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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10-03-18 16:30     조회 : 1602    
 
제99호 (2010.3.1발 행 )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과 신앙 2편
 
 
 
지난호에는 20세의 교사신분으로 당시 북한 공산당의 김책과 김일성의 평양행 제의를 거부하고 월남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특히 서울에 오면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좌절되고 대신 육군 사관학교를 거쳐 6.25전쟁 중에는 특수부대원으로 수많은 전과를 올리면서 죽음의 고비를 많이 겪었다.
 
그때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 주셨다고 증언했다.한편 채명신이 경북 영덕지역 남정 부대장으로 있을 때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그의 어머님을 만나게 된다.평남 용강군 오신면 덕해 교회에서 어머님의 손을 놓고 단신 월남한 채명신은 어머님이 이미 세상을 떠난줄 알았는데, 이렇게 상봉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침마다 어머님이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는 그때의 기분은 마치 세상을 다 얻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어머님은 이때 인천에 잠시 갔다가 인민군들에게 체포되어 간 후 행방불명됐다. 이러한 슬픔 가운데서 놀라운 편지 한통을 받았다. 채명신이 월남할 당시 평양 교육대학에 재학 중이던 친동생 채명세가 보낸 편지였다. 채명세는 1951년 1.4후퇴 당시 월남하여 형님을 만나겠다고 육군에 입대 형님이 근무하던 5사단 36연대 소대장으로 배속되었다. 형님과 같은 사단에 배속된 채명세 소위는 지난 4개월동안 치열한 전투에서 무공훈장을 받고 정식 휴가를 얻어 형님을 찾아왔던 것이다.
 
가뜩이나 어머님이 인민군에 끌려간 것을 원통해 하던 채명신은 동생을 껴안고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형제만이라도 이제 다시는 떨어지지말고 열심히 살자고 했다. 채명신은 즉시 동생이 소속된 36연대장 오창근 대령에게 동생을 자신의 5연대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싶었다. 특히 오 대령과는 평소에 호형 호제하던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채명신은 이 문제를 두고 곰곰히 생각하니 아무리 동생이라고 해도 특히 전시중에 소대장을 빼온다는 것은 채명신의 성격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 미8군 사령관 벤프리트 대장의 아들 공군 중위가 전투기 조종사로 작전중 북한 상공에서 행방불명되었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안전지역의 조종사로 근무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벤프리트 대장은 그런 졸렬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채명신은 벤프리트 장군의 그 처신이 바로 ‘미국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동생 채명세 소위를 현직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한편 채 소위의 3일간의 휴가로 이들 형제는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고향 이야기 등 수많은 회포를 다 풀었다. 채 소위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후 얼마되지 않아 채 소위가 소속된 36연대장 오창근 대령으로부터 채명신에게 긴급전화가 왔다.
 
아주 흥분된 음성으로 “당신 동생이 내 부대에 배속된 것을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채 소위는 무공훈장을 두 개나 받았기에 곧 본부로 빼려고 했는데 당신이 살짝 한마디 언급만 해 줬어도”하면서 오창근 대령은 전화기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애끼 이사람아 우리 처지에 그렇게 해서야 되나 지금 내 입장은 어떻게 되겠느냐! 당신 동생이 전사했단 말이야” 오창근은 책상을 치며 울어댔다. 이때 채명신은 순간 심장이 딱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계속 울어대는 오창근 대령에게 “선배님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는만큼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영광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오 대령을 위로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편 세계 전쟁사에 널리 알려진대로 노르망디 상륙작전때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이 상륙작전 제1진 공격제대의 부사단장(준장)으로 참전했다.
 
이때 상급 사령부에서는 부지휘관이 최전방에서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나는 대통령의 아들로서 전선에서 살아도 애국이요, 죽어도 애국이다. 그렇다면 군인으로서 최선봉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그대로 전선으로 나갔다. 또한 6.25전쟁때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아들 아이젠하워 소령이 참전했다. 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이나 돈, 인맥을 이용하여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병역을 기피했다.
 
전시가 아닌 오늘날에도 신성한 국방의무를 기피하기 위해 귀신도 웃고갈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일부 청년들이 있다. “국방의 의무를 기피한 자가 어떻게 나라의 공직을 맡을 수 있으며 사회적 지도자나 공인이 될 수 있느냐”며 국방의무를 일벌백계 주의로 다스렸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병력의무 정책은 그가 남긴 경제발전 정책과 더불어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후대에 길이 회자(膾炙)될 것이다.
 
 
한국군의 월남파병과 채명신
 
 
채명신이 5연대장 시절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1952년 봄 미국에서 온 미육군 참모총장 콜린스대장을 비롯하여 유엔군사령관 리치웨이대장, 미8군 사령관 벤프리트대장, 제10군단장 파머중장, 한국 육군참모총장 이종찬 소장 등 한미 군 수뇌부가 총 출동한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다.
 
이들이 5연대를 방문한 목적은 채명신이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리고 있는 즉 소수 정예병으로 적진을 강타 초전박살을 내는 중대전술기지 작전의 전투 시범을 보기 위해서다. 실전을 방불케하는 이 날의 시범 전투장면을 다 보고난 미군 수뇌부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이 작전은 한국 산악 지형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법이라고 격찬을 했다. 한편 채명신의 이 중대 전술기지 작전은 후일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그대로 채택 작은 희생으로 큰 전과를 올렸다.
 
1958년 채명신은 마침내 별을 달고 송요찬 장군이 재임중인 1군사령부 작전참모로 영전되었으며, 이 곳에서 참모장인 박정희를 만나게 된다. 한편 당시 남북한 경제 비교는 1970년의 경우 북한이 국민소득 100불인데 비해 남한은 70불이였으며, 특히 북한은 압록강의 수풍댐 발전으로 전기는 남아돌아 모든 공업분야는 북한이 월등히 우세했고, 아울러 전쟁무기도 대량 생산되고 있었다. 또한 앞서 장면 정권 하에서 국내 정치는 극도로 혼란에 빠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숙제를 너무 많이 낸다고 길거리로 나와 데모를 했다.
 
그리고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 뒤따라 5.16혁명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채명신은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한편 당시 홍천에 주둔했던 수도사단이 파월전투부대로 선정되자 장교들은 환호하는가 하면 사병들은 불안했다. 특히 일부 사병들은 전쟁의 공포증으로 인해 부대 내(內)에서 탈출병이 밤마다 평균 10여명씩 생겨났다.
 
이에 당황한 채명신은 전체 부대 장병들을 연병장에 모아 놓고 그 유명한 신앙 간증 연설을 했다. 자신이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특히 군인으로서 6.25 전쟁때 소나기처럼 퍼붓는 총탄속에서도 살아난 갖가지 기적들을 사실 그대로 연설했다. 처음에는 풀이 죽어있던 장병들이 시간이 가면서 채명신이 감격을 억제치 못해 눈믈을 닦으며 간증을 하는 모습에 전 장병들은 숙연해졌다.
 
특히 이날 간증 연설이 시작되기전 채명신은 전 장병들에게 뜨겁게 내려쬐는 햇빛을 피해 연병장 옆에 있는 건물이나 나무 그늘에 앉아서 편안히 연설을 듣게 했다. 우리나라 군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장병 한사람 없는 연병장을 향해 낯선 이국 전쟁터로 향하는 장병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외롭게 서서 외쳐대는 장수(將帥)의 모습에 장병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런 장수와 함께 전쟁터로 간다면”……  
 

끝으로 채명신은 마태복음 10장의 성경 구절을 장병들에게 낭독해주고 간증을 마쳤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말고 영혼과 몸을 지옥에서 다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라. 참새 두 마리가 동전 몇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떨어지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너의 머리카락도 다 세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하다.』(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 10장 28절 - 31절까지) 채명신의 간증연설이 끝나자 장병들은 용기 백배로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연병장으로 달려 나왔다. 이날의 간증연설로 탈출병은 사라졌다.
 
1965년 10월 맹호부대 장병을 태운 거대한 수송선이 부산항을 떠날 때 떠나는 장병과 보내는 가족들은 서로가 오색종이 긴줄을 잡고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윽고 거대한 수송선이 출항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부산항을 쩡쩡 울리자 수많은 장병들은 드디어 우렁찬 군악대에 맞추어 그 유명한 맹호부대의 노래 “맹호는 간다”의 대 군가 합창이 시작되었다.
 
풍선과 오색종이가 하늘을 나르고 태극기의 물결속에 남편과 아들의 이름을 불러대는 함성 그리고 60대의 어느 어머님은 “아침에 나락베다가 편지 받고 택시 전세내어 왔시요”하며 땅 바닥에 앉아 슬피울고 있었다. 당시 현장 취재를 했던 필자가 이 어머니를 일으켜 세워 위로를 하자 “선상님 이거 우리 아들 줄 노자돈인데, 이돈 우리 아들에게 전할 길이 없을까요”하고 울고 있었다.
 
거대한 수송선이 부산항을 떠나 외항으로 나가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태운 소형 보트가 붕정만리 머나먼 전쟁터로 향하는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위해 이 수송선을 세바퀴를 돌면서 계속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수송선 상공에는 부산항에서 따라나온 갈매기 떼가 계속 울면서 날고 있었다. 갈매기도 울고 장병들도 울고 박정희 대통령도 분명 눈시울을 적셨을 것이다.
 
 
월남 파병과 대한민국 국력의 신장(伸張)
 
우리 국군의 베트남 전 참전으로 인력 송출 등 각종 특수로 인해 1974년부터 남북한의 국력은 역전되고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시골 집에도 등잔불이 없어지고 전기가 들어왔다. 당시 우리의 월남전 참전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력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한편 우리 국군의 월남전 파병은 1965년 당시 월남 정부 파후이콰트 수상으로부터 1개 전투사단 파병 요청으로 시작되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만일 이때 파병이 안되었다면 이미 기정 사실화된 미 제2사단과 7사단의 월남 이동은 즉각 실시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보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북한의 침략을 우리 단독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우리 국방력의 현실이었다. 한편 1965년 10월 파월장병 규모는 2만5천명에서 계속 증가되고 있었다. 이때 채명신이 강력하게 추진한 것이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 지취권 문제였다.
 
그러나 주월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얼랜드 대장은 이미 브라운대사와 박정희 대통령과의 합의된 즉 한국에서처럼 월남에서도 모든 작전권은 주월미군사령관인 자신이 가진다고 했다. 이에 대해 채명신은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하고 그 타당성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대응해 나갔다. 그러자 웨스트모엘랜드는 이 문제는 자신의 휘하 부대 장군들에게 채 장군이 직접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이때 채명신은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으로 판단 아예 설명시간도 30분까지 약속을 받았다. 이날 설명 현장에는 미군 4성과 3성 장군을 비롯한 육, 해, 공군 장성 20명이 참석해 채명신의 한국군 단독 작전 통제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특히 당시 공산 월맹은 한국군이 하루에 1달러를 받고 미국의 청부전쟁 용병으로 참전하고 있다고 전 세계를 향하여 모략 선전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실정에 한국군이 미군에 배속되어 작전 지휘를 받는다면 이는 공산측의 모량 중상이 그대로 사실증명의 자료로 이용될 것은 뻔한 일이라고 채명신은 유창한 영어로 설명했다. 30분간에 걸쳐 한국군이 독자적 작전 지휘권을 가져야 하는 수십가지 사례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단상에서 내려오자 처음에는 아니꼬운 눈초리로 응시했던 미군장성들이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특히 웨스트모얼랜드 주월미군사령관은 마치 심판이 승리한 권투선수의 손을 올려주듯 채명신의 오른팔을 힘차게 들어 올리면서 “나도 채 장군의 의견에 전적 공감한다”면서 앞으로 양국군의 모든 문제는 상호 협의와 협조에 의해 해결하겠다며 채명신을 얼싸안았다. 이렇게 해서 힘들었던 작전 지휘권 문제가 일단락됨에 따라 채명신은 비로서 한국이 청부전쟁의 용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계 각국에 알리는데 성공했다.
 
 
채명신의 전략과 전술
 
베트콩은 민간인 속에 있고 민간인은 베트콩 속에 있는 것이 당시 베트남의 실상이었다. 채명신이 한 번은 주월사령부에 근무하는 당시 월남의 상류층 출신의 타자수 여성들에게 당신은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녀들은 주변을 살필 필요없이 당당하게 “월맹의 최고 지도자 호치민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최고 권력기관에 근무하는 여사무원이 “나는 북한의 00를 가장 존경한다”는 답변과 같은 맥락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월남군의 장군들은 징병에 소집된 장정 중에 부자 아들들을 40명 내지 50명을 골라 편제상 부대에 근무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고 그들 부모들에게 매월 거액의 돈을 상납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한다.
 
채명신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런 저런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난 후, 깊은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즉, 전쟁에서 월남군은 패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자유월남은 망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채명신은 전투에서 불필요한 희생을 막으면서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특출한 전략과 전술로 미군보다 월등한 전과를 내서 국위를 선양하기로 했다. 또한 잘 알려진대로 과거 프랑스 정규군이 디엔비엔푸 요새에서 월맹군에게 처참하게 패망한 교훈도 있고 특히 세계 최강의 미군이 월남전에서 대규모의 작전에서도 통쾌한 승전보없이 고전만 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명신의 중대 전술기지 전략 작전은 과거의 사단규모나 대대규모의 전투와는 달리 적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의 사단급 내지 연대병력을 상대해서 매복과 기습공격으로 적진을 유린하고 혼란으로 휘몰아 정확한 조준 사격으로 전과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전투가 전세계에 알려진 두코전투와 짜빙돈 전투였다. 두코는 중부 월남과 캄보디아 국경지대 부근으로 우리 군은 이 지역의 대량 쌀 수확을 위한 보호작전으로 월맹 정규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아군은 이미 적의 기습공격이 있을 것이란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중대 전술기지 구축 공사를 완벽하게 구축한 상태였다. 특히 최소 48시간 동안 추가적인 보급지원없이 적의 연대급 공격을 막을 수 있는 탄약, 식량, 물의 비축을 완료했다. 전투를 앞두고 수색정찰 147회, 잠복근무 385회를 실시했는데, 드디어 월맹정규군은 야음을 이용 먼저 기습공격을 해왔다.
 
이 전투의 결과는 적 사살 187명에 포로 6명 그외 대량의 무기를 획득했으며 반면에 아군의 피해는 전사 7명과 부상자 42명이었다. 1개 중대가 월맹정규군 연대를 대파한 이 전투 현장을 돌아본 세계 각국 언론은 “믿어지지 않는 기적이며 월남전에서 새로운 기록과 전통을 남겼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외에도 한국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짜빈동 전투도 적 사살 246명에 아군도 15명의 전사자를 냈다.
 
이 짜빈동 전투의 작전은 미군과 월남군이 군사 교리로 채택했으며 당시 자유중국 장개석 총통은 이 전술교리, 전수를 위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교수단 초청을 해왔다. 특히 짜빈동 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더불어 한국 전쟁사에 4대 대첩으로 기록되었다.
 
 
베트콩으로부터 암살대상 1호가 된 채명신
 
채명신은 전투 이외도 한국군을 월남 국민들의 대민 지원에도 크게 봉사토록 하였다. 특히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그의 지시가 작전지역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이에 맞서 베트콩들은 채명신의 암살에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항상 그를 미행,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다. 한 번은 나트랑의 공관에서 중무장한 베트콩 약 1개 소대의 기습을 받았다.
 
이때 공관에는 행정요원 10여명이 있었는데, 이들과 치열한 전투에서 베트콩 전원이 사살되었다. 어느날은 채명신이 잠을 자던 침실 바로 옆에 폭탄이 날아와 터져 천장이 내려 앉은 사고도 있었다. 한번은 사이공 주재 한국 기자의 결혼식 주례를 해주고 공관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월남인 신부의 아버지가 채명신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정중히 제의를 했다. 식사가 끝나면 자신의 승용차로 공관까지 모셔드리겠다고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서 채명신은 자신의 차를 먼저 공관으로 보냈다. 월남에서도 저명한 인사로 알려진 신부 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공관으로 왔는데, 공관 정문에는 월남 경찰과 우리 헌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먼저 보낸 자신의 차가 공관 입구에서 베트콩으로부터 기관단총으로 집중사격을 받아 운전병과 공관 정문 경비병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채명신은 이날밤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그 오묘한 섭리와 역사가 오늘도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신 것에 대해 뜨거운 감사 기도를 드렸다.
※ 이 글은 다음 호에 계속됨.
 
글:김수호(안드레명상 발행인 주님의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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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33호 발행일 2013.5.30 - 나병환자들의 피고름을 빨아 주었던 … KBS로고스 13.05.31 1454
32 제32호 발행일 2013.3.30 - “폭포를 뛰어 넘는 물고기의 용기처… KBS로고스 13.04.02 835
31 제31호 발행일 2013.1.25 - 14살의 장애인 소녀가 가정부로 출발… KBS로고스 13.01.28 1066
30 제30호 발행일 2012.11.12 - 전 백악관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 KBS로고스 12.11.16 1198
29 제29호 발행일 2012.9.1 - 맹인 고아 강영우 박사가 미국 대통령… KBS로고스 12.09.06 1298
28 제28호 발행일 2012.7.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7.07 946
27 제27호 발행일 2012.4.1 - 한국의 맹인 고아 강영우, 그가 미국 … KBS로고스 12.04.19 987
26 제26호 발행일 2012.2.1 - 한국의 맹인 고아가 미국 대통령 정책… KBS로고스 12.03.03 918
25 제25호 발행일 2011.12.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2.20 1462
24 제24호 발행일 2011.10.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KBS로고스 11.10.26 1080
23 제23호 발행일 2011.8.1 - 6.25 전쟁때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 KBS로고스 11.08.12 1086
22 제22호 발행일 2011.6.1 - 6.25전쟁과 고아 하우스 보이가 미 백… KBS로고스 11.06.20 1392
21 제21호 발행일 2010.12.1 - 눈물로 얼룩진 나의 人生 노트 KBS로고스 11.04.07 1011
20 제20호 발행일 2010.12.1 - 전 문화부장관 이어령을 기독교인으… KBS로고스 10.12.30 1669
19 제19호 발행일 2010.9.1 - 한국의 백정(白丁) 제도를 폐지시킨 … KBS로고스 10.09.03 1763
18 제18호 발행일 2010.6.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6.09 1459
17 제17호 발행일 2010.3.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10.03.18 1603
16 제16호 발행일 2009.9.1 -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의 전쟁… KBS로고스 09.08.22 1532
15 제15호 발행일 2009.7.1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KBS로고스 09.06.27 1447
14 제14호 발행일 2009.4.1 - 나라가 어지러울 때 마하트마 간디의 … KBS로고스 09.04.20 1599
13 제13호 발행일 2009.2.1 - 한국인의 해외여행 “소주와 오징어 … KBS로고스 09.03.02 1799
12 제12호 발행일 2008.12.01 - 나의 사랑하는 아내 윤화영에게 KBS로고스 08.12.28 1464
11 제11호 발행일 2008.10.01 - 정명훈을 세계적 지휘자로 만든 사… KBS로고스 08.09.30 1468
10 제10호 발행일 2008.07.01 - 맥아더와 히로히도 천황의 성경공부 KBS로고스 08.08.05 1507
9 제9호 발행일 2008.05.01 -대통령의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위대… KBS로고스 08.06.11 1421
8 제8호 발행일 2007.06.01 - 어버이 살았을 때 KBS로고스 07.06.04 1443
7 제7호 발행일 2007.05.01 - 멀리 멀리 갔더니 KBS로고스 07.06.04 1529
6 제6호 발행일 2003.5.31 - 기적의 신약을 개발하고 2번의 뇌종양… KBS로고스 07.06.02 1660
5 제5호 발행일 2003.2.25 - “간단하게 두어 마디만 해” KBS로고스 07.06.02 1376
4 제4호 발행일 2002.12.20 - 권투선수 홍수환의 4전5기! 그날의 … KBS로고스 07.06.02 1678
3 제3호 발행일 2002.9.25 - 時問과 公義 KBS로고스 07.06.02 1494
2 제2호 발행일 2002.4.1 -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길… KBS로고스 07.06.02 1538
1 제1호 발행일 2002.2.1 - 대통령이 친히 권하는 축하의 술잔을 … KBS로고스 07.06.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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