 흙투성이가 된 군화들을 전부 깨끗이 닦아 가지런히 놓아 주고 일어섰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김장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바로 미군이었다. 김장환은 이날의 인연으로 나무 지게꾼 소년에서 하루아침에 당장 수원의 미공군부대 하우스 보이가 된 것이다.
 

김장환의 얘기를 다 듣고난 임종덕은 마음 속으로 우리는 다 절도와 관련된 운명으로 하우스 보이가 되었구나 하면서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했다.
김장환도 일요일이면 여중생들과 항상 모임이 있는데 너도 꼭 놀러 오라고 했다. 그후 임종덕은 일요일만 되면 초코렛과 온갖 과자를 가방에 가득히 넣고 김장환을 꼭 찾아갔다.
김장환을 꼭 찾아가는 첫째 목적은 여중생을 사귀기 위해서였다. 한편 김장환은 임종덕과의 우정이 깊어질 즈음 미국으로 건너간다. 하우스보이 제1호 출국이었다.
 

* 임종덕에게 본격적인 신앙과 교육을 위한 양아버지의 원대한 계획
 

1953년 어느 주일날 임종덕은 양아버지 화이트 장군과 함께 당시 여의도 비행장에 있는 미군 교회를 찾았다. 미군들의 예배가 끝나자 바로 한국 공군 장병들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날 예배석 제일 앞줄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김정열 국방장관, 김신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화이트 장군과 그외 외국 고관들이 앉았다.
 

임종덕 소년은 이날 이승만 대통령을 처음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이 날의 설교를 맡은 한국 공군 군종감의 설교중 후반부의 설교가 임종덕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지금 이 나라는 온갖 부정부패의 척결을 단행하지 않으면 이 자유당의 정부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자유당의 총재인 대통령에서부터 국방장관 그리고 군종감의 직속상관인 공군참모총장까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새파란 20대의 청년 군종목사가 거침없이 설교를 해나갔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임종덕은 마음 속으로 “저 목사님은 오늘 당장 형무소 가겠구나”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강대상에서 내려온 군종목사를 덥석 안으면서 “아주 훌륭한 설교였소,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목사님의 설교를 모두가 다 깊히 생각하고 각자의 소임을 성실히 해 나가십시오”하면서 다시 군종목사의 손을 잡고 목사로서 애로
사항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특히 공군초대 군종감의 입장에서 제일 큰 애로
 

사항으로 교회가 없어 미군 교회를 빌려쓰는데 하루빨리 우리공군도 자체 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승만 박사는 앞으로 서울 대방동에 건설될 공군본부 건설 때 공군 교회부터 먼저 건축하라고 공군참모총장에게 지시했다.
이날의 설교를 했던 공군 군종감이 지금(2011년) 미국 LA의 동양선교교회 원로 목사인 임동선 목사다. 한편 임종덕 소년은 서울중학교를 졸업후 양아버지의 권유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미국행을 극구 반대했다. 이유는 공산당에 의해 부모님의 그 처참한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에 자신은 앞으로 군인이 되어 공산당을 타도 한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러나 양아버지는 앞으로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면 다시 군대에 가서 군인이 될 수 있다고 임종덕을 타일렀다. 한편 임종덕은 지금 양아버지께서 미국 본토로 근무지가 바뀌어서 곧 출국하는데 만일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으면 자신은 또다시 고아 신세가 된다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임종덕은 1953년 12월 김장환에 이어 하우스보이 제2호 입양아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계속)
 
 
※ 임종덕의 후반부 이야기 즉, 하바드대학 정치학 박사를 거쳐 월남전에 특수부대 그린베레로 참전 두번의 포로와 두 번의 탈출 그리고 생사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만난 하나님의 간증 이야기가 게재됨.
 (글 김수호 : 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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