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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호 발행일 2008.05.01 -대통령의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위대…
  글쓴이 : KBS로고스 날짜 : 08-06-11 11:15     조회 : 1421    
본 내용을 저자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전제 또는 복재, 살포시는 법의 저촉을받습니다
 
대통령의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위대한 신앙의 열매 2008.05.01

  채태원 집사는 경북 대구 근교 반야월이란 곳에서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유교정신을 철저하게 지키는 경북 영일군 흥해면의 이충우씨에게 시집을 왔다. 시집살이에서도 채태원은 끝까지 기독교 신앙을 지킴으로 집안 식구들은 물론 주위 친척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농토도 없는 이들 부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돈을 벌다가 해방을 맞이해서 귀국 도중 연락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가져오던 재산이 바다에 수장되어 버렸다. 빈털터리로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와 근근히 생활의 안정을 찾아갈 때 민족의 비극 6.25전쟁이 일어났다.
 포항 시가지는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었고 이들은 산기슭에 곧 쓰러져 가는 빈 절간방을 하나 얻어 일곱 식구가 지냈다.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행상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포항 사람들은 다 기억하겠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포항 시내에 유일하게 포항 제일교회만이 그대로 서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를 갈 때, 이곳 포항 제일교회는 채태원 집사가 마치 친정을 가는 기분이었다.
 채태원 집사의 하루일과는 항상 새벽 4시에 아이들을 깨워 기도를 시킨 후 자신은 다시 교회로 달려가 새벽 예배에 참석한다.
 둘째 아들 이상득은 소년 시절부터 형제중에서 가장 신앙생활을 잘 해서 교회에서는 그를 학생회장까지 맡겼다. 이상득은 고교를 졸업 후 사관학교에 들어갔으나 다리 관절염으로 자퇴를 하고 집에서 침술로 치료를 받으며 대학입시 공부를 했다.
 그래서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행상에는 셋째 아들 이명박이를 데리고 다녔다.
 
 특히 이명박의 하루 일과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술도가에 가서 술찌끼를 얻어 오는 일이다. 이명박은 이 술찌끼를 얻어 오면서 수시로 집어 먹어서 술찌끼 속에 소량의 술기운 때문에 그의 얼굴은 항상 홍조를 띠었다. 그가 훗날 장년이 되어 건설업계 특유의 술좌석에서 남들은 다 만취가 되어 뻗어 버려도 그는 이성을 잃는 일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어린시절부터 술찌끼를 많이 먹어 술에 대한 저항력과 정신력이 단련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고로 이명박의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행상의 종류는 당시 성냥 대신으로 사용했던 나무에 황을 붙여서 사용하는 황성냥 장사 김밥장사, 아이스케키장사, 나무장사 등이었다.
 
 추운 겨울 행상길을 가다가 따뜻한 양지가 있으면 어머니 채태원 집사는 좀 쉬어 가자면서 짐을 내려놓고 성경을 읽는다.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미소를 짓는데 이것은 이명박에게 성경이 얼마나 재미있는 책이란 것을 은연중 알리기 위한 작전이었다. 고된 행상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둘째 아들 이상득이다. 이상득은 관절염으로 아픈 다리를 무릅쓰고 어머니의 일을 돕기 위해 달 동네의 비탈길에 물지게로 미리 물통을 가득 채워 놓고 비록 술찌끼 죽이지만 전 가족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저녁 준비까지 해놓고 있다.
 
 이상득은 하루종일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고 공부만 하기 위해 자신의 발목을 아예 책상다리에다 줄로 매어 놓고 책을 본다. 이상득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행상은 더욱 바빠진다. 특히 등록금 낼 때가 가까워 오면 채태원 집사는 안절부절한다. 그래서 행상으로서는 생계비와 등록금을 모을 수가 없어 풀빵을 구워 팔기로 했다.
 
 이상득은 하루종일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고 공부만 하기 위해 자신의 발목을 아예 책상다리에다 줄로 매어 놓고 책을 본다. 이상득이 서울대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행상은 더욱 바빠진다. 특히 등록금 낼 때가 가까워 오면 채태원 집사는 안절부절한다. 그래서 행상으로서는 생계비와 등록금을 모을 수가 없어 풀빵을 구워 팔기로 했다.
 
  어느덧 이명박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에 응시, 수석 합격이 되어 장학생이 되었다. 입학금 때문에 수심에 잠겼던 어머니 채태원은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라고 하면서 계속 감사 기도만 했다.
  한편 서울대학에 입학한 이상득은 당시 한국은행 총재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 좋은 집에 좋은 음식을 먹고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어머니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보살펴 준 증거라고 했다. 이때부터 채태원 집사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흘렀고 특히 매일 먹는 주식도 술찌끼에서 강냉이 가루죽으로 격상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에게 <뻥튀기>장사를 시킨 어머니 채태원 집사
 
  어느 겨울 날, 채태원 집사는 어디서 뻥튀기 기계를 빌려와서 이명박에게 실습을 시켰다. 실습이 끝나자 “너와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니 수입이 신통찮으니 너는 이 뻥튀기 기계를 가지고 너 혼자 장사를 해보라”고 하면서 이명박을 데리고 간 곳은 포항 여고 골목길이었다.
  여학생들이 옥수수와 쌀튀긴 것을 잘 사먹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계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장사는 잘 되었다. 단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지나가는 여고생들이 너무 쳐다봐 직업에 대한 창피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명박은 겨울이지만 밀집 모자를 하나 구해 얼굴이 안 보이게 깊숙이 쓰고서 장사를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사내 자식이 뭐가 창피하냐”며 핀잔을 준다. 하루 종일 숯불 연기와 뻥튀기에 그을린 얼굴을 세수도 못한 채 학교로 향하는 이명박의 주경야독은 그의 인생 역정에 중요한 대목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어머니 채태원 집사가 이명박에게 심어준 또하나의 가정교육은 기독교 신앙생활의 중요한 봉사정신이었다. 채태원 집사는 이웃집에 잔칫날이 다가오거나 또는 부잣집의 회갑잔치가 있을 때는 그 전날 이명박을 그 집으로 보내 일을 도와주게 한다.
  이 지시를 처음받던 날, 이명박은 어머니께서 나를 잔칫집에 보내 잔심부름이나 해주고 떡이나 좀 얻어먹으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명박에게 철저하게 다짐을 받는다. “열심히 일을 해주되 돌아올 때는 물 한 모금도 얻어먹지 말고 와야지, 만일 떡고물이라도 얻어 먹었다 간 너는 집에 못 들어오는 줄알아라”......
  아무 대답없이 어머니를 원망하며 집을 나서는 이명박을 향해 “알았지!”하고 또한번 다짐을 받는다.
 
 강냉이죽 한 그릇 먹고 남의 집일까지 무료로 해준다는 것이 이명박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이명박의 깨끗한 무료봉사가 동네에 알려지자 특히 부잣집 사람들이 채태원 집사를 붙잡고 “세상에 자식을 어떻게 교육을 시켰길래 그런 착한 일을 하느냐”고 깜짝 놀랐다. 그 때마다 채태원 집사는 “나는 돈도 없고 무식해서 자식 교육시킬 만한 처지가 못되는데 아마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교육시키고 있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한다.
 
  한편 채태원 집사는 이명박의 뻥튀기 장사를 겨울이 지나면서 그만두게 하고 이번에는 과일 장사를 시켰다. 야간학교 수업이 끝나면 손수레에 각종 과일을 싣고 영화관의 마지막 상영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극장 앞에서 장사를 한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 극장 마당에서 자가용차에 과일 담은 손수레가 받치면서 과일이 전부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자가용 운전자는 오히려 이명박에게 왜 이곳에서 장사를 하느냐고 윽박지르며 호통을 쳤다. 이명박은 엉겁결에 자신이 잘못한 줄 알고 사과를 했다. 자가용차는 훌쩍 가 버렸다. 땅에 떨어져 깨어진 과일을 보자 뒤늦게 억울한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건너편 포장마차 집으로 달려가 소주한병을 달라고 고함을 쳤다.
 
 “이놈의 과일장사 집어치우고 오늘밤 당장 가출해 버리겠다” 이명박의 근면 성실성을 평소부터 잘 알고 있던 포장마차의 아주머니는 끝까지 소주를 주지 않고 이명박을 달래며 위로했다.
  마음이 진정된 이명박은 어머니 생각이 갑자기 나면서 가출을 하더라도 어머님께 인사나 하고 떠나자, 그리고 어머님이 평소 과일을 좋아했는데도 과일 한번 대접 못한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명박은 남은 과일을 어머님이나 실컷 잡수시게 하기 위해 흩어진 과일을 다 주었다. 기가 죽어 들어오는 아들의 얼굴과 깨진 과일을 본 어머니 채태원 집사는 아무말 없이 이불을 꺼내어 덮고 누워 버렸다. 평소 나약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지 않던 채태원 집사는 이날만은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 이명박은 이 밤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밤이란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아 결국 뜬눈으로 새벽 네시 기도 시간을 맞았다. 변함없는 어머니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항상 먼저 나라와 사회 안정을 위한 첫번째 기도에 이어 그 다음 서울에 가 있는 두 아들을 위한 기도,그리고 큰딸 기선이, 이어 이명박과 막내딸 귀분이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날 어머니의 기도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즉 과거에는 항상 길게 해주던 형님의 기도는 아주 짧아지고 이명박을 위한 기도가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너무나 간절한 기도였다. 모처럼 자신을 위한 기도가 길어진 것에 감동을 받은 이명박은 결국 이날 아침, 서울행 가출 계획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다시 과일장사로 되돌아갔다. 이명박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 채태원은 포항에서 하는 장사로는 서울의 아들 학비와 가족의 생계가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음을 알고 이명박에게 막내딸 귀분이를 중학교 졸업을 시키게 책임을 지우고 서울로 갔다.
 
한달 양식으로 보내주는 보리쌀은 죽을 멀겋게 끓여 먹어야만 겨우 한달을 살 수 있었다. 몇 달간을 그렇게 먹고 나자 두 형제의 얼굴에는 영양실조의 모습이 역력히 나타났는데 어느날 여동생 귀분이가 “10일은 굶더라도 20일은 죽을 좀 되게 끓여 먹자”고 간청을 했다.
 식량부족의 불안에다 여동생의 심상치 않은 말에 위기감을 느낀 이명박은 즉시 작은 봉투 30장을 구해 보리쌀을 배분해서 넣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 한 봉지만 먹는다는 규칙을 여동생에게 강조했다. 뻥튀기와 과일 장사 등 3년간의 장사로 동지상고 야간부 3년을 수석 졸업한 이명박은 서울의 부모님 곁으로 갔다.
 
  어머니는 서울 이태원시장 노점에서 채소장사를 하면서 역시 부엌도 없는 판자촌에 방 한칸을 얻어 전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명박은 이 방에서 함께 살 수 없어 건설현장의 날품팔이를 하면서 노동자 합숙소와 고향 친구들의 자취방을 전전하면서 대학입시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을 다닐 수 없는 처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합격만 해 놓으면 그것이 대학 중퇴란 말로 이력서에 들어가는 줄 잘못 알았다.
 
  어렵게 입시 책을 구해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낮에는 일거리를 찾아 다녔다. 한 번은 시험공부 도중 졸도를하여 이웃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한편 고향 친구 재수생을 따라 갔다가 함께 산 입시원서가 고려대학교 상대 경영학과 원서였다. 경영학과가 무슨 과인 줄도 모르고 산 원서였다. 시험 결과 재수생 친구는 낙방하고 이명박은 합격이 되었다.
  이태원 시장 노점 바닥에서 채소를 팔다가 아들의 대학 합격증을 받아 본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찼다. 노점 채소장사의 아들이 고려대학교에 합격이 되었다는 소문이 이태원 시장 안에 퍼졌다.
 
공중 화장실과 쓰레기 청소로 대학생이 된 이명박
 
  이 모자의 딱한 형편을 알게 된 시장 상인들은 이명박에게 등록금을 선불로 주면서 대신 시장 청소를 하게 했다. 어머니 채태원 집사는 하나님의 오묘한 역사 앞에 연신 기도만 했다. 이때부터 채태원 집사의 새벽 네시 가족 기도는 더 뜨겁게 진행되었다. 새벽 기도가 끝나면 이명박은 다시 이태원의 반석교회로 달려가 이곳에서 다시 기도를 드리고 시장으로 달린다.
  먼저 공중 화장실 청소를 하고 다음은 쓰레기를 치우는데 쓰레기를 가득 담은 손수레로 6번을 언덕길을 올라간다. 누군가 밀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 무거운 수레가 힘들지 않고 올라갈 때마다 이명박은 느낌이 있었다. 먼동이 트면서 시장 청소가 끝나면 학교로 간다.
 
  이명박은 대학 2학년까지 시장청소로 학비를 조달해 가면서 그야말로 청운의 푸른 꿈을 키워 나간다. 또한 이때 이 집안의 큰 경사가 겹쳤다. 둘째 아들 이상득이 코오롱에 입사하게 되었으며, 또한 어머니 채태원 집사가 드디어 시장 안에 조그만 노점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노점자리가 확보되기까지 채태원 집사의 하루하루 그 초조한 마음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남의 생선가게 좌판 바로 옆에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가게의 주인이 고함을 지르면 즉시 쫓겨나야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 집사가 항상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어느날 기도를 하는 중에 지혜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생선가게 좌판의 청소를 해주기로 했다. 특히 나무판자로된 생선좌판대는 항상 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다. 채태원 집사는 생선가게 상인들이 장사를 마치고 난후 나무좌판대를 물로써 깨끗이 청소를 해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점 장사는 저녁때면 끝나지만 생선가게는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하기 때문에 그 청소를 해주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며칠째 어머니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명박은 시장으로 달려가서 물청소를 하는 현장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채태원 집사의 이러 저러한 여러 가지 어려운 처지를 알게된 시장 상인들은 앞서 언급된 이명박을 청소부로 채용하여 대학등록금을 선불로 주게 되었고 다시 시장 측과 상인들의 호의로 한평 남짓한 좌판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해방이후 그 수많은 세월 행상 생활에 호각소리만 나면 광주리를 안고 이리뛰고 저리숨고 했던 지난날 채 집사의 고달픈 생활을 지켜보고 왔던 남편 이충우씨도 이날부터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노점 행상이 끝나고 자신의 좌판자리가 생긴 그 날은 채태원 집사 생애에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가정의 경축일이었다.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축하의 인사를 하면 채 집사의 답변은 항상 정해져 있다.
  “나는 무식해서 돈도 없고 다 하나님의 덕분입니다”....
 
  한편 이명박은 대학 2학년 1학기 때 일찍 군복무를 마치기 위해 자원입대를 했다가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신체 검사에 불합격이 되어 군대를 못가게 되었다. 이명박이 고려대 3학년 때 친구들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상과대학 학생회장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다.
  1964년 4학년이 되면서 한·일 국교 굴욕 외교 반대와 군사정권 타도를 외치는 대학가의 데모가 서서히 일어날 때 이명박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 대행으로 고려대 데모의 선봉장으로 6.3시위에 앞장선다. 그러나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어머니 채태원 집사는 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착한 아들이 형무소에 들어갔다면 이것은 필경 나라의 대역죄로 다시는 살아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64년 9월 서대문 형무소에 면회를 갔던 채태원 집사는 이명박을 똑바로 응시하고 나서
 
 “명박아! 너 새벽기도 꼭하고 있나! 그리고 성경도 꼭 보고 있나! 그리고 나는 네가 별볼일 없는 자식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번 사태를 자세히 알고 보니 너야말로 대단한 놈이구나! 나는 네 소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네 소신껏 행동하기 바란다”.....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채태원 집사는 일어났다.
  입회인이 면회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더 말씀하라고 했지만 채태원 집사는 다시 한번 “새벽기도와 성경 똑똑히 읽어라”이 말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형무소 뜰을 걷고 있는 채태원 집사의 입은 무엇인가 계속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채태원 집사는 자신이 평소 앓고 있는 심장병이 서서히 악화되고 있다는 징조를 알게 되면서, 어느 날 이웃에서 녹음기를 빌려와 유언을 남긴다.
 
  유언을 하기 전 먼저 찬송가 431장을 불렀다.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게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찬송이 끝나자 그의 유언은 평소 항상 하는 말 그대로였다. “하나님을 잘 섬기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라”..... 그리고 이명박에게는 “명박이 너는 앞으로 큰 일을 할 것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잘 섬겨라. 그리고 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라”.....
 
  어머니 채태원 집사는 이명박이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지 한달 만인 1964년 12월 15일 소천했다. 둘째 아들 이상득이 조그만 주택 하나를 막 계약한 직후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행상과 노점생할로 열심히 노력했으나 내집 마련은 도저히 힘들었던 채태원 집사!
  그 부모님의 평생의 한을 풀어 드리려고 둘째 아들 이상득이 마련했던 주택! 온 가족 다 모여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했던 그 소망이 실현되었을 때에 채태원 집사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어머니가 떠나간 후 새집으로 이사 가던 날 가족들은 기쁨의 감격은 없고 어머니 생각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부엌없는 단칸방만 찾아 다녔고 화장대, 장롱하나 갖지 못했던 어머니의 희생의 세월! 어머니도 분명 똑같은 여성이었는데 어찌 그것을 갖고 싶은 욕망이 없었겠는가!
  가족들은 부둥켜안고 한 없이 울었다. 퇴계원 공동묘지에 어머니를 묻고 오던 날 그 흔한 십자가 하나 구할 수 없어 자식들은 소나무를 꺾어 십자가를 만들어 꽂았다..
 
  채태원 집사의 막내딸 이윤진이 (귀분이) 선교사가 된 사연
 
  큰딸 이기선은 구룡포읍 제일교회에서 권사가 되었고 막내딸 이윤진은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잠실에 있는 성현교회를 다니며 20여년간 신앙생활을 했다.
 
  교회에서 여전도회장까지 했으나 세상이 주는 명예직(모 여성단체 회장)에 유혹되면서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뒤이어 남편의 사업 실패와 더불어 심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뒤따라 두번의 자궁암 수술, 그리고 35세때 악성 관절염으로 치료 불능 판정으로 10년간 대소변을 받아 내었고 43세 때는 치아가 몽땅 빠져 버렸으며 이때부터 산송장 취급을 당하는 비운의 여성이 되었다.
  10년간의 진통제 복용으로 기억력 상실 증세가 나타나는 등 갖가지 부작용이 뒤따라 그야말로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그에게 마지막 소망의 기회가 왔다.
  어느날 서울 잠실동에 있는 성현교회 부흥회에 가고 싶었다. 지난날 그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교회다. 설교가 끝나고 합심기도(통성기도) 순서가 되었다. 이윤진도 비록 모기 같은 음성이지만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을 간절히 애타게 불렀다.
 
  잠시 후 그의 몸이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입에서 방언 기도가 터져 나왔다. 이윤진을 들것에 싣고 왔던 남편 김진은 부인이 최후의 힘을 다해 부르짖는 통성기도의 처절한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이제 당신은 정신 이상까지 겹쳐 드디어 미쳐 가는구나. 이 발광이 끝나면 당신은 지쳐서 죽겠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부흥회가 끝나자 부인을 들것에 옮기려고 할 때 부인은 또렷한 음성으로 혼자 걸어가겠으니 조금 부축만 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무릎을 봐 달라고 했다. 이때 두 무릎의 피부 색깔이 가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윤진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이 오늘밤 내 다리의 관절염까지 고쳐 주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15년만에 걸어 보는 밤길, 예전에 몰랐던 영롱한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 꿈같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이윤진은 이 사실을 널리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46세 나이로 신학을 공부하여 전도사가 되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성경 신명기 6:4~9)”
  이윤진 전도사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후 가장 귀하게 읽는 성경 구절이다.
 
  참고로 이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까지를 유태인들은 자손 대대로 가르치는 신앙교육의 핵심의 장으로 삼는다. 이 신앙교육을 통해서 그들은 수천년 동안 전 세계 뿔뿔이 흩어져 온갖 멸시 천대를 받았던 민족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전세계 인구 0.3%밖에 안되는 이 민족이 노벨상의 26%를 차지했고 불과 3백만의 인구로 중동 국가 1억 인구를 제압하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의 정계와 금융, 언론 등이 이 소수 민족의 손에서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세계 지도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이 작은 나라의 안보에 이상 징후가 있을 때마다 미국이 자기 나라 일처럼 나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이 민족이 하나님의 성민(聖民)이요 이 민족을 섣불리 대한 나라마다 패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까지를 아이가 말을 할 때부터 강제로 외우게 한다.
 
  다시 이윤진 전도사의 이야기를 계속하면 지난날 산송장이라고 했던 그에게 의학적으로는 단 1%의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신학을 공부할 때 자주 느낀 것이 하나 있다고 했다. 즉 그 무서운 병마의 고통에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평생을 자식을 위한 일편단심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행상, 노점상을 할 때마다 광주리에는 언제나 성경이 있었고 손님이 없을 때는 즉시 성경을 꺼내어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이 “아주머니는 장사는 안하고 맨날 책만 보네 그 나이에 공부해서 국회의원이 될꺼요, 대통령이 될꺼요” 하고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이윤진 전도사는 신학을 마친후 주위 친지들의 만류와 세상사의 즐거움을 뿌리치고 힘든 선교사의 길을 택했다.그날밤 그 부흥회때 제발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울며불며 절규의 통성기도를 할 때 마치 전류처럼 스쳐간 그 순간! 생명의 은인 그 하나님을 감히 모른다고 배반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그 기적의 체험을 증거하기 위해 이윤진 선교사는 오늘도 해외 우리 동포들을 찾아 기독교는 바로 체험의 종교라고 기독교를 증거하고 있다.
 
  한편 채태원 집사가 소천한지 3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큰아들 이상은은 기업가로 둘째아들 이상득은 국회의원으로 셋째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다. 특히 두 아들은 같은 날 같이 장로가 되었다.
  만일 지금 채태원 집사가 생존해 있다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대통령의 어머니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의 답변은 역시 행상 시절의 답변 그대로일 것이다. “나는 돈도 없고 무식해서 자식 교육시킬 형편이 못되었는데 다 하나님의 덕분이죠”...... 좋은 일은 항상 하나님께 돌렸다.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규모 집회에서 “나는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힘든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 우리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다음날 국내 모든 언론은 그가 자란 고향 마을의 친지 소개, 그리고 뻥튀기 이야기, 기타 현대건설 시절 이야기 등은 보도가 자세히 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을 신앙으로 훌륭하게 성장시킨 어머니 채태원 집사의 파란만장한 생애 그 위대한 신앙교육은 단 한줄도 보도가 안되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은 어머니 채태원 집사가 자식들에게 자주 인용한 성경귀절이다.즉 자식들을 위한 어머니로서 자신이 가야 할 희생정신을 미리 예고해 준 것이다.
 
글 : 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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